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태초에 창조론이 있었다 본문

고고학을 하면서 안타까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특히나 종교적인 신념으로 고고학과 고고학자의 연구에 회의적인 시각을 볼 때 많이 아쉽다.
지금도 종종 고고학자의 발굴은 다 잘못되었으며 인간의 역사는 6,000년을 넘지 못한다는 주장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고고학자에게 이런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이것은 중세 이후 몇백 년 동안 서양을 지배해온 생각이었고, 고고학은 그런 편견을 극복하며 발전했기 때문이다.
○지구의 역사는 6,000년일까?
20세기 초반까지도 고고학자는 인류의 역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연구하는 데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그 이유는 서양 사회를 지배해온 창조론創造論 Creationism 때문이었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 천지창조를 글자 그대로 믿는 시각이 강했다.
심지어 최근에도 그런 주장을 믿는 사람이 있다.
몇 년 전에 어떤 장관의 청문회를 하는 과정에서 창조론이 등장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자연과학을 오랫동안 연구한 어던 교수 출신 후보자가 정작 지구의 역사는 6,000년이라는 시각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후보자는 그러한 이야기를 신앙 차원에서 했을 뿐 진화론도 존중한다고 설명했지만, 많은 사람은 진지하게 지구의 역사를 6,000년이라 믿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꼈다.
근대까지도 서양 사회에서 지구 역사 6,000년 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비난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사실 지구 역사 6,000년 설을 본격적으로 주장한 대표적인 사람은 아일랜드 Ireland의 주교 제임스 어셔 James Ussher(1581~1656)로, 그는 성경을 역산해서 서기전 4004년 10월 23일 오전 9시 30분에 세계가 창조되었다고 보았다.
성경의 <창세기>에 나온 사람의 나이와 사건을 역산한 결과라고 한다.
어셔 이외에도 17세기에 성경으로 지구의 연대를 산출하려는 사람은 많았고, 대부분 서기전 4000년 전후로 생각했다.
구약을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구약의 내용만으로 대체적인 수준에서라도 연대를 추정하기는 결코 불가능하다.
절대로 이렇게 자세하게 나올 수 있는 정도의 정보는 없다.
상당 부분은 자의적인 해석에 근거한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 신학자가 6,000년 전(즉 서기전 4000년)으로 지구의 역사를 보고 싶었던 데에는 성경의 구절을 한 자 한 자 사실로 믿고 해석하는 축자주의逐字主義(글을 해석하거나 번역할 때에 원문의 글자 하나하나를 좇아 그대로 하는 방식을 내세우거나 고집하는 태도)에 근거한 것이다.
예컨대 신약 <베드로후서> 3장 8절 구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나 구약 <시편> 90장 4절에 나온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라는 표현에 근거한다.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하느님의 하루는 천 년에 해당한다.
그리고 하느님은 6일 만에 세상을 창조했으니 지금부터 6,000년 전에 대략 지구가 만들어졌다는 뜻이 된다.
이런 역법은 중세 시대 유럽에 널리 퍼져 있었다.
별다른 연대 추정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성경에 나온 문구를 글자 그대로 믿어서 지구의 역사를 추정해왔다.
게다가 나라마다 자기의 입맛에 맞는 창조설을 믿었다.
이를테면 러시아 Russia에서는 서기전 300년 무렵에 정리된 ≪70인역의 성경 septuagint≫에 근거해서 서기전 5508년에 지구가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러시아에서 이 70인역의 비잔틴력 Byzantine calendar을 믿은 이유는 몽골의 침략과 관련이 있다.
러시아는 1236년에 시작된 칭기즈칸 Genghis Khan(성길사한成吉思汗)(1162~1227)의 손자 바투 칸 Batu Khan(1205~1255)의 침략으로 금장한국金帳汗國(킵차크 칸국 Kipchak Khanate)의 지배에 놓였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200년 몽골 Mongolia(몽고蒙古)의 지배를 벗어나 15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독립하고 '모스크바 대공국'을 건설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가 몽골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는 시기는 1480년이다.
그러니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하느님이 예비하신 사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창조 시기에 관한 여러 설 가운데서 서기전 5508년 설을 따르면 공교롭게 러시아가 완전한 독립을 이룬 1480년은 천지창조 후 6,988년, 거의 7,000년이 된다.
성경에 나와 있는 하느님의 하루는 지상의 천 년이라는 설을 대입하면 하느님의 일주일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러니 타타르 Tatars(몽골 제국을 이룬 몽골계나 튀르크계 따위의 유목 부족)의 지베를 종식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하느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큰 사건에 맞추어진 셈이다.
얼핏 들으면 예전 사람의 비과학적인 생각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思考는 단순히 지나간 믿음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상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이비종교는 자신의 해석에 맞추어서 종말론을 주장하고 미래를 예언한다.
