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수월헌 임희지 "묵란" 본문

글과 그림

수월헌 임희지 "묵란"

새샘 2016. 7. 24. 21:49

<벽에 걸고 정을 주다>

 

임희지, 묵란墨蘭, 18세기, 종이에 수묵, 62.5x38.5cm,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

 

 

베어버리자니 풀이고 두고 보자니 꽃이다.

어제 울타리 아래 풀도 오늘 술잔 앞에서 꽃이다.

난초는 어떤가.

풀인 것이 난초요, 꽃인 것이 난초인데, 난초는 풀도 꽃도 넘본다.

빈 계곡에 돋아나 남몰래 향기 그윽하고 선비의 책상머리에 놓여 오롯이 사랑받이(사랑을 특별히 받는 사람).

난초를 곁에 두면 천 리 밖 초목이 무색하다.

 

하여도 이 난초, 심하다.

어쩌자고 이리 간드러지고 누구 마음 녹이려고 저 교태인가.

샐그러진 잎이 바람결에 춤춘다.

여인의 소맷부리처럼 보드랍다.

꽃들은 맞받이(맞은편에서 마주 바라보이는 곳)에서 끌어안는다.

그리움 타서 옹그린 표정이 애잔하데, 꽃잎에 이슬 맺히면 글썽이는 눈망울을 볼 뻔했다.

그려놓은 난초라도 마음에 심은 난초다.

 

그린 이를 알면 그린 뜻이 짐작된다.

조선 화단의 기인 임희지가 그렸다.

그림 아래 알듯 모를듯한 '수월水月'이 보인다.

마당에 못을 파도 물이 고이지 않자 임희지는 쌀뜨물을 부었다.

그는 말했다.

"달빛이 물의 낯짝을 골라서 비추겠는가."

'물에 비친 달'은 그의 호 '수월헌水月軒'이 됐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첩을 얻자 누가 나무랐다.

그의 변명이 기막히다.

"집에 꽃밭이 없어 방안에 꽃 하나 들여놨다."

 

하고 다닌 행색은 더 가관이다.

달 밝은 밤, 팔 척 거구에 거위털을 입고 쌍사투를 튼 채 맨발로 생황을 불고 다녔다는 그다.

풍류가 아니라 미치광이 놀음에 가깝다.

그의 짓거리로 보면 이 난초는 얻고픈 정인 情人이다.

축첩이 모자라 벽에도 걸었다.

그 심정 알아챈 옛 시인이 읊는다.

 

"주머니 비어도 길거리에서 팔 수 없으니

 그윽한 향기 그려 종이 위에서 보노라."

 

글은 손철주 지음, 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2011, 현암사)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임희지林熙之(1765~?)는 조선 후기(영정조)의 문인화가. 호는 수월헌, 수월당, 수월도인 등. 한역관 출신으로 중인출신 문인 모임인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대나무와 난초를 너무 잘 그려 당대의 묵죽과 묵란 대가 강세황과 병칭될 정도로 인정 받았다. 유작으로 패기와 문기가 넘치는 묵죽도와 묵란도가 여러 점 전한다.

 

2016. 7. 2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