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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새샘 2026. 5. 5. 14:02

고고학이 막연하게 땅을 파고 유물을 캐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분명 아니라고 말해두겠다.

고고학자가 발굴한 유물과 유적은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널리 활용되어 우리와 함께한다.

고고학자가 발굴한 유적은 때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서 지역의 자랑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전쟁에서 희생된 전사를 찾는 기법에도 동원된다.

고고학자가 발굴한 유물 역시 다양한 박물관에서 전시되어서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

하지만 몇천 년의 시간이 지나서 발견된 유물은 대부분 상태가 불안정하여 추가손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무작정 전시할 수도 없다.

그리고 중요한 유물은 사방에서 전시하고 싶어도 옮겨 다니기 어렵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유물을 복제해서 전시하는 기법이 도입되고 있다.

 

위조僞造 forgery(어떤 물건을 속일 목적으로 꾸며 진짜처럼 만듦)와 복제複製 replication(본디의 것과 똑같은 것을 만듦), 비슷해 보이지만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유물은 한정되어 있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 원형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과거 유물을 직접 보고 그것을 느끼려는 사람의 욕구 또한 외면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유물을 진본에 가깝게 복제해서 많은 사람과 함께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복제에는 또 다른 순기능도 있다.

땅속에서 몇천 년 동안 묻혀서 원래의 빛을 잃어버리고 초라하게 남은 것을 다시 찬란한 모습으로 되돌려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복제는 아주 중요한 기술이다.

집에 있는 낡은 흑백사진을 복원해서 생생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

 

<인디애나 존스 Indiana Jones> 같은 영화부터 우리 주변의 전시까지, 자신이 보는 유물이 진짜인지 의심을 품는 사람이많다.

복제품과 위조품은 얼핏 비슷해 보여도 그 뜻은 완전히 다르다.

위조는 사람을 속이려는 목적으로 만드는 것인 반면에 복제는 고고학 유물을 모두가 함께 즐기면서 후대에도 그 유물을 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방법이다.

제대로 전시되기 어렵거나 여러 곳에서 모두 보고 싶어 할 때에 정교한 복제는 그 유물의 느낌을 모두에게 전하는 동시에 유물을 제대로 보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심지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물은 복제품이 진품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2021~2022년에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투탕카멘 파라오의 비밀 The Secret of Pharaoh Tutankhamun>전은 오로지 모조품으로만 구성되었지만 위화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으며 생생한 발굴 현장의 느낌을 전했다는 평을 받았다.

고고학에서 복제는 단순하게 유물을 복사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 유물을 대체하는 주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구려 벽화

 

일반적으로 진품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복제품이 더 나은 경우도 있다.

바로 고구려의 벽화에 대한 이야기다.

벽화는 땅속에서 밀폐되었기 때문에 몇천 년 동안 보존될 수 있었다.

하지만 개봉하는 순간 벽화의 원형은 급격하게 망가질 수밖에 없다.

사람이 드나들면 그 열기와 입김으로 무덤 방 안에는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그리고 그 물방울이 떨어지거나 흐르면 벽에 붙어 있는 벽화의 안료도 함께 떨어지거나 번지게 된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현재 기술로는 밀봉된 상태보다 더 좋게 유물을 보존하는 방법은 없다.

그러니 벽화가 발견되면 함부로 공개하지 않고 보존을 완벽히 하는 것이 제일 좋다.

 

그런데 100여 년 전에 발견된 수많은 고구려 벽화의 경우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유물이나 벽화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벽화고분의 돌문을 열고 조사를 했다.

그렇게 개방되고 몇십 년이 지나자 대부분의 벽화고분은 그 원형을 알아볼 수 없게 훼손되었다.

게다가 적외선카메라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어두컴컴한 무덤 안에서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20세기 전반기는 흑백카메라가 전부이니 기계로 벽화의 생생한 색감을 재현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래서 당시 고고학자는 벽화를 조사하는 데에 화가를 동행했다.

카메라 같은 것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화가를 동원해서 벽화를 발견될 당시 화려한 색감을 그대로 재현해서 복제 그림을 그렸다.

화가가 그린 복제그림은 모사도模寫圖라 불리며 발견 당시의 생생한 고구려 벽화의 모습을 가장 정확히 전한다.