1980년대에 한국과 일본을 강타했던 노스트라다무스 Nostradamus(1503~1566)의 1999년 지구 멸망론, 그리고 마야력曆 Maya Calendar을 해석하여 나타난 2012년 세계종말론 같은 이야기가 사실은 자기의 입맛에 맞게 다양하게 역법을 추산하고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의 역사 해석에 신성과 권위를 부여한다는 증거이다.
○모든 것은 중세에 발생했다!
중세의 학자는 극히 단편적인 증거를 확대 해석해서 연대를 자신의 마음대로 정해버렸고, 그것을 종교적인 권위로 모든 사람에게 강조했다.
사실 이런 식의 유사과학類似科學 pseudoscience이 세계 곳곳에서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10월 혁명 직후에 유사역사학자가 등장했으니, 바로 레닌 Vladimir Ilyich Lenin(1870~1924)과 함께 혁명을 주도한 모로조프 Nikolai Morozov(1854~1946)라는 과학자였다.
그의 유사역사학은 황당한 역사 해석에서 시작되었다.
모로조프의 방법은 중세 신학자들이 주장한 '6,000년 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1921년에 ≪크리스토스 Khristos≫라는 책을 통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린 시점의 월식과 일식을 근거로 예수는 실제로 5세기에 살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타타르의 멍에 Tatar yoke'라 불리는, 1240~1480년 동안 러시아가 몽골 킵차크 칸국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도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황당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모로조프는 소련 시절 영향력 있는 당원이었기에 자신의 책을 출판할 수 있었고, 그의 유사역사관은 최근에도 러시아에서 포멘코 Anatoly Fomenko(1945~ )라는 수학자로 이어졌다.
포멘코는 모스크바대학교 Moscow State University 수학과 교수이며 러시아과학원(러시아과학아카데미 Russian Academy of Sciences)의 정회원으로 선발될 정도로 자신의 학문에서도 큰 성과를 인정받았다.
그런데 그는 자신만의 기법으로 개발한 계산법에 따르면 고대 로마 Roma(영어 Ancient Rome), 이집트 Egypt, 그리스도 Christ의 탄생 따위가 모두 중세에 일어난 일이며, 실제로 이 세상의 역사는 1,0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포멘코는 모든 고대 문명의 연도를 완전히 다르게 작성해서 혼란을 주고 있다.
포멘코의 황당한 주장은 일고의 가치가 없을 정도였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의 전문인 수학 연구를 통해서 쌓은 여러 직위를 강조하고 '수학 전문가'이기 때문에 다른 역사학자와는 다르다는 억지 논리를 내세웠다.
그의 이러한 황당한 주장은 일반인의 관심을 끌었고 2011년 이후 그의 책은 몇십 만 권이 팔렸다.
그리고 진정한 역사와 엉터리 역사가 섞여 있는 주장 속에서 피해자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 어려운 젊은 사람들이었다.
한국도 비슷한 경우가 있으니, 우리나라 사람은 입버릇처럼 '반만 년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 근거는 사실 매우 빈약하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를 서기전 2333년으로 간주하고 그에 근거해서 우리 민족의 기원을 본 것이다.
1919년 2·8 독립선언문에서는 4,300년 역사로 되어 있다.
그 뒤 1923년에 간행된 박해득이 쓴 ≪반만 년 조선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5,000년 우리 역사라는 말이 등장했다.
지금도 반만 년 역사라는 말이 참 많이 쓰인다.
하지만 실제 한국의 역사가 5,000년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나 교과서는 없다.
다만 '반만 년 역사'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도 독자적인 역사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성으로만 남아 있다.
어떤 사람은 왜 고고학자는 이런 잘못된 주장에 침묵하거나 적극적인 비판을 하지 않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실제로 필자를 포함한 많은 학자가 다양한 매체와 유튜브 따위를 통해서 이러한 의견에 문제가 있음을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학자들의 설명은 신중하고 또 자세하게 논지를 들기 때문에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거나 재미있게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튜브 같은 매체의 특성상 자극적이고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주제가 더욱 인기를 끌고 검색에서 상위를 점한다.
훙산(홍산紅山)문화, 고조선, 파라오 Pharaoh의 저주 같은 주제를 검색하면 학자들이 정확하게 알려주는 꾸림정보(콘텐츠 contents)보다는 자극적인 꾸림정보가 상위를 점하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또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고고학자는 언제나 적은 인력과 자본으로 발굴과 연구를 하며 고군분투 중이다.
수많은 발굴과 연구에 시간을 들이기도 바쁜 상황에서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일일이 반박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다.
상징적인 연대와 실제 역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역사는 고고학의 큰 걸림돌이다.
