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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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 새로운 창작인가? 짝퉁인가?

새샘 2008. 10. 27. 16:49

금년 4월 발간된 <미술쟁점>이란 책(아트북스)은 동東과 서西, 고古와 금今을 통하여 그림이란 관점에서 나타났거나 나타나고 있는 예술 쟁점과 사회 쟁점들을 퍼즐처럼 늘어놓고 그 퍼즐들을 맞추는 시도를 하고 있다.

쟁점이란 양쪽의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되고 있어 그 해결책을 내 놓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이런 쟁점들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재미있게 늘어놓고 이것을 여러 방법으로 짜 맞춰감으로써 '그래서 이렇다'가 아니라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 같다.

지은이 <최혜원>은 서울대 미술대학 동양화를 전공한 화가로서 몇 차례의 개인전과 여러 단체전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예술쟁점 가운데 하나인 <패러디의 세계>를 소개할까 한다.

 

국어사전에는 패러디(parody)란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수법, 또는 그런 작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개그맨들이 TV를 통해 유명정치인의 말이나 행동을 패러디하기 시작한 것이 패러디란 말이 우리 가까이 성큼 다가선 계기가 아닐까 싶다.

 

예술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명화나 기성품을 모방했으되 작가의 창조성을 발휘해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조한 예술이 패러디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창조적인 예술작품이라 하더라도 적든 많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과거의 예술작품의 영향을 받아 탄생하는 것이 필연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문화의 역사는 모방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작품을 모방하고 변형하는 특성상 패러디는 언제나 표현의 자유와 표절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패러디와 모방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패러디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을까?

 

지적재산권에 관한 최초의 법적 소송

 

1506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당시 유명한 독일 판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의 판화 80여 점 이상을 위조하여 판매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위작 판화를 만든 사람은 이탈리아의 마르칸토니아 라이몬디(1480~1534).

라이몬디는 36장으로 이루어진 뒤러의 목판화 '그리스도의 수난'을 동판으로 정확하게 모각하고 작가의 사인인 고유의 문양까지 똑같이 새겨 넣어 만들었는데, 이 위작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감으로써 뒤러는 라이몬디를 고소하게 되었던 것이다.

판결은 작가 고유의 문양만 뺀다면 계속 제작하여 판매해도 괜찮다고 한 것이었다.

그 뒤 라이몬디는 로마로 옮겨가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및 그 제자들의 작품을 복제하는 '복제 전문가'로서 명성을 날리며 떼돈을 벌었고 많은 제자들 양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라이몬디의 복제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아래에 있는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이다.

파리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 트로이전쟁에 나오는 트로이의 왕자다.

올림푸스 최고의 세 여신인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황금사과의 주인이라고 쟁탈전을 벌일 때, 신들의 제왕 제우스는 그 판단을 파리스에게 맡겼고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라고 말함으로써,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아내로 맡게 해 준다.

그러나 헬레네는 이미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와 혼인한 사이여서 격분한 그리스인들이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벌인 전쟁이 바로 트로이전쟁.

 

 

라이몬디의 '파리스의 심판' - 라파엘로의 모작, 동판화, 1514~1518,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위 그림이 유명한 것은 우리 눈에 굉장히 익숙한 장면이 이 그림에서 있다는 점이다.

바로 오른쪽 아래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거나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바다의 신 셋이 보인다.

이 세 바다의 신의 자세는 이로부터 35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후 마네의 대표작 '풀밭 위의 점심'(아래 그림)에서 그 자세를 그대로 따서 썼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 캔버스에 유채, 1863, 파리 오르세 미술관

 

마네는 라파엘로 작품을 모방한 판화 '파리스의 심판'을 또다시 모방하여 그린 것이다.

1861년 이 판화를 손에 넣은 마네는 르네상스 시대 거장의 작품을 차용하려는 것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과거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현해내고자 했다.

즉 '파리스의 심판'이라는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당대 프랑스 파리 상류층의 이중생활에 접목시켜 표현함으로써 과거부터 전해오는 전통적인 이미지를 현대적인 이미지로 변용하였던 것이다.

마네는 신이 아닌 당시 큰 인기를 끈 고급매춘부를 모델로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은 당시 큰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 모았지만 그림 속 인물들의 포즈와 구성은 마네의 독창적인 창작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은 근대 회화의 탄생을 알린 그림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 그림도 과거 그림의 패러디를 통해 탄생한 것이었다.

 

그런데 패러디의 행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을 기폭제로 피카소 등 많은 화가들이 이 그림을 모방했고, 심지어는 광고와 가수의 앨범 표지에서도 이 그림을 따온 것이 분명한 이미지가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몇가지 예를 들면 뉴웨이브 밴드인 '바우 와우 와우(Bow Wow Wow)'의 1981년 앨범 커버(아래 그림)과 코카콜라 광고 등으로 다양하게 변형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뉴웨이브 밴드, '바우 와우 와우'의 1981년 앨범 '라스트 모히칸'의 재킷

 

 

천박한 모나리자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작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서양미술사 최고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이 성스러운 미소의 주인공 모나리자가 모욕을 당했다.

 

20세기 위대한 전위예술가 마르셀 뒤샹은 이 모나리자의 그림엽서를 구입해 그 위에 연필로 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이 되기도 한 'L.H.O.O.Q'(아래 그림)라는 알파벳을 적어 넣었는데, 아무 뜻 없어 보이는 이 글자들은 프랑스어로 읽으면 '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졌다'는 뜻의 'Elle a chaud au qul'로 읽힌다.

 

 

마르셀 뒤샹, 'L.H.O.O.Q', 모나리자의 복제품에 연필, 1919,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뒤샹은 위대한 예술품 '모나리자'에 낙서하듯 수염을 그려 넣음으로써 전통의 권위를 조롱했다.

