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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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람 전기 "매화초옥도"

새샘 2012. 1. 30. 15:48

'매화꽃이 아름다운 것은 친구와 함께 하기 때문'

 

전기, 매화초옥도, 조선 19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36.1×32.4㎝,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

 

'녹의홍상綠衣紅裳'은 연둣빛 저고리와 다홍치마다.

맵시 나는 여인네의 차림일진대, 거문고 메고 다리를 건너거나 방안에 오도커니 앉은 사내들이 웬일로 남세스런 태깔인가!

산과 바위에 잔설이 희뜩하고 눈발이 날리듯 매화꽃 아뜩한데 봄은 외통수로 짓쳐들어오니,

옳거니, 사내들 차려입은 옷매조차 빼쏘아 놓은(꼭 닮은) 춘색이로구나! 

큰일났다, 봄 왔다.

 

희디 흰 매화는 눈과 다툰다.

볍씨처럼 가녀리게 돋아 푸르른 초목의 새순, 그 안으로 얼음송이와 눈꽃 매달린 듯이 지천으로 흐드러진 백매를 보라.

피어도 너무 피었다.

옥 같은 살결, 눈이 부시다.

단칸 초옥의 주인은 매향에 벌써 멀미가 나는데 찾아온 친구는 어쩌자고 거문고 가락으로 춘흥까지 돋우려 하는가.

 

짜임새 좋고 색감 부러운 이 그림은 전기가 그린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다.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아들 삼으며 사슴을 심부름꾼으로 부린 송나라 임포林逋의 은둔고사를 본뜬 작품이다.

화가는 같은 중인 출신인 오경석吳慶錫을 짐짓 매화골 주인으로 등장시켜 이른 봄날의 우정어린 호사를 함께 나눈다.

화제로 '오경석 형이 초옥에서 피리 분다'라고 썼다.

 

매화 그리는 법은 야단스럽다.

등걸은 용이 뒤척이고 봉이 춤추듯, 가지는 학의 무릎과 사슴뿔처럼, 꽃은 산초열매나 게의 눈처럼, 곁가지 얽힐 때는 계집 여女 자로 그리라고 했다.

하여도 화가는 법식에 옹심부리지 않는다(옹졸하게 얽매이지 않는다).

굽고 기울고 성근 매화 자태도 안중에 없다.

활짝 피어난 우애가 더 귀해서다.

꽃이 필 때는 오로지 그리워라, 사랑하는 내 동무 있는 곳, 이 봄 뉘랑 더불어 꽃향기 맡을꼬....

 

○고람古藍 전기田琦(1825~1854)는 중인 출신의 조선후기의 문인화가. 추사 김정희(1786~1856)에게 세한도를 선물받았던 역관이면서 위항시인으로 활동했던 이상적(1804~1865)의 문하에 역관이자 서화가 및 금석학자인 오경석(1831~1879)과 함께 출입하면서 추사에게 그림을 배웠다. 추사파 가운데 사의적寫意的인 남종문인화의 경지를 가장 잘 이해하고 구사하였던 인물로 크게 촉망받았으나. 서른살로 요절하여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다. 여향문인들의 모임인 '벽오사碧梧社'의 핵심구성원으로 조희룡(1797~1859) 등과 교우하면서 활약하였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

 

※이 글은 손철주 지음, 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2011, 현암사)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12. 1. 30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