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예찬 '용슬재도' 본문

글과 그림

예찬 '용슬재도'

새샘 2026. 5. 22. 14:26

'화가 예찬의 정신을 떠올리다'

 

예찬, 용슬재도, 원나라 시대, 종이에 수묵, 74.7x35.5cm, 타이페이 고궁박물원(출처-출처자료1)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동자에 피멍이 있었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전날 저녁, 대학 동문 '밴드 BAND'에서 충격적인 글을 접해서 더 그런 것 같다.

필자의 모천母川(물고기가 태어나서 바다로 내려갈 때까지 자란 하천이란 뜻으로 모교母校를 말함)이었던 동양화학과의 폐과가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글을 읽는 순간, 심장이 뛰어 도저히 다 읽을 수가 없었다.

계속 읽다가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동문들이 들고 일어났다.

필자는 동문회장이었지만 좀체 움직일 수 없었다.

때마침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그들은 필자의 침묵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나흘만에 다시 밴드에 들어갔다.

그 다음날, 또 다른 한쪽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이젠 필자를 약하게 낳아준 부모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보기에 화가는 천성이 예민한 부류여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또 강단이 약해서 그림 이외의 언쟁은 가급적 피하며 산다.

어쩌면 화가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족속인지도 모르겠다.

 

화가는 안락한 삶과는 거리를 둔다.

창의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에, 경제적인 부와 편안한 삶을 경계한다.

물론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필요조건임은 분명하지만, 화가는 돈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

한 점의 정신적 가치를 위해 헌신한다.

 

옛날에 자발적으로 가난을 실천한 화가가 있었다.

중국 원나라 때의 화가 예찬倪瓚(1301~1374)이 그 인물이다.

예찬은 대부호의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큰 재산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재산보다 예술을 택한다.

오로지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약간의 돈과 배 한 척만 두고 모든 재산을 일가친척에게 나누어준다.

말년에는 가난으로 고통스러운 여생을 보냈음에도 결코 붓을 꺾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은 후학들에게 영원히 타오르는 등불이 되었다.

 

대표작인 <용슬재도容膝齋圖>는 고결한 정신이 빛나는 그림이다.

앞쪽의 낮은 언덕에 강마른(물기가 없이 바싹 메마른) 나무 다섯 그루, 인적조차 없는 빈 정자 용슬재(무릎을 겨우 펼 수 있을 만큼 작은 정자), 가운데 아득한 강과 뒤쪽의 무심한 산이 전부다.

평온하고 고즈넉하여 적막 속을 빨려들게 한다.

평소 배 한 척에 의탁한 채 강호를 누비며 청빈한 삶을 살았기에 이런 걸작이 가능했다.

 

필자도 한때 '예찬 마니아(애호가) mania'였다.

화가라면 그 고결한 예술정신에 경의를 표하고 흠모하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그를 '예찬禮讚'(훌륭하다고 찬양함)해서, 그의 그림을 모사하는 수업을 갖기도 한다.

 

예술가는 역사의 혈관에 더운 피를 공급하는 에너자이저(에너지공급원) energizer다.

문화가 없는 사회는 생기 잃은 낙엽에 불과하다.

전문적인 교육과정은 올바른 예술가를 배출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지금 동문회 밴드는 활화산이다.

바람 앞의 등불이 된 예술의 산실을 살리기 위한 함성으로 가득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여 봄)의 정신이 필요할 때다.

 

※출처
1. 김남희 지음, '옛 그림에 기대다', 계명대학교 출판부,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6. 5. 22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