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단원 김홍도 '무동' 본문
'<무동>과 함께 춤을'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멋모르고 엄마의 손에 이끌려 따라간 곳이 무용학원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피아노를 배우러 간 적이 있고, 몇 년 뒤 다시 춤을 배우러 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춤이 몸에 맞았다.
재미있었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서 오래 다니지는 못했다.
지금도 못내 아쉬운 것은 그때 춤을 그만둔 일이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무동舞童>은 지난날의 내 모습 같아 더욱 애착이 간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은 긴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허약한 몸을 생각하면 무용을 그만두길 백번 잘한 것 같다.
김홍도는 서민의 마음으로 서민들의 생활상을 세심하게 잘 표현했다.
<씨름>을 통해 우리 민족의 고유 풍습을 박진감있게 구현했는가 하면, <무동>으로 한민족의 흥겨움과 낙천성을 절묘하게 그렸다.
<무동>의 춤사위는 전염성이 강하다.
보고 있으면 화면 밖으로까지 흥겨움이 전해진다.
악사들은 둥글게 원을 그리듯 앉아 있고, 그 원의 정점에서 '무동'이 춤을 춘다.
파도 타는 사람(서퍼 surfer)이 파도를 타듯 음의 선율을 춤으로 승화시킨다.
흥겨운 동작에서 느껴지는 유연성이 절제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둥근 얼굴은 함박웃음을 머금었고, 머리 위로 치켜올린 왼쪽 팔은 바람을 품었다.
옆으로 뻗은 오른쪽 팔에서는 옷자락이 춤을 춘다.
옷은 옷대로, 몸은 몸대로, 또 보는 이는 보는 이대로 춤사위에 물든다.
살포시 들어 올린 다리가 멋드러진다.
살짝 뒤꿈치를 들어 힘을 준 코고무신의 콧날이 유난히 오뚝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넘실넘실 춤추는 바람과 같다.
만약 필자가 춤꾼이었다면 어땠을까.
쉽게 상상이 안 된다.
무동이 손을 내민다.
함께 춤추자며 필자를 잡아끈다.
춤이 자신과의 싸움의 결정이듯, 고독이 예술의 깊이를 더한다.
회화작업도 혼자서 추는 춤이기는 매한가지다.
무동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붓을 든다.
※출처
1. 김남희 지음, '옛 그림에 기대다', 계명대학교 출판부,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6. 5. 3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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