지금은 이미 벽화가 많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첨단기술을 동원한다고 해도 모사도보다 더 정확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의 생생한 고구려 벽화는 바로 이 모사도에서 근거한 것이 대부분이다.

100년 전 모사도는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의 고구려실에 전시되어 있는 사신도 벽화 그림에서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복제 기술은 고분벽화뿐만 아니라 몇만 년 동안 밀봉되어서 보존될 수 있었던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에도 해당된다.

동굴벽화의 복제 기술이 가장 잘 발달된 나라도 라스코 동굴 Lascaux Caves 같은 동굴벽화가 많이 발견된 프랑스 France이다.

프랑스는 수많은 구석기시대 동굴벽화를 밀봉하고, 그 근처에 비슷한 복제동굴을 만들어 관광객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 복제된 동굴마저도 사람이 많이 가면 그 그림이 손상된다는 이유로 관람객 수를 제한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복제 기술로 연천 전곡선사박물관에서는 정말 진품 같은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와 매머드 mammoth 뼈로 지은 집의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런 복제 기술은 유물도 보호하고 관광객도 만족시키는 일석이조의 역할을 한다.

 

 

○비파형동검, 북한과 중국의 고조선 역사 전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비파형동검. 가장 왼쪽이 북한과 중국의 공동 고고발굴대가 중국 다롄에서 발굴한 것의 복제품이다.(출처-출처자료1)

 

우리는 역사 시간에 고조선을 대표하는 유물로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Liaoning-type bronze daggers(또는 Lute-shaped bronze dagger)을 배운다.

이 비파형동검은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고조선실에도 전시되어 있다.

이 가운데는 휘어지고 부러져서 대부분의 관객은 그냥 지나치는 비파형동검 하나가 있다.

사실 그 유물에는 놀라운 사연이 숨어 있다.

약 60년 전에 중국의 다롄(대련大连/大連)시 근처에서 발굴된 고조선의 무덤에서 북한과 중국의 학자들이 공동 조사한 발굴품을 복제한 것이다.

이 복제품에는 지난 60년 동안 치열하게 고조선의 역사를 밝히려고 했던 북한의 노력이 숨어 있다.

 

1949년에 중국공산당은 중국을 통일하면서 역사적으로 한국의 일부였던 간도間島 지역(중국 길림성吉林省의 동남부 지역으로, 두만강 유역의 동東간도와 압록강 유역의 서西간도를 통틀어 이른다)을 모두 차지했고, 이에 북한은 중국에 강력하게 항의하던 시점이었다.

새로 통일한 나라의 기반이 약한 중국은 북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당시 중국의 고고학 연구서에서 고구려와 관련된 부분을 자체적으로 검열해서 삭제할 정도였다.

북한은 먼저 1957년에 리지린(1916~?)을 베이징대학(북경대학北京大学/北京大學) Peking University에 보내서 고조선을 연구하도록 하는 한편, 외교 경로(채널 channel)를 통해서 중국과 협의했다.

그 결과 1963년 6월 북한 학자 20여 명 앞에서 저우언라이(주은대周恩來)는 만주는 한국 역사의 일부라는 점을 수긍하고 중국과 북한이 만주에 있는 고대 한국사를 공동 조사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이후 1963년부터 1965년까지 3년 동안 만주 일대에서 공동으로 유적 발굴을 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한국사를 위한 공동 발굴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만주의 역사를 가져가는 것에 불안을 느낀 중국과의 갈등으로 사회주의 형제라는 북한과 중국의 역사 인식은 이때를 기점으로 서로 완전히 다른 길로 가게 되었다.

북한은 고조선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를 얻어 갔고 중국은 강력한 중화사관中華史觀으로 나아갔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사업은 공식적으로 2002년에 시작되었지만, 그 발단은 1930년대의 일본의 만주 침략에서 태동했고, 북한과 고조선 역사 전쟁으로 1960년대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중국과 북한은 발굴한 유물을 선별해서 반반씩 나누기로 했다.

그 결과 비파형동검을 포함한 중요 유물의 반은 북한에서 소장했다.

그리고 2006년에 ≪북녘의 문화유산≫이라는 제목으로 북한의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의 유물 90여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었다.

