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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극재 정점식 '와상'

새샘 2026. 4. 9. 08:25

'극재 정점식 탄생 100주년과 따뜻한 추상'

 

정점식, 와상, 1985, 캔버스에 종이·아크릴릭, 42.0x71.0cm(출처-출처자료1)

 
그날 필자는 서점에 있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 동기가 전화로 극재克栽 정점식鄭點植(1917~2009) 선생의 타계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 순간 '아, 미술계의 큰 별이 졌구나' 했다.
한 번 더 찾아뵙지 못한 것이 못내 가슴 저렸다.
 
어쩌면 운명이었다.
대학 신입생 때, 필자를 포함해 몇 명의 학생이 학과 조교를 따라가서 행사를 도운 적이 있다.
너무 오래된 일이기에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 선생님의 에세이집 출판기념회였던 것 같다.
행사를 마치고 조교 선배에게 책을 한 권 달라고 했더니 여분이 없었는지 주지 않았다.
그 일은 먼 훗날의 복선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선생님의 친필 서명(사인 sign)이 있는 그 책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2학년 때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과를 바꾸면서 선생님은 필자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선생님을 다시 만난 것은 대학원 석사과정 때였다.
여전히 선생님은 전설 속의 어렵고도 유명한 교수님이었다.
필자가 선생님께 성적을 꽤 잘 받으면서 마음의 벽이 약간 허물어졌다.
그 뒤 전시장에서 선생님을 자주 뵈었다.
필자가 1년에 한 번씩 개인전을 할 만큼 열정적일 때, 6회 개인전 서문을 선생님께서 써주셨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선생님과 필자의 인연은 한 걸음 더 좁혀졌다.
 
 

극재 탄생 100주년 기념전 전시 장면(출처-출처자료1)

 
올해(2017)는 극재 선생님의 탄생 100주년이다.
선생님이 주신 책과 작품 도록을 펼쳐보다가 1985년에 제작한 <와상>에 눈이 갔다.
선생님께서 여인의 누드 nudel(알몸)를 많이 다뤘던 터라 그랬던 모양이다.
검은색의 형상이 흰색 바탕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작품이다.
 
선생님은 따뜻하고 정이 많으신 멋쟁이였다.
필자가 소심한 성격 탓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있을 때, 우연한 일로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면서 친해졌다.
선생님은 시내에 있는 풀하우스라는 곳을 좋아하셨다.
거기서 차를 마시면서 이중섭, 천경자를 비롯한 우리 근대 미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장구한 추상미술의 흐름과 대구 현대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선생님은 살아있는 미술사 책 같았다.
가끔 아끼는 제자의 작업실이나 갤러리 gallery(화랑畫廊)에 데리고 가시기도 했다.
 
미술잡지에 몸담고 있는 대학 동기가 서울에서 오면 선생님 댁에서 만나곤 했다.
선생님의 원고나 자료를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필자가 우편으로 보내줬다.
선생님은 그 친구와 필자에게 누드 크로키 nude croquis(짧은 시간에 누드의 모티브를 간략하게 윤곽 정도를 그리는 화법) 작품을 하나씩 주셨다.
우리는 의리를 상징하는 증표인 양 신나했다.
 
선생님의 연세가 여든 후반을 넘기면서 거동이 불편해지자 바깥 출입이 어려웠고, 필자가 찾아뵙는 일도 줄었다.
그러면 작업실로 전화해서 안부를 물으셨다.
선생님은 제자를 살뜰하게 챙기셨다.
아흔이 넘은 어느 날, 부탁할 일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댁에 가보니,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몸으로 소파에 꼿꼿하게 앉아 계셨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물기가 줄고 살이 빠져서 정신만 형형하게 남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힘없이 앉아 계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짠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선생님은 일제강점기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일본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만주 하얼빈으로 갔다.
8·15 광복을 맞아 1946년 귀국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으로 다시 암울한 시대를 맞는다.
1953년 나라가 안정을 찾으면서 제1회 개인전을 가진다.
1955년 대구미술가협회를 발족하고, 1964년 계명대 미술대학을 창설한다.
1972년에는 신조회를 결성하고 대구지역 현대미술을 활성화시킨다.

뛰어난 교육자이자 작가로서 우리 근·현대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체험하며 아흔두 해 동안 추상미술의 번창에 혼신을 다했다.

 

<와상>은 빠른 붓질과 선으로 여체의 아름다움을 리드미컬한 곡선으로 추출해내고 있다.

캔버스는 바다가 되었다가 들판이 되기도 하고 안락한 실내로 보이기도 한다.
검은색의 여인은 마치 구름 위에 둥실 떠 있는 것 같다.
여인 밑에는 또 다른 흰색의 여인이 암시돼 있다.
위쪽 공간에는 물고기 이미지가 유유히 비행한다.
검은색 여인의 몸에는 속도감 있는 필치로 여러 가지 기호를 더해놓았다.
볼수록 흥미롭다.

추상미술은 마음으로 느끼면 된다.

 
선생님의 작품에는 해체된 형상과 기호가 등장한다.
형태를 깨고 틀을 부숴도 그 속에는 사람의 형상이 내재돼 있다.
그래서 선생님의 작품은 따뜻하다.
시인 박두진이 "정점식 씨의 개인전을 보러 공보원화랑엘 가서 걸려 있는 그림들과 그의 모습을 번갈아보다가 나는 문득 무언가 벅차오르며 눈물이 고여올라 슬며시 나와 버렸다. 화가 정점식은 무엇보다도 소박해서 좋다"(영남일보 1953. 6. 15)고 했듯이 선생님 주위에는 늘 사람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선생님은 사람을 좋아했고, 작품 역시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정점식 선생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계명대학교 극재미술관에서 2017년 10월 16일부터 24일까지 전시를 연다.
앞서간 예술가의 큰 족적에 가슴을 밀착시켜 보는 것은 이 땅에 사는 행운이자 복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의 예술혼에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면 청명한 가을 하늘이 더 높아 보일 것이다.

 
※출처
1. 김남희 지음, '옛 그림에 기대다', 계명대학교 출판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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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4. 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