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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과 도슈사이 샤라쿠

새샘 2008. 10. 15. 22:03

1794년 5월 일본의 에도 극장가에 혜성처럼 나타나 이듬해 2월 홀연히 사라져 버린 일본 회화사에서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고 있을 뿐만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다빈치, 라파엘로와 더불어 세계 3대 초상화가로 불리는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 

화가로서 활동기간은 단 10개월로 매우 짧지만 2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화가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신비의 화가 샤라쿠.

샤라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10개월의 활동기간과 그 때 남긴 140여점의 우키요에 작품이 전부이며,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샤라쿠가 그린 연극배우 그림으로서 당시에 유행하던 상반신 인물화-이런 판화 밑그림을 일본에서는 '우키요에'라고  부른다. 스모선수로 분장한 연극배우를 그린 그림>

 

놀라운 것은 이 세기의 천재화가가 조선의 첩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의 화풍이 당시 유행하던 일본 판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법이라는 점, 같은 시기 활약한 조선화가들과 필선이 유사하다는 점, 그 무렵 조선의 왕이었던 정조가 화공들을 비밀리에 간자로 훈련시킨 기록 등이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1788년 당시 단원의 스승이었던 김응환이 정조의 왕명을 받고 몰래 일본의 지도를 그릴 임무를 띠고 떠날 때 단원이 수행하였으며, 일본으로 가는도중 부산에서 김응환이 병에 걸려 죽자 단원 혼자 대마도에 잠입하여 일본지도를 모사하여 가지고 돌아와 정조에게 바친 일은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소설가 김재희는 2008년 "색, 샤라쿠(色, 寫樂)"란 팩션 소설을 발표하였다.

작가는 실제로 인사동 고서점 골목의 한 헌책방에서 찾은 작은 책자인 '색, 샤라쿠'를 그대로 소설 제목으로 삼고 살을 붙여 이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 책자에는 한문과 고어로 김홍도, 신윤복 등 18세기 조선화인들의 이름과 일본 지명들이 간간이 씌어 있었다.

 

판화가 샤라쿠의 천재성은 1890년 파리의 에콜 드 보자르에서 열린 '일본판화전'에서 전시된 그의 그림을 보고 프랑스의 인상주의 점묘파 화가로 유명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이 남긴 다음과 같은 말에서 알 수 있다.

 

"나의 스승은 벨라스케스와 고야, 그리고 일본의 위대한 예술가 도슈샤이 샤라쿠다."

 

툴루즈 로트렉의 이런 말이 있은 후 샤라쿠의 그림은 유럽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마네, 모네, 드가와 같은 전기인상파 뿐만아니라 고흐로 대표되는 후기인상파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소설의 내용은 혜원 신윤복이 도화서 화원으로 있을 때 큰 죄를 지어 죽음에 이르게 되자 당시 정조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단원 김홍도가 정조에게 청하여 죽음을 면하게 해 준다.

그런데 당시 단원은 연풍현감으로 있으면서 일본에 밀파할 첩자를 훈련시키는 책임자였다. 

그래서 단원은 일본에 밀파할 첩자로 혜원을 맹훈련시킨 다음 정조와 일본왕 사이에 오고간 밀지를 찾아서 조선으로 보내라는 밀명을 주고서 일본으로 보낸다.

일본에 건너온 혜원은 '가권'이라는 이름으로서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판화밑그림을 그리면서 점차 그림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그 곳에서 '사유리'라는 이름의 노래부르는 게이샤 즉 오이란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사유리는 원래 조선관가의 기녀로서 일본으로 도망쳐 닌자가문에 양녀로 입양되어 닌자로 훈련받은 오이란이었다.

밀지를 찾는 과정에서 사유리는 가권(혜원)을 죽이라는 명령을 어기고 오히려 가권을 죽이러 온 다른 닌자를 죽이고 가권을 살려주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다. 

사유리의 도움으로 밀명을 완수하고 무사히 조선으로 돌아온 혜원은 사유리를 못잊어 그린 그림이 바로 '미인도'라는 것.

 

 

 

이런 소설에서와 같은 이유 때문에 도슈샤이 샤라쿠는 일본에 홀연히 나타났다가 다시 홀연히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2008. 10. 1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