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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재밌는 면역 이야기 2: 플라스틱 거품 안의 소년, 데이비드

새샘 2026. 5. 4. 14:01

거품 벽을 사이에 두고 데이비드를 관찰하는 의료진 모습(출처-출처자료1)

 

한 부부가 첫째 아들을 유전성 면역결핍증 hereditary immunodeficiency으로 잃었다.

그 아이는 선천적으로 고장 난 면역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세균의 무차별 공격에 대응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야 했다.

슬픔의 시간이 지나고 부부에게 다시 하늘의 선물이 찾아왔다.

엄마 캐럴 Carol Ann이 새로운 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담당 의사는 조심스러웠다.

둘째 아이 역시 면역결핍으로 태어날 확률이 50퍼센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고민한 부부가 내린 최종 결정은 둘째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이가 정상으로 태어날 확률도 50퍼센트나 되지 않는가!

부부의 결정에 공감한 담당 의사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병원 설비를 보강했다.

만약 둘째 아이가 면역결핍증으로 태어나면 골수이식을 통해 새로운 면역세포를 받을 때까지 세균과 접촉해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부모의 기도와 의료진의 대비 속에 간절한 시간이 흘렀다.

 

1971년 9월 21일, 감염 예방을 위한 의료진의 엄격한 관리 속에 사랑스러운 데이비드 필립 베터 David Phillip Vetter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데이비드는 엄마 품에 안길 수 없었다.

태어난 지 20초 만에 의료진에 의해 무균 환경으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거품(버블) plastic bubble 안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을 가정한 의료진이 철저히 대비한 덕에 데이비드는 세균으로부터 안전한 곳에서 면역검사 결과를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데이비드가 정상으로 태어나길 기도했던 많은 이들의 바램과는 달리 데이비드 역시 유전성 중증복합면역결핍증 hereditary severe combined immunodeficiency(SCID)으로 판정되었다.

의료진은 골수 이식을 준비하고 데이비드와 완전히 일치하는 골수를 가진 기증자을 찾아 나섰다.

부모와 의료진의 간절함 바램 속에도 기증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데이비드의 플라스틱 거품 속 생활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충치만 생겨도 감염으로 죽을 수 있기에 데이비드는 네 살까지 단 것을 먹어보지 못했다.

안타깝게 여긴 의료진들은 그를 위해 생일 케이크 cake를 선물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케이크를 맛보며 해맑게 웃음 짓는 데이비드 모습에 부모와 의료진은 잠시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기약 없는 시간이 흘렀다.

 

데이비드가 성장하면서 그를 감싸주던 거품도 커져갔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잘 이해했고, 불편함을 참아냈으며, 질병을 이겨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거품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친구들과도 잘 지냈고, 가정교사에게 수업도 착실히 받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데이비드는 거품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길 간절히 원했다.

미국 항공 우주국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NASA)은 그를 위해 24단계의 소독을 거친 무균 우주복을 선물했다.

우주복을 입히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었다.

1977년 7월 29일은 데이비드와 엄마 캐럴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태어나서 6년 만에 엄마와 아기가 서로를 안을 수 있었던 꿈 같은 하루였기 때문이다.

우주복 배터리 battery가 소진될 때까지 데이비드는 처음으로 거품 밖으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우주복을 입고 그가 발을 디뎠던 세상은 그 자체로 광대한 우주였다.

 

1983년까지도 데이비드와 100퍼센트 일치하는 골수 기증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아도 골수 이식이 성공하는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를 평생 거품 속에서 살게 할 수 없었던 부모와 의료진은 고심 끝에 누나 캐서린 Katherine의 골수를 이식해주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누나의 골수가 바이러스 virus에 오염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상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흔한 바이러스였지만 면역력이 없었던 데이비드는 그것을 이겨낼 수 없었고 그 결과 그에게 심한 감염증 및 혈액암이 발생하고 말았다.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데이비드를 위해 의료진은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데이비드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1984년 2월 7일 의료진은 데이비드를 플라스틱 거품 속에서 꺼내주기로 결정했다.

데이비드가 이제 다시는 거품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골수 이식 후 4개월 만에 그리고 태어난 지 12년 만에 거품 밖으로 나와 우주복 없이 맨 몸으로 세상에 처음 발을 디뎠던 데이비드는 그 후 보름을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의 키스 kiss를 받은 뒤였다.

데이비드를 위해 헌신했던 텍사스 어린이병원 Texas Children's Hospital 의료진은 면역결핍에 대한 연구, 진단, 치료를 전담하는 '데이비드 센터 David Center'를 세워 그를 기렸다.

삶의 소중함, 부모의 사랑, 의료진의 헌신이 집약되어 있는 감동적인 데이비드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1976년 <플라스틱 거품 안의 소년 The Boy in the Plastic Bubble>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져 세상에 알려졌으며, 면역 기능이 우리의 삶에 있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면역 이야기'(반니, 2023)

2. 구글 관련 자료

 

2026. 5. 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