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12. 10/7 서울 창덕궁 후원 부용지와 주합루 일원 본문

여행기-국내

2012. 10/7 서울 창덕궁 후원 부용지와 주합루 일원

새샘 2012. 10. 8. 14:57

창덕궁 후원後苑은 조선 태종이 창덕궁을 창건할 당시 조성되어 성종 때 창경궁을 건립함으로써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 창덕궁이 다른 조선 궁궐[경복궁, 창경궁, 경운궁(덕수궁), 경희궁]보다 왕실의 사랑을 많이 받은 것은 넓고 아름다운 이 후원 때문일 것이다.

 

후원에는 특별히 붙여진 고유한 이름이 없다. 한국의 전통 정원이 그러했듯이 궁궐 뒤편에 정원을 만들고 '후원'이라 불렀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궁궐 안에 있다 하여 '내원內苑',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어서 '금원禁苑'이라 부르기도 했다. 구한말 후원을 관리하는 관청으로 비원秘苑을 두었고 일반인에게 공개되면서부터 비원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고 후원이 훼손되었는데 광해군이 창덕궁과 함께 재건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인조, 숙종, 정조, 순조 등의 여러 임금들이 개수하고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후원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정자을 만들었다. 약간의 인위적인 손질을 더해 자연을 더 아름답게 완성한 절묘한 솜씨라 아니할 수 없다. 4개의 골짜기는 각각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옥류천으로 이름지었다. 후원은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크고 개방된 곳에서 작고 깊숙한 곳으로, 인공적인 곳에서 자연적인 곳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뒷산 응봉으로 이어진다. 다른 나라의 궁궐은 보고 즐기기 위한 관람용이란 느낌이 많은데 비해, 우리의 후원작은 연못과 정자를 찾아 여러 능선과 골짜기를 오르내리면서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게 자랑거리가 아닐까!

 

후원은 왕실의 휴식과 산책을 위한 곳이기는 하지만 다른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자연풍광을 느끼면서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는 것에서부터 과거시험을 비롯한 갖가지 야외행사도 열렸다. 또한 왕이 참관하는 군사훈련도 자주 실시되었고 활쏘기 행사도 열렸었다. 연못에서 낚시를 하거나 배를 띄우기도 하고 꽃구경도 하였으며 화약을 이용한 불꽃놀이도 하였다. 왕이 주관하는 각종 연회잔치도 자주 열렸다. 왕이 직접 이곳에 곡식을 심어 농사를 직접 체험하였고 왕비는 양잠을 직접 시행하는 친잠이란 행사도 개최하였다.

 

후원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창덕궁 관람과는 별도로 인터넷 예약을 하거나 현장에서 표를 구입해야 한다. 인터넷 예약을 하려고 들어가 봤더니 한국인 관람시간은 앞으로 1달 이상 매진이었고,  외국인(영어, 중국어, 일본어) 관람은 내국인은 예약이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몇번을 접속한 끝에야 겨우 예약 성공. 그런데 창덕궁을 가보니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2시간 후의 후원관람표를 사는 것이 가능하였다.

 

후원은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들어가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입구가 있다. 돈화문 안마당에서 오른편으로 금천교와 진선문, 숙장문을 거쳐 100미터 쯤 왼편의 성정각을 끼고 돌면 후원입구가 나온다. 출입구가 2개 있고, 그 사이에 매표소가 있으며, 왼쪽이 후원입구이고 오른쪽이 창경궁 입구다. 후원입구는 아무런 건축물 없이 콘크리트 포장길에 바리케이트만 설치되어 있는데 비해 창경궁 입구에는 궁전 출입문이 세워져 있다.

 

성정각 앞 중희당 터후원 입구와 창경궁 입구

 

50여명의 관람객이 해설사를 따라 바리케이트를 열고 콘크리트 포장길을 걸어 후원으로 향한다. 후원입구의 길 왼편 담장은 대조전이고 오른편은 창경궁이다.

 

맨 먼저 도착한 곳은 4개 중심정원의 하나인 부용지芙蓉池주합루宙合 일원.

이곳은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건물을 지었다. 규장각서향각은 왕실도서관이고, 영화당과 영화당 앞 춘당대터에서는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시험를 치렀다. 부용정은 연못에 피어 있는 한송이 꽃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건물 기둥 2개가 부용지 안에 박혀 있다. 학문을 연마하던 2층 건물인 주합루는 높은 곳에서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고, 1층은 왕실도서관인 규장각이었다. 주합루를 오른는 정문문이 어수문인데, 어수문 양쪽으로 허리를 구부려야 출입이 가능한 아주 작은 쪽문이 있다.

 

부용지와 주합루 일원 배치도

 

부용지 남쪽 진입로를 걸어가면서 바라본 부용지, 주합루, 영화당

 

부용지芙蓉池는 사각형의 연못 한가운데 둥근 인공섬이 조성된 연못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의미한다. 부용연꽃이다. 인공섬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부용지 동서남북에는 크게 4개의 정자와 건물을 배치하였다. 동에 영화당, 서에 사정기비각, 남에 부용정, 북에 주합루가 있다.