그 전시품에 당시 다롄시에서 발굴한 비파형동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유물을 북한으로 반환하기 전에 그 동검을 복제해두었고,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것이다.

비록 남한과 북한은 수많은 갈등으로 점철되었지만, 역사의 시작에 대해서는 모두 한목소리로 고조선과 비파형동검을 이야기한다.

이렇듯 볼품없어 보이는 동검 하나에 지난 60여 년 동안 이어진 한국과 중국의 역사 전쟁, 그리고 비록 분단되었지만 한결같은 남북의 고조선에 대한 열정이 담겨 있다.

 

 

○베이징원인, 동아시아 인류의 기원을 밝히다

 

동아시아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대표적인 고인류화석, 베이징원인(북경원인北京人) Peking Man(Homo erectus pekinensis)을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진짜 유물은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베이징원인은 중국, 나아가 동아시아의 고인류를 대표하는 유물로서 그것이 발견된 유적은 베이징 동남쪽 저어커우뎬(주구점周口店) 동굴이다.

1920년대에 처음 발견된 이래 세계적인 큰 화제話題(센세이션 sensation)를 일으켰는데, 당시 중국은 혼란스러운 시절이었다.

처음에 미국의 학자를 중심으로 연구하다가 나중에 그들과 협력하던 페이원중(배문중裵文中)이 조사를 이어왔다.

하지만 국공내전과 일본의 중국 침략으로 혼란스럽던 시절에 이 세계적인 유산인 베이징원인의 사람뼈(인골人骨)가 그만 분실되고 말았다.

 

베이징원인의 실종은 수많은 책이 나올 정도로 영원한 고고학계의 이야깃거리이다.

1941년에 당시 일본군이 베이징을 침략하면서 급하게 이 사람뼈를 미국으로 옮기려고 했고, 그 와중에 친황다오(진황도 秦皇島) Qinhuangdao 항구 부둣가에서 사라져 버렸다.

지금도 미국 CIA와 일본 공작설이 난무하고 있어 수많은 입방아거리(가십 gossip 거리)가 되고 있다.

어쨌거나 분명한 점은 당시 중국도 전란으로 유물을 제대로 지킬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때 중국에서 옛사람뼈(고인골古人骨)를 '중화민족의 역사'로 생각하면서 보물로 생각하는 일반인은 거의 없었다.

아마 베이징원인을 어떤 나라가 훔쳐갔다기보다는 그냥 전란 중에 아무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분실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부둣가의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어쨌거나 수많은 공작 이전에 자기의 역사적 유물인 사람뼈를 제대로 못 챙긴 중국에게 뼈아픈 역사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에도 많은 베이징원인의 모습과 사람뼈를 볼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진품이 없어지기 전에 이 사람뼈를 연구한 독일계 미국인 고생물학자인 바이덴라이히 Franz Weidenreich(1873~1948)가 자세하게 떠 놓은 복제품이다.

그는 연구의 편의를 위해서 아주 세밀하게 복제했고, 그 덕에 지금도 베이징원인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 곁의 소중한 가짜

 

나주 정촌 고분에서 출토된 황금 신발을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는 복제품(출처-출처자료1)

 

우리나라의 수많은 신시가지에는 유적 공원이 있고 복제된 그 지역의 선사시대 유적과 유물이 있다.

암사동의 선사시대 공원, 김포의 운양동 지역을 포함하여 우리 근처에는 많은 복제품이 있다.

사실 그들은 우리가 살 터전을 짓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굴된 유적의 흔적이다.

단순한 복제품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옛 사람의 흔적인 셈이다.

 

사실 가짜와 복제품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뜻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가짜는 사람을 속이기 위해서 악의적으로 만든 것이고, 복제품은 다양하게 생기는 부득이한 상황에서 진품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박물관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진품이 사라지거나 파괴될 경우 진품을 대신하는 유물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박물관도 많아지면서 전시에는 복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아지고 있다.

관람객 가운데는 복제품이라고 하면 흥미를 잃거나 대충 보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복제품이야말로 소중한 유물을 잘 보존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진짜 유물과 역사를 알려주는 선한 역할을 한다.

고고학자의 고증을 거친 복제품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할 때 우리의 역사와 문화재는 더욱더 많이 보존될 것이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2. 구글 관련 자료
 
2026. 5. 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