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영원한 겨레의 푸른 기상 소나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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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겨레의 푸른 기상 소나무

새샘 2018. 6. 15. 23:09

남한산성길의 소나무들은 전형적인 붉은 줄기가 시원스럽게 쭉쭉 뻗은 금강소나무

 

 

소나무는 햇빛을 받아야 잘 자라는 양수陽樹이면서 산성 토양에서도 잘 견디는 강인한 식물이다. 옛 문인들이 줄겨 심고 가꾸었던 소나무는 줄기가 S자로 구부러지고 가지가 쳐지며 붉은 껍질이 거북이 등껍질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소나무가 바로 겸재 정선이나 표암 강세황의 산수화에 나오는 문인목文人木.

 

소나무의 대표는 우리 애국가에 나오는 가사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처럼 다름아닌 남산 소나무이다. 이처럼 소나무가 우리 겨레의 기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소나무松와 잣나무柏는 완성된 인격자에 비유된다. 예로부터 '무성한 소나무에 하례함은 오직 잣나무 뿐 賀得茂松偏是柏'이라 했다. 훌륭한 사람에게는 훌륭한 인재가 끊이질 않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송백이야말로 군자로 여겼다. 나아가 소나무는 사철이 푸르다 해서 장수와 건강을 뜻하기도 했다. 그래서 옛 그림에서는 수복강녕을 염원하는 뜻으로 '십장생도十長生圖'에 소나무를 등장시켰다. 솔방울은 결실과 풍요를 뜻하고 다복과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의 옛 풍속에 정월이면 한 해를 맞이하는 뜻으로 어른들에게 세배 인사를 드렸다. 가까이 모시는 어른들에게는 직접 세배를 드렸으나 멀리 계시는 분에게는 서신으로 새해 안부를 전했는데 이때 수복강녕을 담은 소나무와 학 그림을 즐겨 사용했다. 그 그림을 세화歲畵라 한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연하장과 같은 것이다.
모든 초목이 푸른 여름에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그 청정한 아름다움이나 가치를 모른다고 했다. 겨울이 되어 초목의 잎이 떨어진 뒤에도 송백만이 변함없으니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기상이 바로 이 나무와 같지 않을까.
소나무는 이라 하고 한자로는 송이라 쓴다. '솔'은 윗자리, 높다, 으뜸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모든 나무의 어른이란 뜻이다. 또 나무 중에서도 재상의 자리에 올라 있는 것으로 여겨져서 산의 주인으로 모자람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제주 민요에는 산천의 보배라고 했다. 소나무만이 나무 중의 나무이기 때문이다.                           

 

물속의 보배는 진주가 보배                           

산천의 보배는 소낭기 보배

인간의 보배는 자식이 보배

 

'바다에서 가장 값진 것은 진주이고, 산천에서 가장 값진 것은 소나무이고, 인간에게 가장 값진 것은 자식'이란 내용.

 

이 땅에서 소나무가 자라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6천년 전부터라고 한다. 예로부터 소나무를 신령스럽게 생각했으므로 지금도 마을 앞에 송림을 조성하여 당산 숲으로 심은 곳이 전국 각지에 남아 있다. 영목, 신목으로 숭상하여 재앙과 사귀를 막아 주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출산 때 산모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왼새끼를 꼬아 솔가지와 숯을 꽂는 것도 같은 이유다. 뿐만 아니라 동제를 지내는 제단 주위에는 붉은 황토를 뿌리고 솔가지로 부정을 쓸어 낸다. 마을을 수호하는 장승도 소나무 줄기로 깎는다. 죽은 이의 유택인 산소 주위에 심는 나무도 소나무를 으뜸으로 친다. 송림 아래에는 다른 잡목이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잡초가 자라지 못하니 들쥐나 뱀 같은 짐승 또한 살지 못한다.

 

새샘 선영 들머리 소나무

 

 

소나무 목재는 건축 자재로도 최고다. 현존하는 최고 목조 건축물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도 소나무로 지었다. 소나무 목재가 없었다면 국보 1호인 숭례문도, 보물 1호인 흥인지문도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소나무는 가구를 만들거나 배를 건조할 때 사용되고 펄프재로 쓰이기도 한다. 또 송진을 증류하여 여러 가지 휘발성 기름을 얻고 의약품 원료로도 쓰인다. 기름이 귀했던 시절 관솔 가지는 조명용 기름 대신으로 쓰였다. 그러한 관솔불을 송명松明이라 블렀다. 제주도에서는 소나무 가지에 붙인 불이라는 뜻으로 살칵불이라 하는데 한번 불을 붙여 놓으면 쉽게 꺼지지 않아 주로 밖에서 일을 할 때 사용했다. 하지만 그을음이 많이 나기 때문에 살칵불은 돌코냉이라고 하는 돌로 만든 등잔 위에서 피웠다. 일제 때는 항공기 기름을 정제하기 위해 군관민을 독려하여 관솔불을 모으기도 했다.

 

또한 솔가지를 태운 그을음에 아교를 섞어 만든 먹을 송연묵松煙墨이라 하여 최고급으로 쳤다.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는 "광주, 영주, 양주 세 고을에서 소나무가 많은데 잎이 두 가닥인 것과 다섯 가닥인 것이 있다. 다섯 가닥 소나무에서 열매가 달린다. 또 땅이 비옥하여 복령茯苓(버섯의 일종)이 잘 자란다"고 적고 있다. 우리나라 백두산의 소나무 목재는 멀리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명산물이었던 것 같다. 김종서가 편찬한 고려사절요 23권 충선왕 조에는 백두산의 목재로 배 100척을 만들고 우리 쌀 3천 석을 싣고 원나라로 갔다는 기록이 보인다.

 

송홧가루는 예로부터 청혈 강장식품으로 알려져 신선식이라 했고, 송화다식松花茶食이야말로 한과 중에서으뜸이다. 송편은 솔잎을 깔고 쪄야 제맛이 나고 쉽게 변질되지 않는다. 송이는 솔밭에서만 얻을 수 있고 복령이라는 귀한 약재 또한 소나무 그루터기에서 채취한다. 또한 솔잎으로는 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차는 데워서 마시는 반면 솔잎차는 차게 해서 마신다. 냉정한 정신 상태를 가지리려는 뜻에서다. 불린 콩을 갈아 콩즙을 만들고 솔잎즙을 짜 섞어 먹는 음식이야말로 불가에 비전돼 내려오는 선식이다. 솔잎을 생식하면 암을 예방하고 눈이 밝아지며 추위와 굶주림을 모른다고 전해진다. 송엽주, 송화주, 송순주는 머리를 맑게 하는 민속주이며 중풍과 치매 같은 성인병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SNS에서 자주 보이는 60년 또는 100년 만에 핀다는 소나무꽃에 대한 얘기는 잘못된 것이다. 소나무는 대부분의 식물이 그렇듯이 암수한몸(자웅동체)으로서 해마다 암꽃과 수꽃이 같이 핀다. 우리가 소나무꽃을 잘 보지 못하는 것은 다른 꽃처럼 화려하지 못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봄에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수꽃의 송홧가루가 주범이다.

 

소나무의 수꽃과 암꽃, 그리고 솔방울

 

 

※여기에 올린 남한산성과 선영 소나무 사진은 모두 새샘이 찍었고, 소나무 수꽃, 암꽃, 솔방울 사진은 인터넷에서 찾았으며, 글의 대부분은 오병훈 지음, '서울의 나무, 이야기를 새기다(2014, 을유문화사)

'에 실린 글을 발췌한 것이다.

 

2018. 6. 1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