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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1의 초상화 전 <이재 초상>은 <이채 초상>이다 본문

글과 그림

세계 제1의 초상화 전 <이재 초상>은 <이채 초상>이다

새샘 2008. 12. 19. 23:46

이 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한국화 비평가의 한사람이며, 세계 최고의 단원 김홍도 전문가인 고故 오주석吳柱錫 선생의 저서인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2003, 솔)이란 책에 수록된 글로서 아직까지 관련학계의 공식적인 인정은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주석 선생의 이런 주장에 동의하고 있으며, 새샘 역시 동의하는 바이다.

 

오주석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두 초상화의 주인공은 모두 이채李采 선생을 그린 그림으로서, 10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그려진 것이다.

 

 

작가 미상,  전 이재 초상, 비단에 채색, 97.9 x 56.4cm, 국립중앙박물관(출처-출처자료)

 

먼저 위 그림은 전 <이재 초상>.

이재李縡 선생은 숙종 때의 대학자의 초상화로 이채 선생의 할아버지이다.

초상화에는 아무런 글씨가 없기 때문에 이재라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이채 초상>의 인물과 너무나 닮았고 나이만 더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채 선생의 할아버지인 이재 선생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오주석은 위 초상화가 인류회화를 통틀어 최정상급 초상화로서 국보로 당장 지정되어야 할 그이라고 주장하였다.

현재 초상화 한국화 가운데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그림은 <공재 윤두서 자화상>이 유일하다. 

훌륭한 초상화란 외모 뿐만이 아니라 그 인물이 가진 성격이나 인품이 그림 속에 묻어나와야 하는 것이다.

 

반듯이 앉은 주인공 인물에 아주 엄숙하고 단정한 기운이 배어 있다.

영혼이 비쳐보이는 듯한 형형한 눈빛의 얼굴을 중심으로 검정빛 복건이 삼각형으로 정돈되어 있어 위와 좌우 세 방향에서 얼굴이 돋보이도록 딱 받쳐 준다.

전체 구도는 삼각형으로 안정되어 있어 차분한 선비의 기운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오주석은 이 그림을 첫대면했을 때 세시간 넘게 꼼짝도 하지 않고 바라보았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그림의 엄숙단정한 기운이 몸에 전해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 손이 아랫배 위로 단정하게 모아졌다고 회상한다.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메마른 노인 피부의 질감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수염의 묘사는 가히 놀랄 정도.

내려오면서 이리저리 꺾여지는가 하면 굵고 가는 낱낱의 수염이 비틀리면서 굵었다 가늘었다 하고 있다.

이런 표현은 지금 현대화가들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다고 한다.

속눈썹이며 눈시울이며 동공의 홍채까지 서양화에서도 보기 어려운 극사실 묘사이다.

앞서 올린 글에서 오주석은 세계 제1의 동물화는 단원의 <송하맹호도>라고 했고, 이번 글에서는 세계 제1의 초상화가 바로 이 그림인 전 <이재 초상>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전 이재 초상의 얼굴 세부(출처-출처자료)

 

이런 극사실성은 얼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두루마기를 맨 띠를 보면 띠를 맨 매듭이 풀리지 말라고 다시 가는 오방색五方色 술띠를 묶어 드리웠는데 그 섬유 한 올 한 올까지 일일이 다 그려 놓았다.

오주석은 이 초상화를 그릴 때 화가는 한마디로 말해 죽기살기로 그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극사실로 초상화를 그렸던 이유는 조선은 성리학이란 이데올로기 국가로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정신풍토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옷 아랫부분의 윤곽선과 주름선이 기가 막힐 정도.

선의 흐름은 부드럽게 반복되면서 음악의 멜로디처럼 운율적이라는 것.

아래로 내려올수록 슬그머니 점차 선이 굵어지고 있다.

몸 부분의 필선은 선비의 침착하고 온화한 기운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선묘線描 자체가 하나의 추상화라고 할 만하다는 것이다.

