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18. 5/19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 전주사고, 조경묘, 경기전 부속건물 본문
경기전慶基殿은 '경사스런 터에 지은 궁궐'이란 뜻을 가진 궁전으로서 조선이 건국되자 왕권의 권위를 만방에 떨치기 위해 세워졌다. 이를 위해 태종 10년 1410년 조선을 처음 세운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 즉 어진御眞을 보관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건되었다. 경기전의 태조 어진은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 건국자의 초상이며, 경기전 또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지방의 진전眞殿(어진을 모신 궁전)이다.
경기전 안내도
경기전 출입문인 정문과 은행나무 - 경기전은 명성황후, 용의눈물, 궁 등의 드라마 촬영장소로 잘 알려져 있으며, 매년 음력 9월 9일에는 조경묘·경기전 중앙대제가 열리는데 전국에서 2천여명의 종친과 관계자들이 참석하고 있다.
정문 앞에 서 있는 하마비 -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든 이 앞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표석으로 '지차개하마至此皆下馬 잡인무득입雜人毋得入(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리고 아무나 출입하지 말라)'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하마비는 광해군 6년 1614년에 처음 세워졌고 철종 7년 1856년 중각.
경기전 정문 앞 태조로에는 새끼를 꼬아 만든 동물(말, 코끼리, 소)을 세워 두고 사진을 찍는 곳이 있다. 물론 유료.
경기전 정전으로 들어가는 홍살문과 외삼문
경기전 정전 내삼문 -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 즉 어진을 모신 경기전 정전은 태종 10년 1410에 세웠다. 태조의 초상화를 보관하는 건물은 원래 개성, 영흥, 전주, 경주, 평양 등 5개 지방에 있었지만 이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임진홰란 때 불 타 버렸다. 이곳 경기전 정전도 정유재란 때 불에 탔으나 광해군 6년 1614년에 다시 세웠으며, 회랑을 두어 최고의 사당임을 나타내었다. 내삼문은 정전 바로 앞문이다.
경기전 정전과 정전 앞 정자각 - 정자각 지붕 정면에는 화재막이용 암수 두 마리의 거북이 조형물이 붙어 있다.
정전 한가운데 감실에 있는 태조 이성계 어진 - 고종 9년 1872년에 새로 모사한 어진이며, 구본은 초상을 물에 씻어내고 백자항아리에 담아 진전 북쪽에 묻었다고 한다.
전주사고 가는 문
전주사고 앞 뜰 - 대나무숲과 굽은 매실나무가 이채롭다.
전주사고와 조선왕조실록보전기적비 - 기적비 뒷면 비문에는 조선왕조실록이 오늘에 보전된 피어린 사실을 새겨놓았다.
전주사고 - 우리나라는 고려때부터 춘추관과 예문관을 상설하고 사관을 두어 날마다 시정을 기록하였으며, 한 임금이 전왕시대의 역사를 편찬하여 이를 실록實錄이라 하고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에 봉안하여 왔었다. 조선왕조에서 실록을 편찬한 것은 태종 9년 1409년부터 태종 13년 1413년까지 4년간의 태조실록 15권을 편찬한 것이 처름이며 세종 8년 1426년 정종실록 6권, 세종 13년 1431년 태종실록 36권을 편찬한 후 태조·정종·태종의 3조실록 각 2부씩 등사하여 1부는 서울의 춘추관에, 1부는 충주사고에 각각 봉안하였다. 그러나 2부의 실록만으로는 그 보존이 매우 걱정되어 세종 27년 1445년에 다시 2부를 더 등사하여 전주와 성주에 사고를 신설하고 각 1부씩 분장하였다.
선조 25년 1592년 임진왜란 때 춘추관·충주·성주의 3사고의 실록은 모두 소실되고 오직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병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손홍록, 안의 등이 실록을 내장산 용굴암에 이안, 사수하였기 때문이었다. 전주사고에는 실록 784권 614책 47궤와 기타 전적 64종 64종 556책 15궤가 봉안되어 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실록각은 소실되었으며, 1991년 복원하였다.
조선왕조실록(국보 제151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전주사고의 실록이 봉안되어 있는 건물 이름은 실록각實錄閣
실록각은 누각 형태로서 계단을 통해 올라가도록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실록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물들을 볼 수 있다.
홍살문이 있는 건물이 조경묘肇慶廟 -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李翰과 그 부인인 경주 김씨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한은 신라때 사공司公(도성을 쌓고 고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벼슬)을 지냈다. 태조 이성계는 이한의 21대 손이다. 조경묘는 영조 47년 1771년에 세워졌으며, 영조의 세손인 정조가 쓴 위패를 봉안했다. 철종 5년 1854년 경기전과 함께 보수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조경묘는 경기전과 함께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임을 상징하는 곳이다.
조경묘 앞 솔숲
어진박물관
어진박물관을 나와 경기전 서문 근처에서 바라본 경기전과 주변 풍광 - 정면의 첨탑이 전동성당이고, 왼쪽 담 안의 건물이 경기전 부속건물이다.
경기전 부속건물 서쪽 출입구 - 경기전 부속건물은 경기전의 관리시설 및 관리인들의 생활공간이다.
경기전 부속건물 안내도
제사를 지내는 관리인 제관의 재계의식을 행하는 2개의 건물 중 서쪽에 위치한 서재
말을 보관하는 마청
수복청으로 나가는 문 앞에서 뒤돌아 본 부속건물들 - 왼쪽 건물은 앞에서부터 차례로 서재, 제기고, 담 뒤가 용실이며, 오른쪽 건물은 앞에서부터 차례로 동재, 마청, 진사청, 조과청이다.
수복청 - 하급관리들의 사무실 및 임시 거처
경덕헌 - 수문장 근무처
2018. 6. 10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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