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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문명의 꽃, 나일강의 위엄

새샘 2026. 5. 21. 11:20

1830년 무렵의 이집트 나일강 범람(출처-출처자료1)

 

허준: 나일강 Nile River이 고대 이집트 Ancient Egypt 문명의 탄생을 책임졌을 뿐만 아니라 현대 이집트에서도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맞나요? 그렇다면 나일강은 인류 역사상,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화수분(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요. 정녕 지구상에 나일강만큼 완벽한 화수분은 없는 걸까요? 아니면 이집트인들만큼 환경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 없는 걸까요?

 

 

곽민수: 나일강이 갖고 있는 특별한 특성이 있다면 바로 정기적인 범람입니다. 강이 범람한다고 하면 무서워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할 수 있는데요. 나일강의 경우 주기적으로 범람해 예측이 가능하고 피해도 거의 없습니다. 반면 대부분의 범람하는 강들의 경우 언제 범람할지 예측할 수 없으니 그때마다 피해가 막심해 몇천 년 동안 만족하며 살 수 없었죠. 이용하기보다 통제하려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고 보면 될 겁니다. 나일강은 통제하기보다 이용하려는 쪽으로 발전해 왔고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대의 달력으로 7월 중순부터 범람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서너 달 정도 지속되죠. 이 홍수기, 범람하는 계절을 아케트 Akhet라고 하고요. 범람이 끝나면 뭘 해야 할까요? 농사를 지어야죠. 이 파종기, 씨를 뿌리는 계절을 페레트 Peret라고 합니다. 씨를 뿌리고 나면 뭘 해야 하나요? 추수를 해야죠. 이 수확기, 수확을 하는 계절을 셰무 Shemu라고 하죠. 고대 이집트인들은 1년을 3기로 나눈 이집트력을 만들었는데 다름 아닌 나일강의 리듬에 맞춰져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시기를 기준으로요.

 

주기적인 범람은 인간에게 여러 가지 이득을 가져다주는데요. 이를테면 홍수로 잠겼다고 드러난 땅은 지력地力(농산물을 길러낼 수 있는 땅의 힘을 뜻하며, 흙에 포함된 유기성 영양분을 가리킨다)이 매우 높아집니다. 나일강의 전 지역에 걸쳐 비옥한 토지로 탈바꿈하는 거죠.

 

또한 강수량이 적은 곳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물을 끌어다가 써야 하는데 자칫 지력이 소모되고 토지에 소금이 쌓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나일강의 경우 주기적으로 범람하기에 지력이 소모되지도 않고 소금도 자연스레 씻어 냅니다. 농사짓기에 그야말로 지구상 최적의 환경인 것이죠.

 

이뿐만 아니라 주기적인 범람은 고대 이집트의 농업 생산력 증대와 함께 천문학과 역학 발전, 측량술과 수학 발전도 가져다줬습니다. 또 당시 농업이야말로 생존의 모든 것이다 보니,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농민들이 시간적 여유가 많아 피리미드 pyramid를 비롯한 전 지구적 규모의 유적들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죠.

 

나일강이야말로 고대 이집트 문명의 꽃이자 모든 것으로, 찬양하고 축복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던 겁니다.

 

 

박현도: 이슬람 Islam을 예로 들어볼게요. 메카 Mecca/Makkah에서 시작해 메디나 Medina에서 발전했지만, 훗날 권력의 축은 메소포타미아 Mesopotamia에서 자리 잡았죠. 시리아 다마스쿠스 Damascus in  Syria, 이라크의 바그다드 Baghdad in Iraq가 대표적입니다. 유프라테스강 Euphrates River과 티그리스강 Tigris River이 흐르는 지역이죠. 메소포타미아란 말은 두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이고요. 나일강 문명만큼이나 뛰어난 문명을 이 지역에서 이뤘습니다.

 

 

강인욱: 어떤 나라는 영토를 넓히면서 국가 체계(시스템 system)를 만들고 어떤 나라는 영토를 유지하면서 국가 체계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땅에 대한 애착, 토포필리아 topophilia(인간과 장소 사이의 정서적 교감)라고 하는 개념이 있지 않습니까. 좋은 예가 우리나라 역사에 있는데요.

 

고구려가 제20대 국왕인 장수왕 때, 그러니까 5세기 때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천도하면서 남쪽으로 내려왔잖아요. 그때 고구려가 평양 천도가 아닌 요동 쪽이나 북쪽으로 천도하며 진출했다면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았을 거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죠.

 

하지만 그런 주장은 대체로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어요. 장수왕이 뭘 몰라서 남쪽으로 온 게 아닙니다. 시에는 중원과 북방 지역의 발흥으로 쉽게 대치할 수 없는 국제 정세도 한 원인이었어요. 그밖에 여러 원인으로 결단을 내려 남쪽으로 진출했고 결과적으로 꽤 성공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작 들여다보면 만주에서 발흥해 만주에서만 계속 번영하며 국가를 이룬 역사는 없어요. 만주족의 경우 청나라까지 세웠지만 만주 어디에서도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고구려의 남방 진출은 그들이 한국사로 오롯이 엮이면서 지금도 정통성을 유지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여 제가 생각하기에 성공의 기준은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국가의 번성과 유지를 위해 어떤 체계를 만들고 어떻게 유지시켰는가'예요.

 

※출처
1. 박현도, 곽민수, 강인욱, 정요근, 허준 지음, 역사를 보다 2(믹스커피, 2025)
2. 구글 관련 자료
 
2026. 5. 2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