이런 선묘의 아름다움은 오랜 문화 속에서 잉태된 것으로 역시 현대 초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작가 미상, 이채 초상, 1802년, 비단에 채색, 99.2 x 58.0cm, 국립중앙박물관(출처-출처자료)

 

그럼 이번에는 바로 위 그림 <이채 초상>을 한번 살펴보자.

다음 그림에서 보듯이 <전 이재 초상>의 얼굴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이 초상화에는 그림외에 글 즉 찬문贊文이 많이 적혀 있어 초상화의 주인공을 설명하고 있다. 

이 찬문은 주인공인 이채李采 선생이 직접 지은 글이다.

찬문 내용을 요약하면, 정자관을 쓰고 몸에는 심의를 입고 우뚝하니 똑바로 앉아서 눈썹은 짙고 수염은 희며 귀는 높고 눈빛은 형형한 사람이 이계량(이채의 자)이다.

인생의 자취동안 벼슬도 하고 학문도 닦았지만 이제 너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가 할아버지가 읽던 글을 더 읽으면 참된 선비가 되기에 부끄럽지 않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찬문을 읽고서 오주석은 이채 선생의 문집을 모두 찾아보니 이 초상화를 제작한 1802년 여름에 산림으로 들어가서 10년 가까이 시골에 틀어박혀서 더 공부하고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채 초상>의 얼굴을 보면 형형한 눈빛, 넓은 이마, 치켜 올라가 끝숱이 두터운 검미의 눈썹, 길고 뾰족한 코, 단정한 콧방울, 토톰한 입술, 작지만 길다란 귀를 가지고 있다.

이 얼굴과 전 <이재초상>의 얼굴과 비교해보면 눈썹, 눈, 코, 입술이 같고 귀 역시 길고 높다.

심지어 수염이 난 자리 모양까지 똑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주인공의 눈빛을 보면 분명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이채 초상의 얼굴세부 (출처-출처자료) .

 

그런데 가장 확실한 증거는 두 초상화 얼굴 모두에 똑 같이 왼쪽 귓불 앞에 있는 큰 점이 있다는 것.

이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오주석 선생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해부학을 공부한 화가로서 얼굴전문가인 조용진 교수는 두 초상화 얼굴의 세부 11개를 비교한 끝에 두 얼굴이 100% 같다고 장담은 못해도 같은 사람이 거의 틀림없다고 확인해 주었다.

또한 피부과 의사로서 예술작품에 보이는 얼굴을 연구하는 학자이며, 그림 속 얼굴을 보고 주인공의 질환을 진단하는 이성낙 교수는 왼쪽 눈썹 아래 살색이 좀 진해진 부분이 검버섯으로서 <이채 초상>에서는 흐릿하더니 더 늙어 보이는 전 <이재 초상>에서는 거뭇거뭇 진해졌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왼쪽 눈꼬리 아래쪽 4시 방향에 도톰하니 길게 부풀은 부분이 바로 노인성 지방종인데, 이것 역시 두 초상화에서 같은 위치에 보이고 있을 뿐아니라 전 <이재 초상>에서는 더 확실하게 보인다.

이런 사실을 가지고 두 초상화는 같은 사람을 10여년의 시차를 두고 그려진 그림이라고 이 교수는 평가하였다.

전 <이재 초상>에서는 <이채 초상>에 비해 주름이 더 많아졌고, 수염도 훨씬 희어졌다.

일부 터럭은 아주 길어지면서 전체적으로 성글어졌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실로 보았을 때 조선의 초상화는 얼굴에 보이는 병색까지 그대로 묘사한 극사실 초상화로서, 이런 마음을 일러 옛날 분들은 '일호불사一毫不似 편시타인便是他人' 즉 '터럭 한 오라기가 달라도 남이다'라고 불렀다. 

이렇게 조선의 초상화는 예쁜 모습이 아니라 진실한 모습 즉 참된 모습을 그리려 했기 때문에 외면보다는 정신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전 <이재 초상>은 또 하나의 <이채 초상>으로 불러야 한다.

  

※출처: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2003, 솔)

 

2008. 12. 1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