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 "송하한담도" 본문

글과 그림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 "송하한담도"

새샘 2016. 9. 11. 17:01

동갑내기 삼인방이 회갑 모임을 갖다(1805년, 정월)

이인문,  송하한담도松下閑談圖 , 종이에 담채, 31.6×109.5㎝, 1805, 국립중앙박물관

 

단원 김홍도(1745~1806이후, 호는 단원檀園, 조선 화원)가 예순한 살, 어는덧 회갑을 맞았다. 을축생 동갑내기 김홍도, 이인문, 박유성(1745~?, 호는 서묵재, 조선 화원)이 박유성의 집 서묵재瑞墨齋에 모였다. 돌이켜보니 평생 그림만 그렸다. 참다운 스승(표암 강세황)을 만났고 어진 성군(정조)도 섬겼다. 육십갑자 한 바퀴 도는 동안 화원으로서 같은 길을 걸어왔다는 감회가 가슴 벅찼다. 절친의 조건이 무엇인가? 입기 너무 편하기보다 마음이 맞아야 하고 의기가 같아야 한다.

 

박유성: 세월이 유수로다 벌써 회갑이라니...

 

이인문: 이를 말인가! 시와 그림에 빠져 산 긴긴 세월을 어찌 몇 마디 말로 대신할 수 있겠는가? 그 오랜 감회를 오늘 함께 붓을 들어 지정至精(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정)을 나누는 것이 어떠한가?

 

박유성: 옳거니. 오늘 아무리 대취한들 내공 있는 필력의 새삼스러움은 이상할 것이 없지 않겠는가? 얼마 전에 단원 자네가 음주팔선 중 하지장을 그려 증명해 보였던 일이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네.

 

김홍도: 오늘 고송유수관이 먼저 그림을 논하셨으니 붓에 먹을 적셔 우연한 득의를 하심이 어떠한가? 소나무 청정한 계곡과 어울려 한가로이 술을 마시거나 차를 나누는 모습하면 유수관도인 아니신가? 산수화에 한 한 아무리 써도 줄어들지 않는 보물단지를 차고 있으니 우리는 옆에서 그 풍류를 술안주로 삼아 취해 보겠네.

 

이인문: 화원의 자질과 능력을 굳이 재물에 비유한다면 화수분 단지는 단원 것이 가장 크고 단단할 것이네. 그러니 제시題詩는 단원이 달았으면 하네.

 

김홍도: 내 두 벗들의 화필과 그림에 취해 화제나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 성의를 다할 터이니 엉망이 되더라도 흉보지 마시게나.

 

절친 중의 절친인 동갑내기 삼인방이 서로의 회갑을 기념하이라도 하듯 정월에 만나 '한 벗이 그림을 그리고 그 벗을 닮은 또 다른 벗이 화제를 삼는다'는 사실은 자못 세인들의 부러움을 사고도 남을 일이었다.

 

박유성: 취하는 것도 때가 맞아야 아름다운 법! 분 냄새에 취하다보면 속살을 탐하게 되고 꽃향기에 취하다보면 나비처럼 떠돌게 마련이지. 이제 나이깨나 먹어 꽃이나 분 향기에 취해 도를 넘게 되면 추해지지만 술에 취하면 시흥이 절로 날 뿐이니 우리에게는 누룩 냄새가 제격이 아니겠는가! 

 

이인문: 취하는 것도 순서가 있다는 말로 들리는구먼. 만 송이 꽃도 술에 먼저 취하면 한 송이 꽃으로 보일 수 있으니 자연 꽃향기에 먼저 취하고 술에 나중 취해도 늦지 않을 듯 싶으이.

 

김홍도: 꽃향기에 취하거나 술에 취하거나 취하기는 마찬가진데 뭘 그리 복잡한가? 장자의 나비든 나비의 장자든, 장자는 장자고 나비는 나비 아닌가?