나아가 한번 잘못 형성된 과거에 대한 인식을 교정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증거는 누적되고 반복된다
고고학자는 창조론을 글자 그대로 믿는 신학관과 맞서고, 인류의 역사를 증명하기 위해서 몇백 년을 싸워왔다.
고고학이 창조론을 극복하는 첫 번째 발견은 지질학에서 이루어졌다.
18세기 아일랜드 Ireland 학자 제임스 허턴 James Hutton(1726~1797), 그리고 그의 뒤를 이은 영국 UK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 Charles Lyell(1797~1875)을 통해서 지층 누적의 법칙(또는 동일 과정 반복의 법칙)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 법칙은 땅에 지층은 동일한 과정으로 한 층 한 층 쌓여간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즉 밑에 깔려 있는 지층은 위의 지층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흙을 쌓아올리면 밑에 깔려 있는 것이 위의 층보다 먼저 생겼다는 원리이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원리가 지질학과 고고학이 탄생하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그 이전까지의 지질학적 인식은 성경의 틀에 갇혀 흙이 한 층씩 쌓여 지층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대를 믿지 않은 사람은 땅을 파고 조사하다 보면 매머드 mammoth나 공룡같이 지금은 없는 동물 뼈가 나오는 경우에 '천변지이설天變地異說 Catastrophism'(과거의 지구에 몇 차례의 큰 재앙이 일어나, 그때마다 살아남은 생물이 번식하여 지구상에 널리 분포하게 되었다는 학설)을 제기했다.
성경의 대홍수 시절에 공룡같이 거대한 동물은 노아의 방주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설명하기도 했고,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기 전에 창조를 몇 차례 했었던 흔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고학 증거는 계속 나왔고, 급기야 구석기시대의 유적에서 지금은 사라진 동물과 인간의 뼈가 같이 발견되었다.
공식적으로 구석기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프랑스 France의 세관원이며 고고학을 연구했던 자크 부셰 Jacques Boucher de Crèvecœur de Perthes(1788~1868)이다.
그는 1830년대에 프랑스 솜므강 Somme River 근처에서 50만 년 전 유적에서 구석기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발견은 1847년에 처음으로 세상에 공표되었다.
자크 부셰는 실제 자신이 발견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제대로 알아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발견한 구석기는 창조론이 믿는 6,000년 이전에 이미 사람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세상을 뒤흔드는 틀(체계, 패러다임 paradigm)의 전환이었다.
물론 기독교계는 이러한 발견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했다.
고고학자가 기존 성경 중심의 연대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었던 때는 다윈 Darwin의 진화론과 마르크스 Marx의 유물론이 널리 받아들여진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였다.
지금도 고고학에서 밝힌 역사의 전개와 자신이 믿는 종교적인 신념이 다르다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6,000년 설은 중세 이후 등장한 하나의 설일 뿐이다.
잘못된 신념은 고고학의 발달을 저해할 뿐이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창조과학創造科學 creation science'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필자는 그분들의 신념과 종교에 대한 열정을 존경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창조과학자가 이야기하는 고고학 자료는 19세기 고고학이 아직 걸음마 단계일 때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일부 증거만을 조합해서 만든 논리의 전개는 '초고대 문명론'이나 수많은 유사역사학자들의 이야기급이다.
역설적이게도 6,000년 설을 처음 주장한 기독교의 성직자들이 고고학의 발달에 크게 공헌했다.
≪인간현상 Le phénomène humain(영어 The Phenomenon of Man)≫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테야르 드 샤르댕 Pierre Teilhard de Chardin(1881~1955) 신부는 중국과 만주 지역 고고학(특히 구석기)에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 100여년 전에 한국 함경북도에서도 최초로 청동기시대를 조사한 사람도 독일인 German 짐머만 Fidolin Zimmermann(한국 이름은 민덕기閔德基)(1900~1946) 신부였다.
기독교를 믿는 것이 현재의 고고학적인 연구를 하는 것과 전혀 배치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사과학에 대한 반대를 창조론이나 특정한 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고고학에서 필요한 것은 실제 유물과 자료에 근거한 논리적인 추론과 연구이며, 어떠한 결과도 열린 마음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고고학적으로 증명되고, 지속된 연구로 검증이 된다면 어떠한 기존의 고고학적 통설에 얽매이지 않고 기꺼이 견해를 수정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고고학자의 태도이다.
하나의 자료를 내고 기존의 통설에서 한 줄을 바꾸기 위하여 지금도 고고학자는 몇십 년을 바치고 있다.
마찬가지로 몇만 점의 증거는 외면한 채 예외적이거나 잘못 인용된 증거 한두 개로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내세우고 고고학의 연구를 부정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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