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79 - 은행나무 본문

동식물 이야기와 사진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79 - 은행나무

새샘 2026. 4. 7. 13:30

은행나무 줄기에 난 잎과 수꽃(출처-출처자료1)

 

약 3억 년 전부터 거의 모습을 바꾸지 않고 살아온 화석나무이다.

중국이 고향이며 몇백 년에서 천 년을 훌쩍 넘겨 오래 살기로 유명하다.

씨가 은銀빛 살구(행杏) 모양이라는 은행나무이다.

 

한반도 전역에서 가로수나 정원수로 심어 키우고, 높이 60미터에 지름 4미터로 크게 자라는 암수딴그루 갈잎 넓은잎 큰키나무로서, 분류학적으로 1문門(은행나무문) 1綱(은행나무강) 1목目(은행나무목) 1과科(은행나무과) 1속屬(은행나무속) 1종種(은행나무)만이 현존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화석으로 취급한다.

 

학명은 징코 빌로바 Gingko biloba, 영어는 maidenhair tree 또는 ginko(깅코우), 한자는 은행銀杏이다.

 

 

○나무 이름의 유래

 

'은행나무'란 이름만 들어도 왜 그런지 친밀감이 들고 어떤 낭만 같은 것을 느낄 수있다.

노란 색깔의 부채 모양에, 그것도 두 갈래로 갈라져 잎이 특이하여 그런지도 모른다.

은행 열매가 보기에 사랑스럽고 먹으면 맛이 새로워서 그럴지도 모른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가을에 은행나무 잎을 주워 책 사이에 넣었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은행잎을 하나 넣어서 부치기도 했다.

 

은행나무는 한자로는 '銀杏'이라고 쓰는데 은銀빛 나는 살구(행杏) 씨와 닮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서양 사람들도 은빛 나는 살구라 하여 이름 그대로 번역, 실버 애프리코트 siliver apricot(은빛 살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영어 이름은 ginko(은행나무) 또는 메이든헤어 트리 maidenhair tree(처녀머리나무)라고 한다.

은빛 나는 윤기 있는 처녀의 머리카락,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은행나무는 아름다운 나무인 것 같다.

 

조선시대 실학파 학자인 정약용은 ≪아언각비雅言覺非≫라는 책에서 "행杏이란 글자는 반드시 살구나무만이 아니고 은행나무를 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중국 송나라 구양수歐陽修의 시에서 '은행銀杏'이라는 이름과 오리발을 뜻하는 '압각鴨脚'이 나오는데, 은행나무 잎이 오리발을 닮아 이 나무의 별명이 '압각수鴨脚樹'가 되었고, 중국에서는 은행보다 압각수로 불리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이 나무를 '이치요(일엽一葉) イチョウ'라고 부른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기온이 더 따뜻하고 습도가 높아서 그런지, 큰 은행나무에는 종종 젖(유방乳房)과 같은 돌기가 생겨서 아래로 드리우는 일이 많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은행나무를 '젖나무'라고도 한다.

 

 

○지질학적 고찰

 

강원 영월 하송리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76호)(출처-출처자료1)


은행나무는 일본과 중국에도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제주도에서 평북 용천, 함남 성진에 이르기까지 각지에 심어져 자라고 있다.

이처럼 은행나무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산에서 자연적으로 나서 자라고 있는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현재의 은행나무는 모두 사람이 직접 심은 것이다.

은행나무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나무이다.

사람이 없는 곳에는 은행나무도 없다.

이것이 은행나무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나무는 현재 극동 지방에 분포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전 세계 각지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화석 형태로 미국 USA과 유럽 Europe에서 발견되고 있다.

현재 은행나무의 종류는 단 한 가지뿐이다.

소나무에는 곰솔, 잣나무, 섬잣나무와 같이 여러 종이 있지만, 은행나무는 그렇지 않다.

화석으로는 12종이 알려지고 있다.

 

은행나무는 중생대에 가장 번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당시 은행나무는 잎이 잘게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것이 현재와 크게 다르다.

그 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와 같은 잎의 갈라짐은 적어지고 백악기 이후에는 현재 은행나무 잎과 비슷해졌다.

이처럼 1억 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지탱해온 사실은 정말 놀랄 만하다.

정녕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긴 세월을 지나는 동안 은행나무는 유전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지구 표면은 여러 차례 기후 변화를 겪었는데, 빙하에 덮이는가 하면 때로는 높은 온도에 놓이기도 하면서 인간의 힘으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극단적인 변화가 많았다.

현재도 나무는 추운 지방에 살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다.

