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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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회화나무

새샘 2018. 4. 22. 20:17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차례로 서 있는 3그루의 회화나무 노거수


3그루 맞은편에 앙상하게 키가 커서 우뚝 솟아 있는 회화나무


3그루의 회화나무를 지나 금호문 입구에 서 있는 나무껍질이 벗겨진 회화나무


창덕궁 돈화문 안에 있는 8그루의 회화나무(한자어 괴화槐花, 영어 Chinese scholar tree)가 천연기념물 제472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나무높이는 15~16m, 가슴높이 줄기 지름은 90~178cm에 이르는 노거수이다. 이 회화나무 노거수는 1820년 대 중반 제작된 동궐도에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수령 300~4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콩과식물인 회화나무는 7~8월 열정적인 더위가 물러가고 햇살이 건조하다고 느낄 때쯤이면 가지에서 누른빛이 도는 흰색 꽃이 원추꽃차례를 이루어 많이 달린다. 다른 나무들이 열매를 살찌우고 익어갈 때 회화나무는 비로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회화나무 원추꽃차례 흰꽃(출처: http://egloos.zum.com/yes3man/v/7282849)


이어 2~3개월 뒤인 10월이면 가지마다 수많은 꼬투리를 매달고 속에서는 씨가 여물어 간다. 회화나무의 열매는 팥꼬투리처럼 길고 볼록볼록 튀어나온 것이 마치 염주 같다. 꼬투리를 열면 콩과식물답게 작은 팥알 같은 씨가 3~5개씩 들어 있다.


회화나무 열매(출처: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IKFO&articleno= 7574612&categoryId=98334®dt=20120822095305)


회화나무는 천 년을 사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팽나무와 함께 4대 장수목이라 불린다. 이 네 나무 중 느티나무와 팽나무는 우리나라 자생종이고, 회화나무와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 삼국사기 열전에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에 들어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회화나무를 아주 귀하게 여긴다.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 앞에 심는 세 가지 나무 중 하나인 까닭이다. 나머지 두 가지 나무는 은행나무와 측백나무다. 조선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5백년 동안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세우고 온 이 땅에서는 문묘에 은행나무와 회화나무를 심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은행나무는 물론이려니와 회화나무 거목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은 그만큼 잘 가꾸고 보호해 온 덕분이다.


중국 주나라 때 회화나무는 조정을 상징하는 나무였다.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궁궐 뜰에 심고 삼정승으로 하여금 각기 나무 아래에서 정사를 돌보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회화나무는 지금까지 입신양명을 뜻하는 표상이 되었다. 삼공구경三公九卿이 집무하는 곳에 심는 나무이므로 그곳으로 다가가기 위한 학문의 길을 괴문극로槐門棘路라고 했다. 황제와 군왕이 정사를 돌보는 궁궐은 괴신槐宸이라 했는데 회화나무가 있는 큰 집이란 뜻이다. 또한 음력 7월 회화나무 꽃이 필 때 치르는 진사시를 회화나무 꽃에 빗대어 괴추槐秋, 시험장으로 가는 길을 괴로槐路라고 불렀다.


주나라 때는 묘지에 심는 나무도 엄격하게 구분했는데 왕릉에는 군왕을 뜻하는 소나무를, 종친은 소나무와 같은 늘푸른나무(상록수)인 측백나무를, 당상관 이상의 고급관리는 회화나무를, 학자의 묘지에는 모감주나무를, 일반 백성은 미루나무(포플러)를 심었다고 한다. 이렇게 잎지는나무(낙엽수)로는 회화나무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 귀한 대접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회화나무는 입신양명을 염원하는 이상적인 나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안의 세계로 가는 지표가 되기도 했다. 서원이나 향교에 회화나무를 심고 사대부의 뜰에도 이 나무를 심은 것은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성정이 학문과 출세를 뜻하기 때문에 더욱 선호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회화나무는 선비가 진리를 찾도록 길잡이가 되어둔 고마운 나무였다. 회화나무 아래서 진사시를 치뤄 관리로서의 첫발을 디딘 후 관직에서 물러나면 후배들이 선물한 회화나무 묘목을 가지고 향리로 돌아가 기념으로 심었다고 한다.


서산 해미읍성 안에는 '호야나무'라고 부르는 6백 년 된 회화나무 노거수가 살아 있다. 이 나무에는 조선 말 병인사옥 때 수많은 천주교도가 죽어 가면 흘린 피가 스며 있다고 한다. 나무에 매달고 천주를 버릴 것을 강요했으나 끝내 순교로서 자신의 신앙을 지킨 지조를 상징하는 나무가 바로 이 회화나무다. 천주교도들의 목을 매달았으므로 교수목이라고 부르는데 아직도 당시에 목을 매달았던 철사가 이 나무에 박혀 있다.


서산 해미읍성의 회화나무=호야나무=교수목(출처: http://www.k-heritage.tv/brd/board/276/L/menu/ 259?bbIdx=9355&brdType=R)


회화나무는 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변재邊材는 희고 깨끗하며 심재心材는 다갈색이다. 단단하고도 결이 고와 고급 가구재나 불상 같은 조각재로 쓰인다. 회화나무 씨는 괴황槐黃이라 하여 황색 염료로 사용하여 노란 옷감이 되며 여러 번 반복하면 짙은 노란 옷감이 된다. 또한 씨를 모아서 완상용 가금류의 먹이로도 쓴다. 껍질에 상처를 내고 얻은 수액을 굳혀 괴교槐膠를 만드는데 신경계 질환의 치료제로 쓰이는 귀한 약재이다. 회화나무의 초록색 가지도 잘라 습기로 생기는 여러 가지 증상에 치료제로 쓴다. 회화나무 꽃은 말려 치질, 혈변, 고혈압, 대하증 등을 다스리는데 이용된다.


회화나무는 콩과식물로서 뿌리혹세균을 갖고 있어 유기질이 적은 척박한 땅에서도 스스로 질소를 고정하며 살아갈 수 있다. 새로 조성한 땅이나 성토지에 심을 수 있는 나무로 이만한 나무도 없다. 가축 사료로도 좋고 떨어진 잎은 녹비 효과가 뛰어나다. 이렇게 좋은 나무라면 아무리 많이 심어도 넘치지 않을 것이다. 회화나무의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면서 최근에는 가로수로 널리 심고 있다. 서울 인사동 길이나 강남의 가로수는 대부분 회화나무로 교체되었다. 줄기가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성질이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고 느껴진다. 이렇게 회화나무는 수형, 줄기, 가지, 꽃, 열매 등에서 개성이 뚜렷한 나무인 것 같다.


영주 선비촌 주차장 가로수 회화나무


※사진을 제외한 이 글의 내용 대부분은 오병훈 지음, '서울의 나무, 이야기를 새기다(2014, 을유문화사)'에 실린 글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2018. 4. 22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