 

그들의 대화는 화제에 자주 나오는 장자의 일逸 철학(넘어서고 벗어나는 데서 맛보는 통쾌의 격조)에 도달해 있었다. '인생이란 장자의 춘몽과 다를 바 없다'며 술잔을 더 높이 드는 삼인방에게서 진한 묵향이 번졌다. 인생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그 맛이 더해지는 게 장자의 도라면 평생을 화원으로 살아온 이들 인생의 마지막 부분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향기로워진 묵향의 도가 아닐까?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이인문은 화선지와 마주앉았다.

 

이미 구상해놓은 듯 먹물을 툭툭 치며 지나간 자리에는 어느새 가파른 절벽이 생기고 흰 여백에는 계곡물이 소리 내어 넘쳐나고 리듬을 타며 이어지는 경쾌한 붓놀림 뒤로 소나무 등걸이 휘어져 갈지자로 뻗어나갔다. 취한 듯 기이한 소나무에 커다란 묵점을 찍어 운치를 더하더니 너럭바위 위로 두 노인을 불러들여 운을 띄웠다. 그러자 이상향의 자연 속에서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는 두 노인이 그림에 담겼다.

 

이 그림을 감상하던 김홍도는 기가 막힌 소나무 포치를 보고는 절로 무릎쳤다. 오른쪽 소나무 등걸의 시작점이 왼쪽으로 늘어뜨린 가지 끝과 수평을 이루고 용이 갈지자로 하늘에 올라가듯 하다가 다시 계곡물 소리를 듣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늘어뜨린 가지의 꼬임과 뻗침을 절묘하게 묘사하였으며 더욱 탄성을 자아내는 것은 나무의 형태가 계곡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를 닮아 있었다. 계곡을 보고 자란 나무라 그 계곡의 흐름을 따르다 그리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노송의 자태와 계곡을 흐름을 일치시킨 포치가 가히 압권이었다. 나무가 자연을 닮고자 그 형태를 이뤄내다니...... 오묘하였고 바위를 타고 도는 계곡물이 이루는 공간적 분모가 하나라면 나뭇가지가 만들어내는 공간적 분자도 하나로 분모와 분자가 일 대 일 균형이 맞추어져 그려졌다. 흥하면 답하는 박자가 딱 한 박자다. 종종 맞추며 흐르는 감각이 여리면서도 날카로웠다.

 

김홍도: 마음에 드네. 자네들은 어떠신가? 여기 이 중턱 노송 아래 두 노인이 한가로이 담소를 즐기고 있으니 나는 이 그림을 <송하한담도松下閑談圖>라 부르고 싶네.

 

박유성: 고송유수관이란 호가 달리 붙여졌겠는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지.

 

이인문: 왜들 이러시나? 겨우 그림 한 점에 벗들의 과한 평이라니. 내가 지음知音 복은 많은가 보네. 자! 이제 단원 자네가 화제를 달아주시게. 내 술 한잔 권하리다.

 

<송하한담도>와 마주 앉아 그림을 음미하듯 천천히 잔을 비운 김홍도가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짓더니 먹을 적셨다.

 

중년에 이르러 자못 불법을 좋아하여 늘그막 사는 집을 남산 기슭에 잡았네. 발걸음 멈추고 물이 휘돌아 지나간 곳에 앉아서 구름이 몰려가는 곳을 바라보네. 저절로 시흥이 일어도 늘 혼자이니 빼어난 경치 그저 나만 알 뿐인데 뜻밖에 늙은 나무꾼을 만나 이야기하고 웃느라 돌아갈 줄 모르네. 을축년 정월에 도인 이인문과 단구 김홍도가 서묵재에서 글을 쓰고 그림 그려 육일당 주인에게 드리다.