야자수나 파인애플은 따뜻한 곳에서 자라고, 잣나무는 추운 곳에서 자란다.

그런데 은행나무는 때로는 얼음에 덮이기도 하고, 때로는 열대 지방에 사는 날개 달린 도마뱀과도 함께 살아왔다.

 

화석 연구를 통해 우리는 호주 Australia에서도 몇 종류의 은행나무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시아 Asia, 유럽, 캐나다 Canada, 독일 Germany 북부 지방, 영국 UK, 그린란드 Greenland, 시베리아 Siberia 등지에서도 은행나무의 화석종化石種이 발견되고 있다.

 

제3기 때 북극에서 빙하가 내려와 미국과 유럽의 식물을 죽인 경우가 있었다.

미국 동쪽 지방에 있어서도 북위 40도 지점까지 빙하가 내려왔다.

그러나 이때 빙하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을 덮지는 못했다.

빙하가 내려오면 그 부근의 기온도 크게 냉각되는데, 그 당시 동양은 비교적 기온이 온화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때 유럽과 미국 쪽의 은행나무는 전멸되고 말았다.

 

 

○암수 구별

 

은행나무 열매(출처-출처자료1)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의 구별이 있는 암수딴그루이다.

"은행나무도 마주봐야 열매를 맺는다"는 말은 은행나무에 암수의 구별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선 숙종 때의 실학자 홍만선洪萬選이 엮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틀린 표현도 있지만 참고할 만하다.

 

"은행나무(백과목白果木)에는 암수가 있다. 수컷의 씨(종자種子)는 모양이 세모이고, 암컷의 씨는 2개 또는 3개의 모서리가 나 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씨를 함께 심는 것이 좋다. 또한 은행나무는 못가에 심는 것이 좋다. 그것은 은행나무가 물속에 비치는 자신의 그늘과 혼인을 하여 씨를 갖게 되는 까닭이다. 수나무도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는데, 이때에는 수나무의 줄기에 구멍을 뜷고 그 속에 밤나무 가지를 넣어주면 수나무가 열매를 맺게 된다."

 

은행나무 겉모습을 보고 암나무와 수나무를 구별할 수 있는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되도록이면 모나무(묘목苗木)일 때 병아리의 암수를 가려내듯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질문이 많다.

씨나 모나무의 외관을 보고서 암수를 판별하는 방법은 아직 없다.

모나무를 보고서 '이것이 암나무다', '저것은 수나무다' 해도 20년 이상 뒤에 가서 열매 맺는 것으로 보아야 그 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은행나무 성 감별 DNA 분석기술'을 개발하여 모나무일 때 정확하게 암수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은행나무의 암수를 알아내야 할 필요성이 별로 없다.

암나무 모나무가 필요할 경우 암나무의 가지를 끊어다 땅에 꽂아 두면 뿌리가 쉽게 내려서 암나무로 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수나무를 즐겨 심는 까닭에 처음부터 이와 같이 한다.

수나무는 나뭇가지가 일반적으로 위로 올라가고, 암나무는 가지가 옆으로 퍼지거나 아래로 드리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정반대의 경우도 흔하므로 정확한 판별법이 아니다.

 

 

○정충을 가지고 있는 화석 식물

 

지구가 만들어진 것이 약 50억 년 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은행나무가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약 2억 7천만 년 전이다.

그때는 지구에 석탄과 석유가 만들어진 때이다.

석탄기는 약 3억 5천만 년 전에 시작되어 약 2억 3천만 년 전까지 계속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때 은행나무의 선조들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식물의 생명은 바다에서 먼저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출발은 약 20억 년 전이고 그때에는 단세포의 조류藻類 algae가 점점 복잡한 다세포 식물로 변화해가고 바다와 늪에는 각종 식물이 있었다고 한다.

약 4억 년 전에 비로소 물속에서 식물이 뛰쳐나와 단단한 육지의 바위 위로 올라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약 3억 년 전을 전후해서 석탄의 시대가 펼쳐지는데, 그때는 지구의 대부분이 오늘날의 열대 지방과 비슷해 춘하추동 사계절의 구별이 없었다.

물속에서 살아온 식물은 수컷의 정자가 암컷의 난자로 가자면 물속을 헤엄칠 수밖에 없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식물의 꽃가루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정자이다.

물속 식물의 정자는 몇 개의 꼬리를 달고서 그것으로 헤엄을 쳐서 난자를 찾아갔다.

그런데 육지의 식물은 꽃가루에 꼬리를 달고 있지 않다.

