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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연담 김명국 '설중귀려도'

새샘 2026. 4. 5. 16:10

"설국에서 만난 조선시대의 한류스타"

 

김명국, 설중귀려도, 17세기, 모시에 담채, 101.7x55.0cm, 국립중앙박물관(출처-출처자료1)

 

창밖은 '설국雪國'이다.

일본 홋카이도(북해도北海島) 삿포로(찰황)에 도착하니 눈이 비가 되어 내렸다.
표백제를 뿌려놓은 듯 순백색의 도시풍경이 장관이다.

새벽 비행기에 시달린 피로를 삿포로 맥주 한 모금으로 녹인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설경은, 마치 조선시대 중기의 화가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1600~1662년 이후)의 <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의 설경을 보는 것 같았다.

하염없이 내리던 눈이 그친 날, 두메산골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선비가 나귀를 타고 길 떠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 속의 설경이 오늘따라 홋카이도를 연상시켰다.

 

조선시대 중기 김명국은 조선통신사의 수행 화원으로 두 번이나 일본을 다녀온 '한류韓流스타 Korean wave star'다.

명성에 비해 행적이 확실치 않으며, 태어난 연도를 1600년으로 보고 있다.

도화서 화원으로 종6품인 '교수敎授'를 지냈다.

김명국은 산수화를 잘 그렸지만 참선하는 승려의 그림인 선승화禪僧畵로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

'김명국'이란 이름은 몰라도, 미술 교과서에 실린 <달마도達摩圖>는 누구나 안다.

<달마도>는 일필휘지의 굵은 선으로 선승을 그려서, 김명국만의 특징물特徵物(캐릭터 character: 작품 내용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개성과 이미지)로 만들었다.

 

김명국의 작품은 생동하는 기운으로, '신필神筆의 화가'로 추앙받는다.

문인이자 미술비평가인 청죽聽竹 남태응南泰膺(1687~1740)은 조선시대 회화사를 논한 청죽화사聽竹畫史"김명국은 그림의 귀신이다. 그 화법은 앞 시대 사람의 자취를 밟으며 따른 것이 아니라 미친 듯이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주어진 법도法度 밖으로 뛰쳐나갔으니, 포치布置/鋪置(넓게 늘어놓음)와 화법 어느 것 하나 천기天機(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지機智 또는 성질) 아님이 없었다. (······) 그 역량이 이미 웅대한데 범위(스케일 scale) 또한 넓으니, 그가 별격의 일가一家를 이룬즉, 김명국 앞에도 없고, 김명국 뒤에도 없는 오직 김명국 한 사람만이 있을 따름이다"라며, 김명국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그런가 하면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은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에서 "인물이 생동하고 필묵이 융화되었으니 백 년 이내에는 짝할 이 없을 성싶다"라고, 문인화가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가 김명국의 그림에 대하여 평한 것을 기록해놓았다.

이렇듯 김명국이 당대보다 후세인들에게 찬사를 받는 것은 뛰어난 작품성이 그의 기이한 행적에 가려진 탓이 아닐까 싶다.

 

김명국은 일화를 몰고 다녔다.

술을 좋아하여 '취옹醉翁'이란 호를 썼으며, 술이 있어야 그림을 그렸다.

남태응이, "김명국은 술에 취하지 않으면 재주가 다 나오지 않았고, 또 술에 취하면 취해서 제대로 잘 그릴 수가 없었다. 오직 술에 취하고 싶으나 아직 덜 취한 상태에서만 잘 그릴 수 있었으니, 그와 같이 잘된 그림은 드물고 세상에 전하는 그림 중에는 술에 덜 취하거나 아주 취해버린 상태에서 그린 것이 많아 마치 용과 지렁이가 서로 섞여 있는 것과 같았다"고 했을 만큼 그림에 차이가 있었다.

 

김명국은 1636년 삼십대 중반 통신사 수행 화원으로 일본에 가게 된다.

당시 일본에는 선승화가 유행할 때였다.

선승화에 뛰어난 김명국은 당연히 일본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린다.

그가 머물던 통신사 숙소에 일본인들이 그림을 받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몰려들 정도였다.

1643년 다시 통신사를 파견할 때도 일본측의 요청으로 김명국이 수행 화원으로 가게 되는데, 이때도 선승화가로서 김명국의 명성은 식지 않았다.

그래서 김명국의 '달마도'는 일본에 많이 남아 있는데, 거꾸로 우리나라에 소개되기도 한다.

 

<설중귀려도>는 나귀를 탄 선비가 시동을 앞세우고 먼 길을 재촉하는 장면이다.

초옥의 주인은 눈길과 추위가 걱정이 되는 듯 근심어린 표정으로 배웅을 한다.

신세 진 선비의 감사하는 마음과 보내는 사람의 근심이 교차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깎아지른 듯한 두메산골의 설경이 장관이다.

 

작품에는 인물을 자세히 묘사하여 표정이 살아 있다.

강한 필묵법으로 흑백의 대조가 뛰어나다.

나귀는 귀를 세우고 다리는 튼튼하게 짙은 먹색으로 표현하였다.

인물은 농담을 살려 수려한 선으로 마무리하였다.

앞쪽의 바위는 강하고, 다리와 집은 세밀하다.

주위의 산수는 대범한 필치와 먹의 농담으로 자유분방하다.

거친 삼베에 수묵으로 그렸지만 천에 그린 듯 매끈한 느낌을 준다.

대가의 솜씨답게 눈 오는 정취가 실감난다.

 

전 세계에 우리 문화의 열풍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먼 옛날 우리와 일본은 서로 문화를 교류하며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조선 중기 김명국의 작품은 일본 한류 열풍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삿포로에서 사온 원두커피를 내려마신다.

그곳에서 보낸 며칠이 꿈만 같다.

눈 속에 있을 땐 꽃이 그립고, 꽃을 보니 겨울의 눈이 그립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해서 어쩌겠냐마는 자연처럼 흘러가는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순백의 삿포로가 아련하다.

 

※출처

1. 김남희 지음, '옛 그림에 기대다', 계명대학교 출판부,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6. 4. 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