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7부 세계의 중심에 선 서양 - 22장 제국주의와 식민주의(1870~1914) 2: 제국주의 1 - 서론 본문

글과 그림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7부 세계의 중심에 선 서양 - 22장 제국주의와 식민주의(1870~1914) 2: 제국주의 1 - 서론

새샘 2026. 5. 28. 15:18

영국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 Cecil Rhodes의 식민지 정책인 3C[카이로Cairo-케이프타운 Cape Town-콜카타(캘커타) Kolkata] 정책에 포함된 남아프리카에서의 전신電信 완성을 조롱하는 1892년 만평 '로도스의 거상 The Rhodes Colossus'에 쓰인 그림. 세실 로즈가 양발을 디딘 땅은 각각 카이로와 케이프타운이며, 손에 걸고 있는 줄은 전화선이다.(출처-나무위키 https://namu.wiki/w/%EB%A1%9C%EB%8F%84%EC%8A%A4%EC%9D%98%20%EA%B1%B0%EC%83%81)

 

◎서론

 

'제국주의帝國主義 Imperialism'는 한 국가의 통제권을 다른 국가로 확장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은 여러 가지 형태를 띤다.

역사가들은 공식 제국주의와 비공식 제국주의를 구별함으로써 논의를 시작한다.

'공식公式 제국주의 formal imperialism'는 또는 '식민주의 colonialism'는 때때로 직접적인 통치 방식으로 행사된다.

즉, 식민 국가들은 영토를 직접 병합하고 다른 나라들과 국민을 예속시키고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정부를 세운다.

식민주의는 때때로 간접 통치를 통해 작동하기도 한다.

이것은 유럽의 정복자들이 원주민 지도자들과 협정을 맺고 그들을 통치하는 방식이다.

식민지 관리에는 아무런 단일한 기법이 없다.

앞으로 보겠지만, 식민지인의 저항은 식민 세력으로 하여금 빈번히 전략을 바꾸게 만든다.

 

'비공식非公式 제국주의 informal imperialism'는 한결 더 교활하고 눈에 덜 띄게 권력을 행사한다.

이는 좀 더 강한 나라가 좀 더 약한 나라에게 그 나라의 주권을 축소시키면서 독립을 유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비공식 제국주의는 다른 나라 영토 안에 조약 항구 treaty port 같은 유럽의 주권과 특권이 따로 설정된 지대의 형태를 취한다.

그것은 유리한 조약이나 무역 조건을 얻기 위해 유럽의 경제적·정치적·문화적 권력을 이용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비공식 제국주의는 쉽게 볼 수 있는 전략일 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권력관계의 형성에서 한층 더 근본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공식 및 비공식 제국주의는 모두 19세기에 극적으로 확대되었다.

'아프리카 쟁탈전'은 공식 제국주의의 가장 급작스러우면서도 놀라운 사례였다.

1875년부터 1902년까지 유럽인은 아프리카 대륙의 90퍼센트를 장악했다.

전반적인 그림은 확실히 놀라웠다.

예컨대 1870년에서 1900년 사이에 소규모 집단의 서양 국가들(프랑스 France, 영국 UK, 독일 Germany, 네덜란드 Netherlands, 러시아 Russia 그리고 미국 USA)은 전 세계 육지 표면적의 4분의 1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런 활동과 더불어 서양 국가들은 중국 China과 튀르키예 Türkiye의 일부 지역에서 남아시아와 동아시아를 거쳐 중앙 및 남아메리카로까지 비공식 제국을 확장했다.

이런 유럽의 권력과 주권 팽창이 너무도 놀라웠기에 19세기 말에 이르러 동시대인들은 '신제국주의新帝國主義 New Imperialism 또는 Neoimperialism'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제국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유럽의 제국 건설의 새로운 단계로서 19세기의 발전들을 생각하는 것이 좀 더 도움이 된다.

'두 번째 유럽 제국들 second European empires'은 첫 번째 제국들이 특히 신세계에서 전반적으로 붕괴되고 난 이후에 확립되었다.

북아메리카 North America에서 대영제국 British Empire은 미국 독립 혁명(미국 혁명)  American Revolution으로 1776년에 파괴되었다.