바람과 벌과 나비 또는 빗물이 있기 때문에 꼬리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은행나무만은 유별나게 꽃가루 속의 정자가 꼬리를 달고 있다.

꼬리가 없다면 그대로 꽃가루라고 말할 수 있지만, 꼬리를 가지고 스스로 운동해서 자리를 옮길 수 있을 때 이것을 정충精蟲(정자精子)이라 한다.

은행나무의 정충은 1895년 일본 도쿄 시내의 고이시카와(소석천小石川) 식물원에 있는 큰 은행나무에서 히라세(평뢰작오랑平瀨作五郞) 교수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어서 1896년 소철도 정자를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필자는 도쿄에 갔을 때 이 은행나무를 찾아간 적이 있다.

 

은행나무나 소철은 옛날부터 있었던 나무로, 그때는 아직 육지 식물들이 물속에서 올라온 지 오래되지 못했다.

그래서 물속에서 살던 때의 버릇이 그대로 남아서 꽃가루에 정자의 모습을 남긴 것이다.

 

책을 보면 은행나무는 정충이 있고 그것이 이동력을 가지고 있다는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암컷의 생식기 안에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우물이 있고, 이 우물의 표면에 떨어진 정충이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짧고 짧은 거리를 뚫고 난자 쪽으로 이동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물속 식물의 정충이 멀고 먼 물속을 헤엄치는 그 풍속을 현미경적으로나마 몸속에 담아보겠다는 은행나무는 확실히 현대화하지 못한 고풍을 즐기는 나무라 할 수 있다.

 

3억 년이란 긴 세월을 살아남게 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은행나무는 몸속에 특별한 성분이 있어 병에도 잘 걸리지 않고, 또 이 나무를 심하게 갉아먹는 해로운 벌레도 없다는 것이 긴 역사의 배경이 될 수 있겠다.

 

 

○은행나무 자생지

 

현재 우리않나라나 일본에서 천 년을 넘는 은행나무가 더러 자라고 있지만, 야생 상태의 은행나무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은행나무는 사람이 심고 사람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지, 스스로 그곳에 나타나서 자란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은행나무의 독특한 특성으로 다른 나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날 식물학자들은 어딘가 지구상에 은행나무의 원산지, 즉 야생 상태의 나무가 있을 것으로 보고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적지 않게 노력했다.

그 야생지가 중국에 있을 것으로 보고 탐험대는 쓰촨성(사천성四川省)이나 윈난성(운남성云南省/雲南省) 같은 오지를 답사했지만, 야생지를 찾는데 결국 실패했다.

그런던 것이 최근 들어 양쯔강 하류 저장성(절강성浙江省)과 안후이성(안휘성安徽省)의 경계를 이루는 천목天目산맥 해발 약 2,000미터 지점에서 야생지가 발견되어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이처럼 나무의 고향을 중요시한다.

고향이란 무척 값진 것이다.

이곳에서 은행나무가 퍼져서 오늘날 지구상 곳곳에 심어지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은행나무는 과거 중국에서 들여온 외국 수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은행나무는 견딜 수 있는 환경의 폭이 매우 넓다.

온도로 말한다면 따뜻한 중국의 남단 광둥(광동广东/廣東)에서도 자라는가 하면, 매우 추운 선양(심양沈阳/瀋陽)에서도 자랄 수 있다.

선양의 최저기온이 약 섭씨 영하 38도인데도 건강한 모습을 보인다.

다만 어릴 때에는 보호를 해주어야 한다.

은행나무의 이러한 성질을 적응력이 강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적응력 특히 온도에 대한 적응력이 강하다 보니 오랜 세월을 살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따뜻한 시절도, 또 빙하의 시절도 견디어 지내왔다.

은행나무를 살아 있는 화석라고도 부르는데, 이느 은행나무가 길고 긴 지질 연대를 이어 살아왔고, 그들의 다양한 선조들이 화석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유럽이나 미주美洲(아메리카 America) 대륙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추고 화석으로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의 (왼)봄과 (오른)가을(출처-출처자료1)

 

경기 용문산의 용문사龍門寺에 있는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의 명목名木으로 유명하다.

명목이란 옛날 왕족이나 위인들이 심어 놓은 나무로, 요즘 말로는 기념식수한 나무라 할 수 있다.

명목에는 신비스러운 전설 비슷한 것이 얽힌 것도 있고, 때로는 높은 직계職階(직급職級: 직무의 등급)가 주어진 것도 있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세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슬픈 여행을 가는 도중에 심었다고 하기도 하고, 또 신라의 고승인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간 것이 이 나무가 되었다고도 한다.

