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호생관 최북 '공산무인도' 본문
이 글은 그림 자체가 아니라 그림으로 옮겨진 명구名句에 대한 것이다.
조선 후기화가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1712~1786)의 대표작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의 화제인 "공산무인空山無人 수류화개水流花開"는 중국 송나라 대문장가 동파東坡 소식蘇軾(1037~1101)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이 문장은 "빈산에 사람 없고,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라는 뜻이다.
최북은 소식의 명구를 그림으로 표현해 내었는데, 이 그림이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그림에서 명구가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空山'이란 사람의 생각과 욕심이 사라진 경지라고 생각하여 최북은 흥건한 먹을 찍어 붓을 빠르게 휘둘렀다. 사념이 머물 틈 없는 붓질의 속도를 따라 넉넉한 습기가 화면에 번진다.
잔손질을 더하지 않았으니 잔심이 고일 턱이 없다. 화면의 중앙을 텅 비워두었다가 후에 인장을 꾹꾹 찍은 것이 눈에 띈다. 이것이 최북이 만들 수 있는 공산무인의 분위기이고, 노련하고 활달한 붓질이 만들 수 있는 기량이다. 그러나 최북은 빠뜨리지 않았다. 거친 듯 날카로운 듯한 필치고 '空山無人 水流花開' 여덟글자를 굳이 크게 적어 넣었고, 화면의 왼쪽 끝에 흥건한 먹 사이 필선을 대어 흐르는 물水流을 그렸고, 화면 오른쪽 끝에는 대여섯 묽은 점으로 보일 듯 말 듯 붉은 기운을 찍어내어 꽃이 핀 것花開을 그렸다. 사람이 없는 텅 빈 정자는 빈산空山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축자적인 이미지에 그친 그림이라면 유치하기 짝이 없겠지만, 휘둘러 기량을 펼친 이 그림 속에 축자적인 이미지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한 화가의 충실한 정성이 가슴에 닿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는 화가가 베풀고 있는 기량과 성실함이 빚어낸 그 깊이 때문이다.
소식은 열여덟분의 대아라한大阿羅漢을 기리는 시인 '십팔대아라한송'을 지었는데, 이 중 공산무인도의 화제가 등장하는 9번째 아라한송이 백미. 화제가 포함된 제9수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찬송하노라
식사 이미 마쳤으니
바리때 엎고 앉으셨네.
동자가 차 봉양하려고
대롱에 바람 불어 불붙이네.
내가 불사를 짓노니,
깊고도 미묘하구나!
빈산에 사람 없고
물 흐르고 꽃이 피네.
이 시의 해석은 무궁한데, 대체적인 것은 깨달음 후에 보는 산수, 즉 '나'라는 인격과 '외물外物'과의 경계가 사라진 물아합일物我合一의 경지를 뜻한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욕심으로 비롯되는 모든 인과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산의 여전히 산이고 물은 여전히 물이고 그 속에 꽃도 여전히 피고 지는 것.
이 글은 고연희가 지은 '그림, 문학에 취하다(2011, 아트북스)'의 글 가운데 발췌 정리하였다.
2011. 3. 31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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