대서양 건너에서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야심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éon Bonaparte(재위 1804~1815)와 더불어 와해되었다.

중앙 및 남아메리카에 대한 에스파냐 España와 포르투갈 Portugal의 지배는 19세기 초 라틴아메리카 Latin America(중남미) 혁명과 더불어 끝났다.
두 번째 19세기 유럽 제국들은 어떻게 서로 달랐을까?

 

19세기 제국들은 앞의 장들에서 고려했던 발전들, 예컨대 산업화, 자유주의 혁명, 국민국가의 등장 따위를 배경으로 나타났다.

이 발전들은 유럽을 변화시켰고 유럽의 제국주의도 변화시켰다.

첫째, 산업화는 원료에 대한 새로운 경제적 필요성을 창출했다.

둘째, 산업화, 자유주의, 그리고 과학은 세계, 역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능하게 했다.

19세기 제국주의의 뚜렷한 특징은 경제 발전과 기술의 진보가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 필연적으로 진보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유럽인의 확신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셋째, 특히 영국과 프랑스 같은 19세기 제국주의 열강들은 원칙적으로 정부의 권위가 동의와 대다수 시민의 평등에 의존하던 민주주의 국가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정복과 예속을 정당화하기 몹시 힘들게 만들었고 식민지인의 지위에 관해 점점 곤란한 질문을 제기했다.

19세기 제국주의자들은 초기 정복의 역사와 스스로 거리를 두고자 했다.

그들은 교회를 위한 영혼 구제나 국왕을 위한 신민에 관해 언급하지 않고 철도와 항만 건설, 사회개혁 권장, 세계에 문명을 전파하는 유럽의 세속적 사명의 완수 따위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19세기 제국주의의 '새로운' 측면은 유럽 외부에서 일어난 변화와 사건들의 결과이기도 했다.

저항, 반란, 식민 사업의 실패에 대한 인식 따위는 유럽인에게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통치 전략을 발전시키게 만들었다.

19세기 초 노예 반란들의 반향인 1804년의 아이티 혁명 Haitian Revolution은 영국과 프랑스로 하여금 비록 새로운 강제노동 체제가 그 자리를 대신해 자라나게 만들었지만 1830년대와 1840년대에 자국의 식민지에서 노예무역과 노예제를 서서히 종식시키게끔 했다.

미국 독립 혁명은 영국에게 캐나다 Canada(1867), 오스트레일리아 Australia(1901), 뉴질랜드 New Zealand(1912)의 백인 거주자 국가들에게 자치 정부를 허용하도록 권장했다.

앞으로 보겠지만, 인도 India에서 영국의 동인도회사 East India Company로부터 그 지역에 대한 권한을 박탈해 국왕의 통제 아래에 두고 공무원에게 더 많은 훈련을 하도록 요구하며 원주민에게 한층 더 주의 깊은 단속을 가함으로써 반란에 대응했다.

거의 모든 식민지에서 19세기의 제국들은 유럽인과 서로 다른 식민지 원주민 집단들 사이의 관계를 조직하기 위해 세심하게 성문화한 인종적 계급제도를 확립했다(남아프리카 South Africa의 아파르트헤이트 Apartheid, 즉 인종차별 정책은 단지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19세기 제국주의에서는 일반적으로 상인과 무역업자(동인도회사 같은)의 독립적 사업 활동은 그다지 많이 개입되지 않았고 '정착과 규율'이 더 많이 포함되었다.

이것은 제국이 다수의 행정가, 교사, 기술자(엔지니어 engineer) 따위가 포함된 거대한 과제(프로젝트 project)가 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이렇게 19세기 제국주의는 새로운 동기들로부터 발생했던 이다.

19세기의 제국주의는 식민지들에서 새로운 형태의 정부와 지배를 만들어냈으며, 유럽인과 원주민 사이의 새로운 종류의 상호작용을 창출했다.

 

※출처

1. 주디스 코핀 Judith G. Coffin·로버트 스테이시 Robert C. Stacey 지음, 손세호 옮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하): 근대 유럽에서 지구화에 이르기까지, Western Civilizations 16th ed., 소나무, 2014.

2. 구글 관련 자료

 

2026. 5. 2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