용문사는 약 1,300년 전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세운 것으로, 은행나무는 그 뒤에 심어졌을 것으로 추정되어 나이가 약 1,100년일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 중에서 가장 큰 나무로, 세종대왕 때 정삼품 당상직에 봉하고 그 뒤 사천왕四天王이라 해서 해마다 제사를 드리고 있다.

가슴높이 줄기의 둘레가 약 11미터, 나무 높이가 약 41미터에 달한다.

이 밖에도 전국 각처에 은행나무의 노거목老巨木(오래 되고 큰 나무)이 많고, 그 나무마다에 얽힌 사연들도 많다.

 

용문사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옛날 한 나무꾼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자 그 자리에서 붉은 피가 쏟아지면서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고 천둥이 치고 해서 자를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이 톱 자리가 남아 있다.

둘째는, 오늘까지 역사가 많은 병화兵火(전쟁으로 인한 화재)가 있었지만 이 나무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정미의병丁未義兵(1907년 고종 강제 퇴위와 정미칠조약 강제 체결, 군대 해산 따위를 계기로 1907~1910년에 발생한 항일구국적 근대 의병봉기) 때 일본 군대가 불을 질렀지만 이 나무만은 타지 않았고, 사천왕전四天王殿이 불탄 다음부터 이 나무를 천왕목天王木으로 받들고 있다.

셋째로, 나라에 큰 길흉사가 있을 때 이 나무가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고종이 승하했을 때 큰 가지 하나가 떨어졌고, 8·15 광복 직전 두 달 동안 밤이 되면 윙윙 소리를 내었으며, 6·25 한국전쟁 때는 50일 동안, 4·19와 5·16 때에는 이 나무가 밤에 소리를 내었다는 것이다.

 

 

○이천군 모가면의 은행나무

 

어느 봄날 필자에게 경기도 이천군 모가면에 있는 은행나무 노거목이 죽게 되었으니 그 나무를 살려 달라는 전갈이 왔다.

모가면 어느 마을 앞에 몇백 년 생으로 추정되는 굵은 은행나무를 어떤 밥상 제작자가 줄기를 오려내어 나무를 죽게 한 뒤, 그 나무로 많은 밥상을 만드려고 한다는 것이다.

은행나무 밥상은 무척 고급스러운 것으로 행세깨나 하는 집안에서만 마련할 수 있는 고가품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대를 이어 함께 살아온 이 유서 깊은 은행나무를 어떻게 하든 살리고자 필자에게 연락한 것이다.

 

그 현장을 찾아가 보니 은행나무는 줄기를 돌아가면서 깊이 4~5센티미터, 길이 30~40센티미터가 예리한 연모(물건을 만들거나 일을 할 때에 쓰는 기구와 재료)에 의해서 목질부木質部(물관부)에 이르는 깊이로 제거되어 있었다.

그대로 두면 이 나무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판단되어 필자는 다리접接(교접橋接: 다리 모양으로 가지를 건너질러 접을 붙이는 방법)을 해서 상처 부위를 뛰어넘는 상하 건전 부위 조직의 연결 수술을 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필자는 교접에 필요한 은행나무 가지, 그것도 생기 있고 곧으며 잔가지가 적은 것을 고르기 위해 이곳저곳 찾아다녔다.

그때 마침 잠업시험장 안에 있는 30~40년생 은행나무에 쓸만한 휘추리(가늘고 긴 나뭇가지)가 많아서 끊어 쓰기로 했다.

이 은행나무의 휘추리를 70~80개 끊어 다시 현장으로 갔다.
필자는 상처받은 조직을 오려내고 자신 있게 조직 연결 수술을 했다.

한 나무에 20~30개의 휘추리를 써서 시술을 했다.

 

그 뒤 마을 아이들이 장난삼아 연결된 가지를 만져 시술을 그르칠까 염려해서 수술 부위 위를 양철판으로 덮어 못질을 해서 수술한 자리를 보호했다.

이 수술을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우리나라 수목외과 수술의 초기 작품으로, 세계적으로도 이처럼 늙은 나무의 교접 수술은 그 예를 찾기 어려웠던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는 죽어가는 은행나무를 살렸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행단과 은행나무

 

'행杏'자는 '살구나무 행'으로 읽는다.

행단杏壇은 중국 산둥성(산동성山东/山東省) 취푸현(곡부현曲阜縣)에 있는 공자의 묘 앞에 있는 단의 이름으로, 공자가 이 단에 앉아서 제자들에게 학문을 강론했다고 해서 행단이라 하면 학문하는 곳을 뜻하게 되었다.