부용지의 동남쪽 사각형 모서리를 따라 2개의 다듬이돌 모양의 바위가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

 

동남쪽 모서리돌 바로 뒤에서 바라본 부용지-부용지 한가운데 있는 인공섬에서 뻗어 나온 소나무 줄기가 환상적이다. 인공섬 왼쪽 정자가 사정기비각이고, 오른쪽으로 부이는 작은문이 어수문, 그 뒤의 2층 누각이 주합루, 주합루 왼쪽 건물이 서향각.

 

동쪽의 영화당 앞에서 바라본 부용지 내 인공섬

 

부용지 동쪽 모서리에서 밤이 되면 부용지를 밝혔을 석등, 그리고 왼편의 부용정을 보면 2개의 기둥이 부용지 안으로 들어와 있다. 석등 반대편의 사정기비각 오른쪽으로는 상류 골짜기에서 흘러온 계곡물이 석물인 용머리의 입을 통해 부용지로 유입되고 있다.

 

계곡물이 유입되는 수로 오른편 즉 부용지 북서쪽 모서리에는 우물이 복원되어 있다.

 

이제 정자와 누각을 구경할 차례.

부용지를 대표하는 정자는 바로 부용정芙蓉亭이다. 한송이 연꽃 형상으로 부용지 사각형 남쪽변에 위치하고 있는 부용정은 卍자 형 정자로서 두 기둥이 부용지 안에 박혀 있다. 따라서 부용지 안으로 들어선 정자 난간에 서면 몸이 연못 위에 서 있게 되는 것이어서 부용지 위에서 연못을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부용정은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로 소개되고 있다. 지붕위 기와는 중요유형문화재 장인이 직접 만든 수제기를 사용함으로써 고건축의 고졸古拙한 멋을 살려내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수제기와는 일반기와보다 무게가 훨씬 가볍기 때문에 하중에 의한 건물의 변형도 막는다는 장점도 있다.

 

부용정 옆에 서 있는 독특한 형태의 돌을 세워 놓은 괴탑과 수령이 제법 됐음직한 주목

 

부용지의 방형 서쪽에 있는 건물은 사정기비각四井記碑閣. 이 비각은 숙종때(1660년) 세워졌으며 비에는 부용지를 조성한 배경과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라 세종 때 우물을 찾은 끝에 4개의 우물을 찾아 내어 각각 마니, 파려, 유리, 옥정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부용지 북쪽 즉 부용정 맞은 편 높은 곳에서 2층 누각인 주합루宙合樓와 그 왼편에 서향각書香閣이 부용지를 내려다 보고 있다. 주합루는 정조 즉위년인 1776년 창건되었다. 아래층은 왕실 직속도서관인 규장각奎章閣을, 위층에는  열람실 겸 누마루를 만들었다. 주합루'천지 우주와 통하는 집'이란 뜻이고, 규장각이란 '문장을 담당하는 하늘의 별인 규수奎宿가 빛나는 집'이란 뜻. 창건 당시에는 역대 왕들의 친필, 서화, 고명顧命(임금의 신하에게 남기는 유언이나 부탁), 유고遺敎(왕이 생전에 남긴 가르침), 선보璿譜(왕실의 혈통을 기록한 책자인 보첩) 등을 관리하던 곳이었지만 차츰 학술 및 정책 연구기관으로 변모하였다.

주합루 왼편에 있는 건물은 책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규장각의 부속건물인 서향각. 서향각에는 한때 왕의 어진을 모시기도 했다.

 

 

부용지에서 주합루로 갈려면 부용지 북쪽호변에 있는 출입문인 어수문魚水門을 통과해야 한다. 어수문은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 살 수 없다'는 격언과 같이 왕은 항상 백성을 생각하라는 교훈이 담긴 문으로서, 정조의 민본정치 철학을 보여준다. 어수문왕이 지나다니는 큰 문 양쪽으로 허리를 구부려야 겨우 지날 수 있는 아주 작은 쪽문이 있는데 신하들이 다니는 문으로 생각된다.

 

어수문을 통해 본 주합루

 

 

주합루는 부용지와의 경계로서 취병翠屛이란 나무 울타리로 보호되어 있다. 취병은 조선시대의 독특한 조경기법의 하나로 나무를 심어 병풍처럼 만든 푸른 울타리다. 내부가 보이는 것을 막아주는 가림막 역할과 공간을 분할하는 담의 기능을 하면서 그 공간을 깊고 아늑하게 만들어 생기가 나게 하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주합루 취병은 대나무 틀을 짜고 조릿대의 일종인 신우대를 심어 재현하였다.

 

마지막으로 부용지의 동쪽에 있는 건물은 영화당暎花堂이다. 영화당은 과거시험, 연회, 활쏘기와 같은 행사가 치러지던 건물이다. 행사는 영화당을 중심으로 부용지 반대편 공간인 동쪽의 춘당대春塘臺 마당에서 치러졌다. 暎花堂이란 글씨는 영조의 어필.

부용지 쪽에서 본 영화당.

 

부용지 반대편의 춘당대 마당에서 본 영화당

 

영화당 동편의 춘당대 마당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부용지 일원의 나무에서 단풍의 조짐을 볼 수 있었다.

 

2012. 10. 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