 

이인문이 거침없는 필치로 운을 띄웠다면 김홍도는 왕유王維(701?~761, 당나라 시인, '시불詩佛'이란 칭호를 받은 자연시인)의 시를 빌려 화답하였다. 김홍도가 쓴 제시는 왕유가 지은 「종남별업終南別業」에서 인용한 것으로 당시 선비들은 속세에서 벗어나 초가삼간 터를 삼아 아호를 짓고 은일하게 살아가는 것을 이상향으로 생각하였다. '발길 다다른 곳에 샘물 하나 겨우 지닌 깊은 산 속에 구름이 피어나고 시흥이 일어날 때 늘 그랬던 것처럼 혼자여도 좋지만, 승경을 나눌 이 없어 호젓했던 마음을 달래줄 늙은 나무꾼 한 사람 가끔 만나면 족하다'는 왕유의 시처럼 은일하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노송 아래 너럭바위 위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두 노인은 누구일까? 상대에 대한 존중을 생각해본다면 위에 있는 노인이 김홍도이고 아래 있는 노인이 이인문일 것이다. 두 사람의 절묘하면서 기막힌 시선처리가 이 그림의 완성도를 더해주며 그림 속 상대가 누군지 알게 한다.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는 노인은 유수관 이인문을 닮고 싶어 했던 김홍도일 것이고, 고개 들어 소나무를 바라보는 이는 김홍도의 선풍을 닮고 싶어 했던 이인문일 터였다.

 

김홍도: 화제를 적고 보니 도인이 그린 노송에는 성스런 기운이 흐르는데 화제가 술기운 탓에 몹시도 날리었네 그려.

 

이인문: 사람과 나무는 닮은 점이 참 많지 않나? 땅을 딛고 하늘을 향해 서 있는 품새를 보니 사람이나 나무나 지혜롭기는 마찬가지라 생각이 드네.

 

김홍도: 노송의 그림자가 계곡물에 비치는군. 절묘한 구성이야! 그렇지 아니한가?

 

이인문: 하여간 단원의 시선을 피해 갈 수 없구먼.

 

김홍도: 내 항상 자네의 활달하고 거침없는 이런 필치가 부러웠다네. 붓질 한 번에 계곡물 소리가 터지고 꺾이는가 하면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붓 자국에 늙은 소나무 등걸이 나이 더하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지.

 

박유성: 소나무가 겸손의 미덕이 있는 모양을 갖추려면 일정 세월 흘러야 하지 않겠는가?

 

이인문: 수령이 이백오십 년이 지나야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때 이르러야 비로소 겸손의 미덕을 몸에 지닐 수 있다고 하네. 오랜 세월을 견디며 만들어진 나이테만이 가지를 땅에 가깝고 하고 지탱할 힘이 생기는 것이지. 늘어진 가지를 누가 추어올리려 해도 늘 아래로 향하고 솔가지로 갓을 만들어 하심下心을 키우며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김홍도: 그런 이치를 안다고 해서 화폭 위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은 아니네. 하늘이 낸 천재는 붓을 가리지 않고 명필을 뽑아낸다는 말이 맞이 않겠는가?

 

이인문: 모든 회화에 달통한 단원께서 그리 말하면 졸작도 명작이 될 터. 이처럼 그림에 대한 평이 후한 것을 보니 자네 아직 술이 부족하지 싶네.

 

김홍도: 아닐세. 고송유수관 도인의 그림을 내 평생 가까이하면서 느꼈던 감동을 뒤늦게 사실로 이야기했을 뿐이네.

 

이인문 李寅文(1745~1824년 이후)의 호는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觀道人이며 화원으로 첨사를 지냈다. 김홍도와 동갑내기 절친한 친구이자 그와 함께 당대에 쌍벽을 이룬 화가로 꼽힌다. 산수를 비롯하여 도석인물, 영모 등 다방면에 걸쳐 수준 높은 그림을 그렸다. 특히 고송유수관도인이란 그의 호에 걸맞게 오래된 소나무와 시원한 물줄기를 그린 명품을 많이 남겼다. 이인문의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작품은 길이 8미터가 넘는 대작인 <강산무진도 江山無盡圖>.

 

※이 글은 이재원지은 <조선의 아트 저널리스트 김홍도>(2016, 살림)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2016. 9. 1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