그 단에 꼭 살구나무가 있어서 그러한 명칭이 유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행단에 살구나무보다는 은행나무를 두어 강학講學(학문을 닦고 연구함)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하지만, 큰 나무가 적고 또 그늘이 짙지 못한 결점이 있다.

은행나무는 실용적인 서민생활 속의 나무라 문묘文廟(공자를 모신 사당) 서원, 향교와 같은 시설에는 은행나무를 쌍으로 심어 장엄함을 나타내고 있다.

 

경북 순흥에 있는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사액賜額서원(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린 서원)으로 이름나 있는데, 이곳에도 은행나무가 있어 서원의 무게를 더해 주고 있다.

공부하는 분위기에 무게가 있으면 인간도 더 무게 있게 되고, 그러한 인간은 나라나 사회를 위해서 더 무게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되어 있다.

명륜당明倫堂 앞에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동서 방향으로 쌍으로 서 있으며, 대성전大成殿 뜰 앞에도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제일 큰 것은 높이 25미터, 가슴높이 줄기 둘레가 12미터에 이른다.

 

 

○은행나무와 유주

 

서울 문묘 은행나무의 유주(출처-출처자료1)

 

은행나무는 곁가지에서 땅으로 향하는 긴 돌기를 발달시키는 성질이 있다.

특히 기후가 온난다습한 일본의 은행나무에는 이러한 사례가 더 많다고 한다.

그 길이가 때로는 1미터를 넘는 것도 있다.

일본 사람들은 그것을 젖(유乳, ちち)으로 표현하여 은행나무의 별명이 젖나무(유목乳木)로 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도 이를 받아들여 유주乳柱(젖기둥, 기둥 모양의 젖)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기가 없는 여자는 이 유주에 기도를 올려 아기 얻기를 소원하고, 또 산부가 젖이 부족할 때도 이에 치성을 드리는 습속이 있다 한다.

일본에서는 이 유주를 여성의 상징으로 보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관점이 다소 다른 것 같다.

아기 갖기를 소원하고 젖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일본이나 비슷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것을 오히려 남성의 상징물로 보고 그것을 잘라다가 끓여 마심으로써 잉태를 소원하는 예가 있다.

필자는 이것을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에서 볼 수 있었다.

방학동의 은행나무에는 상당한 길이의 유주가 발달해 있었는데, 그 유주의 앞쪽 끝 부분이 절단되어 있었다.

그 국물을 마시면 남자의 정력이 강해진다고도 했다.

모두 허황된 말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것을 젖으로 여기고 치성을 드리고 있는 곳이 있다.

예전에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302호로 지정된 은행나무를 답사한 적이 있다.

곁가지에서 두 개의 작은 돌기가 생겨 아래를 보고 있었는데, 이곳에 치성을 드리러 오는 부녀자들이 있다고 한다.

이것에 빌면 젖이 잘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돌기는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유주로서 가장 크고 장관인 것은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젖으로 보기보다는 남자의 성기로 보는 것이 더 그럴듯하고, 우리 선조들은 그렇게 보아 온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에서도 은행나무 유주를 잘라서 고아 국물을 마시는 습속이 있었다고 한다.

인간은 어디서 살거나 자연물을 보고 느끼는 방법이 서로 비슷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일로 나무에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환경오염과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비교적 오염된 환경에 적응하는 힘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도 어느 한계 내에서의 문제이지, 오염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다면 결국 죽게 된다.

 

1975년 무렵 필자는 덕수궁 안에 있는 은행나무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큰 은행나무 아래 몇몇 포장마차가 있어 길 가는 시민들이 이곳에서 소주 몇 잔에 꼬치 국물을 마시며 덕수궁의 분위기에 취하기도 했다.

지금으로 본다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찌해서 궁 안에 포장마차가 줄지어 들어설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은행나무 노목 아래에서 영업을 하던 포장마차들이 각종 폐수와 오물을 주변에 마구 버렸던 사실이다.

심해진 토양 오염으로 천 년을 바라보던 은행나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나무 옆에 있던 회화나무 노거목도 동시에 오염의 제물이 되어 죽어갔다.

이들 나무를 죽이고 나서 포장마차들은 그곳을 떠나야 했다.

인간들은 이처럼 무분별한 행동으로 몇백 년의 귀중한 역사를 단숨에 쓸어 없애고 말았다.

노거목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지금 그 나무들은 없다.

슬픈 역사의 단편이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3(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6. 4. 7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