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남부 해안 지방의 신목 팽나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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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해안 지방의 신목 팽나무

새샘 2018. 9. 21. 21:21

서울 강남구의 삼성서울병원 정문 경비실 뒤에서부터 주차장쪽까지 한줄로 늘어선 팽나무 네 그루(2018. 8. 29)

 

인터넷에서 찾은 팽나무 꽃(출처 - http://blog.daum.net/airport99/1484)과(출처 - https://www.treeinfo.net/ti_specificity/92)

 

팽나무란 이름은 작은 대나무 대롱 위와 아래에 익지 않은 초록색 팽나무 열매를 한 알씩 넣고 위에 대나무 꼬챙이를 꽂아 탁 치면 아래쪽에 있는 팽나무 열매가 '팽~'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팽총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팽나무 잎사귀는 짙은 녹색이고 표면에는 광택이 있다. 팽나무는 곧추 자라는 나무가 아니다. 밑에서부터 옆으로 가지를 펼치는 성질이 있어 넓은 면적을 차지하면서 햇볕을 쬐기 때문에 어린 묘목일 때부터 다른 나무와 차별을 두면서 크게 자란다. 팽나무의 껍질은 매끈하고 이른 봄에 잎과 동시에 꽃잎없는 연노란이 피는데 워낙 작은 것들이 잔가지에 모여 있는 데다가 꽃잎이 퇴화해 잘 보이지 않는다. 여름에는 녹두알보다 작은 초록 열매가 잎겨드랑이마다 하나씩 딸린다. 가을이면 열매는 오렌지색(붉은색이 강한 노란색)으로 익는다이 열매를 먹으면 달착지근하여 곶감과 비슷한 맛이 난다. 열매는 작아도 워낙 많이 달리기 때문에 수많은 산새들이 찾아온다. 겨울에도 열매가 쉽게 떨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매달려 있어서 겨울 철새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된다.

 

팽나무는 충청도 이남 지역의 해안 지방에서는 동신목木으로 보호되는 것들이 많다. 특히 바닷가 마을에서는 느티나무와 함께 해신海神 모시는 당집 근처의 당산나무 숲을 이루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 보니 수백 년 된 노거수들이 전국에 흩어져 자라고 있다. 2016년 12월 산림청에서 발간한 <이야기기 있는 보호수 nures-trees story>란 책에서 우리나라 보호수 100선에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회화나무, 느릅나무에 이어 6번째로 많은 팽나무 4그루가 포함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정자나무 중 느티나무 다음으로 많이 심어져 있. 사실 팽나무란 이름보다는 서낭당이나 정월 대보름 당제를 드리는 신목神木이라 해야 이해가 빠르다. 예로부터 신령이 깃들어 있는 신목으로 여러 이 땅의 주민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해 온 향토 수종이다. 팽나무는 지방에 따라 미태나무, 폭나무, 평나무, 패구나무, 포구浦口나무 등으로도 불린다.

 

팽나무는 타원형 잎의 바깥쪽 절반에만 가장자리에 톱니가 나 있고, 안쪽 잎자루쪽 가장자리는 톱니가 없이 밋밋하다. 지방에 따라서는 봄철에 돋아나는 어린 싹을 나물로 먹기도 한다. 팽나무의 잔가지는 약재로 요통, 관절통, 월경불순, 습진, 옴 등에 사용된다. 또한 팽나무는 워낙 나무가 크게 자라고 굵어서 고급 목재로 꼽는다. 결이 곱고 재질이 튼튼하여 고급 가구재로 안성맞춤이다. 팽나무 밑으로 가면 작은 묘목이 돋아난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씨가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싹이 돋아나기 때문에 어린 묘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느릅나무과에 딸린 갈잎큰키나무(낙엽교목)인 팽나무는 나무껍질이 회색이다. 2년생의 가지는 갈색이고 1년생의 가지는 초록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 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고 생김새도 나름 독특하다. 줄기와 잎, 열매까지 모두가 예술적으로 생긴데다가 여름 땡볕에 시원한 그늘을 푸짐하게 내리는 등 애당초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나무가 바로 팽나무이다. 이러한 팽나무가 중국과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 전역에 골고루 분포돼 있다. 김알지의 전설이 있는 경주 계림의 숲은 팽나무 천지다. 경주 김씨의 조상목이나 다름이 없다.

 

현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의 전신인 서울 종로구에 있었던 한국기상산업진흥원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양쪽에 아름드리 팽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었다(지금도 있는지는???). 길 양쪽에 마치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는 모습에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심적으로 안정감을 주게 된다. 부산 북구 구포동 백양산 밑에서 낙동강을 보고 있는 5백 년 생 팽나무는 천연기념물 309호이고, 완도의 팽나무는 밑둥치의 둘레만 7.5m로 어른 다섯 명이 둘러싸야 할 정도로 크다. 북제주군 한림읍 명월마을에 있는 4백 살 된 팽나무 군락은 제주의 넋이나 다름없다. 옛날부터 동수감洞樹監을 두어 나뭇가지 하나라도 꺾었다가는 벌을 내렸다고 한다. 지난 1948년 4·3사건 때 공비 토벌을 이유로 이 팽나무 숲을 베어 내려고 할 때 "나무 대신 차라리 우리를 베라"며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경남 고성군 마암면 삼락리의 팽나무는 금목신金木神이란 이름으로 논 4백 평까지 소유하는 있는데 법적으로 등기까지 되어 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이 나무에서 동제를 올리곤 했는데 1967년에 이동수 씨가 팽나무의 이름을 짓고 자기 소유의 논 4백 평을 제수 장만용으로 등기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해에 제주가 농사를 짓고 수확된 곡식을 처분해 성대한 동제를 올리고 있다. 특히 이 나무는 임진왜란 때 고사를 지내고 출진한 거북선이 50여 척의 왜선을 때려 부쉈다고 해서 유명하다.

 

팽나무는 가지가 촘촘하게 자라고 섬세하게 배열되기 때문에 겨울의 나목이 아름답다. 창경궁의 팽나무도 마찬가지다. 느티나무처럼 가는 가지가 촘촘하게 붙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으면 그야말로 기막힌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특히 바닷가의 해풍을 맞으며 자라는 것은 가지가 더 꼬부라져 장관이다. 키는 작고 옆으로 퍼져 있는 수형을 보면 정말 볼 만하다.

 

팽나무는 가을에 가장 돋보인다. 노란 단풍이 들면 주변의 어떤 나무보다 화려하다. 마치 큰 은행나무처럼 고운 노란색으로 물든다. 그리고 늦은 가을날 소리 없이 떨어져 내리면서 지면을 온통 금빛으로 바꾸어 놓는다. 나무의 금빛 이파리들이 아스팔트의 검은빛을 가려 고귀한 황금색으로 바꾸게 되니 이런 조화가 또 어디 있을까?

 

※이 글에서 사진을 제외한 글의 대부분은 오병훈 지음, '서울의 나무, 이야기를 새기다(2014, 을유문화사)'에 실린 글을 발췌한 것이다.

 

2018. 9. 2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