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몽골의 신의 - 대암 이태준 - 본문

글과 그림

몽골의 신의 - 대암 이태준 -

새샘 2016. 6. 29. 16:12


몽골의 수도 울반바토르

2차세계대전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추모하는 자이승 승전 기념탑

이 기념탑 앞의 특별한 공원이 문을 열었다.


그 이름은 <이태준 선생 기념 공원>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근대적 의학 교육기관 세브란스 의학교

1911년 6월 제2회 졸업생 배출

의학교 재학 시절부터 청년학우회에 가담해 구국운동에 참여하던 소년


대암大岩 이태준李泰俊(1883~1921)


1919년 그는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독립운동가 안창호를 만나게 된다.


"의학교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으나 날로 심화되는 일제의 침략과 탄압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중국으로 망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1921년 7월 16일 -


중국 난징으로 떠나 독립군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그는 1914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한다.

그리고 독립군 장교를 양성하기 위한 병원 '동의의국同義醫局' 개원.

'동의의국'이란 '같은 뜻을 가진 동지들의 병원'이란 의미다.


몽골에서 자금을 모으며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이태준은 당시 몽골에 만연해 있던 화류병(성병인 매독) 치료를 위해 근대식 의술을 펼쳐나간다.


"몽골사람들은 그를 극락세계에서 강림한 여래불을 대하듯 존경한다고 한다."

 - (독립신문), 1919년 11월 11일


신통한 의술을 지닌 '까레이 의사'라 불리며 주목을 받은 그는

몽골의 마지막 황제인 젭춘담바 쿠툭투 8세의 주치의로 활약하면서

1919년 몽골제국으로부터 당시 외국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인 에르테닌 오치르 훈장을 받는다.



이태준은 몽골인들의 존경과 신뢰를 발판으로 모은 자금 대부분을 독립원동 지원에 대부분을 사용.

1919년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됐던 김규식에게 경비 지원, 중국과 몽골, 러시아를 오가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숙식과 교통을 비롯한 갖가지 편의 제공.

그의 병원은 독립운동가의 중간 연락 거점이자 군자금 유통경로로도 활용.

특히 이태준은 1920년 러시아 혁명정부가 상하이 임시정부에 제공한 40만 루블을 모스크바에서 상하이까지 옮기는 일을 도왔다.


1921년 2월 대대적인 약탈과 살육을 통해 몽골을 점령한 러시아

이태준은 퇴각하던 중국군에 합류하지 않고 몽골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의 나이 38세 미처 뜻을 펴지 못한 채 공산주의자들과 관련되었다는 혐의로 러시아군 내 친일세력에 살해당한다.


1921년 가을, 여운형은 민족대표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던 중에 몽골의 수도 후레(현재 울란바토르)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그는 동료들의 출발 준비를 기다리다가 이곳에 있다는 한 한국인의 무덤을 찾았다. 무덤은 키가 작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벌거벗은 산비탈 한복판에 자라잡고 있었다. 간소한 무덤이었다. 여운형을 안내한 현지인은 부근 부락의 주민들 중에 이 조선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이야기했다. 훗날 여운형은 "이 땅에 있는 오직 하나의 이 한국 사람 무덤은 이 땅의 민중을 위하여 젊은 일생을 바친 한 한국 청년의 기특한 헌신과 희생의 기념비였다"고 회상했다. 이역의 흙으로 짧은 일생을 마친 한국 청년의 이름이 바로 이태준이다.


이태준의 활약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죽은 지 60여년이 흐른 뒤에야 1980년 대통령 표창을 서훈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를 내렸다.


2001년 울란바토르에는 무덤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자이승 승전 기념탑 자락 아래에  

<이태준 선생 기념 공원>이 조성되었다.

이 기념공원은 몽골한인회와 세브란스 의학교의 후신인 연세대학교 의료원이 주축이 되어 몽골 정부가 제공한 울란바토르의 부지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 기념공원은 몽골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위 사진 출처: http://jhdyys.tistory.com>




※이 글은 EBS 역사채널ⓔ 지음, <역사ⓔ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주)북하우스, 2016에 실린 글을 발췌한 것이다.


2016. 6. 2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