기존 원작이 가진 근엄하고 침범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미지를 우습게 만들어버림으로써 틀에 박은 듯한 기존의 예술양식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뒤샹이 다른 그림이 아닌 '모나리자'를 택한 것은 바로 이 작품이 예술이라는 개념을 대표할 만한 상징성을 가진, 너무도 유명하고 사랑받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모나리자'를 가지고 장난 친 것은 뒤샹만이 아니었다.

앤디 워홀도 '모나리자'를 복제했고, 수도 없이 많은 광고에서도 우리는 익숙한 모나리자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광고 모델이 된 비너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아래 그림)은 미의 여신을 주제로 한 그림이기에 화장품과 액세서리 브랜드의 광고로 자주 등장한다(아래 그림).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아래 그림) 역시 패션, 자동차 등의 다양한 광고에 많이 애용되어 왔고 지금도 애용되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 의류 브랜드인 마리테 프랑소와 저버가 2005년 유럽 전 지역에 선보인 '최후의 만찬' 패러디 광고는 여자 예수를 등장시키고 예수의 제자 두 명이 청바지를 입고 가슴을 드러낸 채 서로 안고 있는 모습을 담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아래 그림).

종교적 신성을 해치는 공격적인 행위라고 주장한 교회 측의 소송으로 결국 이 광고물은 철거되기도 했다.

패러디가 가진 힘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다.

 

 

위,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캔버스에 템페라, 1485,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가운데 왼, 패션 브랜드 샤틀리트의 2007년 광고 비주얼(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패러지, 가운데 오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템페라와 유채,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 아래, 패션 브랜드 마리테 프랑소와 저버의 2005년 광고

 

 

왜 패러디인가?

 

이렇게 패러디된 원작은 과거의 권위를 잃게된다. 

원작이 갖고 있는 권위를 '아우라(Aura)'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우라는 "예술품의 여기와 지금 - 예술작품이 놓여 있는 장소에서의 일회적 현존"에 의해 생성된다고 본다.

말하자면, 예술작품이란 지금 여기에 오로지 하나만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것으로서 가취와 권위를 지닌다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패러디를 통해 예술작품이 변형되어 복제됨으로써 그것의 가취와 권위는 손상을 입게 된다.

예술가들은 과거의 예술을 패러디해 작위성을 강조함으로써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술가들이 패러디를 즐겨쓰는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예술가는 창조자로서 예술가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진리나 미적체험으로 표현한다.

그 과정에서 예술가는 자유로운 상상의 날개를 펴게 되고 표현하는 것이다.

즉 자유실현의 정신이 예술창작의 정신인 것이다. 따라서 예술에는 실제적 조건의 구속이 없는 무한세계이다.

 

현대 예술가들은 더 적극적으로 과거의 예술작품을 패러디함으로써 기존 작품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거나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이미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다가왔던 작품들을 전도시킴으로써 원작이 가진 표현과 의미를 다르게 인식시키고, 결국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아름다움의 개념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술가들이 패러디를 즐겨 쓰는 도다른 이유일 수 있다.

 

패러디 예술의 전성시대

 

스페인의 대문호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도 중세 기사문학을 패러디한 작품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도 '패러디의 전통'이 있다.

바로 풍자와 해학이 특징인 탈춤과 판소리, 한글소설과 풍속화 등이 그 예이다.

조선시대 후기 문예부흥이 일어난 영정조시대 이후 특히 신분제와 빈부격차 등의 사회적인 현실 문제를 인식하면서 예술작품 속에 패러디가 많이 나타난 것으로 보여진다.

 

이제 패러디는 문학과 음악에서뿐만 아니라 상업광고와 오락영화, 코미다, 드라마, 뮤직비디오, 인터넷 등 거의 모든 대중문화매체 전반에 확산되어 장르의 구분 없이 새로운 문화코드로 각광받고 있다.

이것은 사회구조와 질서체계를 새롭게 담아내는 한 방식으로서 패러다임의 변화인 것이다.

 

오늘날의 패러디는 한 명의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개인의 창작물이라 할 수 없다.

제작자가 있긴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빠른 시간에 널리 확산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패러디가 각광을 받는다.

번뜩이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표현의 독창성을 갖춰야함은 물론 시대정신의 핵심을 파악하여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사회적 이슈드에 대해 패러디는 우회적이면서 가볍고 친숙하게 대중에게 문제의식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너무 재미에만 치우치거나 원작을 무분별하게 모방하고 변형하여 표절시비에 휩싸일 수도 있다. 

때론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건드려 표현의 자유냐 아니면 개인의 명예냐 같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기도 한다.

 

짝퉁과 패러디

 

짝퉁이란 모조품이다.

즉 진짜 같은 가짜다.

모조품은 그저 대량복제를 통해 진품의 독창성을 무단으로 도용할 뿐이다.

패러디의 목적인 의미 창출과 새로운 사고방향의 제시와는 거리가 멀다.

짝퉁은 그저 상업적 이익에 집착함으로써 진품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게 된다.

 

누군가 현대사회는 원본과 복제의 구별이 사라지고 복제가 아예 원본을 대체해버린 세계라고 말한다.

즉 현대사회에서는 원본보다 '원본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계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원본의 아우라는 사라지고 없는 가운데 그 복제된 흔적, 이미지만을 보면서 열광하기에 이른다.

진짜처럼 보이는 '짝퉁'을 가지고 '짝퉁'이라는 사실을 교묘히 숨기면서 이미지만이라도 진품에 가깝도록 자신을 치장한다.

른바 '짝퉁의 시대'라고 할 만큼 가짜가 판치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명품으로 둔갑한 짝퉁들, 이것은 명품을 걸치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허영심과 비윤리성의 산물인 것이다.

 

2008. 10. 27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