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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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식물 사진과 이야기

북한산 진달래능선의 진달래

새샘 2018. 5. 6. 23:11

겨레의 마음속에 피는 진달래꽃

 

 

진달래는 우리 땅 어디에서든 자라지 않는 곳이 없다.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폭넓은 서식지를 갖고 있는 우리의 자생식물이다. 

그래서 한때 나라꽃으로 하자는 운동이 벌어진 때도 있었고, 

한은 지난 1964년 함박꽃나무로 바꾸기 전까지는 나라꽃으로 아낀 나무다.

 

진달래는 확실히 아름다운 나무로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진달래가 많은 땅은 그만큼 땅이 척박한 곳이다. 

강산성 토양에서도 견디는 수종이 바로 진달래과 식물이다. 

다른 수종들은 척박한 땅을 피해 기름진 땅에 뿌리를 내리지만 

달래는 이렇게 안 좋은 땅에서도 오히려 붉은 색채를 더욱 짙게 피워 올리며 한반도의 봄을 장식한다.

 

 

진달래를 지칭하는 이름은 여러가지다. 

꽃달래, 얀달래, 반달래, 수달래 등 모두 '달래' 자가 붙어 있다. 

꽃타령의 노랫말 속에도 진달래가 빠지지 않는다.

 

  "얀달래, 반달래 지 가지 저 가지 노가지나무

   진달래 왜철쭉 맨드라미 봉선화   흔들흔들 초롱꽃 달랑달랑 방울꽃" 

 

진달래는 줄기를 꺾어주면 웃자란 가지가 자라 오히려 더 많은 꽃이 핀다

진달래는 가지 끝에 꽃눈이 밀집해 달린다. 

늙은 나무는 가지가 섬세하고 끝에 한두 송이의 꽃눈이 달리지만 웃자란 가지 끝에서는 10여 송이의 꽃눈이 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가지 꺾인 등산로 주변의 진달래가 훨씬 탐스러운 꽃으로 피는 것이다
정원에 심어진 진달래도 가지를 잘라줄 필요가 있다. 

웃자란 가지가 우뚝하면 봄철에 보다 탐스러운 짙은 색 꽃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에는 봄나들이 때 진달래 핀 동산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는 광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송간세로松間細路에 두견화를 부치 들고 

            봉두峰頭에 급피 올라 구름 소긔 안자보니 

            천촌만락千村萬落이 곳곳에 벌버러 있네··········.

 

가사에서 보면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으며 진달래꽃을 꺾어 부채 대신 멋스럽게 들고 정상을 향해 급히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사 속 사람은 드디어 정상에 도착한다. 

산 아래로는 하얀 안개구름이 걸려 있어 구름 위에 앉은 것처럼 포근하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고을의 수많은 집들이 머리를 맞대고 널려 있다

한 폭의 산수 인물도를 보는 것 같다. 

이 가사의 작가는 계곡에서 화전을 안주 삼아 향기로운 술을 한두 잔 걸쳤을 터.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삼월 삼짇날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쳐 먹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둥근 떡을 만들고 기름에 지져 먹는 것을 화전花이라 한다." 

 

이와 유사한 기록을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誌>에서도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음력 3월3일을 전후하여 여인들이 마음에 맞는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또는 이웃끼리 가까운 산을 찾았다. 

 

계곡에 솥뚜껑을 걸고 나뭇가지를 지펴 불을 붙인 다음 따 온 진달래꽃을 찹쌀 반죽에 섞어 전을 붙이거나 찹쌀 반죽 위에 꽃잎을 얹어 지져 냈다. 

 

남자들이 솥이며 그릇들을 지게에서 날라 취사 준비를 마쳐 주고 산을 내려가면 여인들의 오붓한 시간이 시작된다. 

 

서로 시를 지어 노래하면 대구에 따라 사른 사람이 시를 짓기도 했는데 이런 놀이를 화전놀이라 했다. 

엄한 법도 속에 살아야 하는 양반댁 부녀자에게도 진달래가 피는 봄이면 이처럼 해방의 날이 주어졌다. 

 

부녀자들이 화전놀이를 하며 사설조의 꽃노래를 지어 부른 것이 바로 <화전가花煎歌>이다.

 

     "화간에 벌려 앉아 서로 보며 이른 말이

      여자의 소견인들 좋은 경을 모를쏘냐

      규중에 썩인 간장 오늘에야 쾌한지고

      흉금이 상연하고 심신이 호탕하여·········"


이 화전가는 진달래꽃 사이에 둘어앉아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니 아무리 여자라고 좋은 경치를 모를 리야 있겠느냐며 그동안 시집살이로 썩은 오장이 다 시원하다고 넋두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어 꽃을 감상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해 기막힌 요리를 만들어 냈다.
 

     "화전을 지져 놓고 화간에 재종숙질

      웃으며 불렀으되 어서 오소 어서 오소

      집에 앉아 수륙진미 보기는 하려니와

      우리 일실 동탄하기 이에서 더할쏘냐

      송하에 늘어앉아 꽃가지로 찍어 올려

      춘미를 쾌히 보고"

 

소나무 아래 둘러앉아 꽃가지로 찍어 올려 먹는 진달래 꽃전.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빛깔도 고왔을 것이다. 

 

화전놀이는 혀끝으로 직접 봄을 느끼는 놀이로 우리 겨레가 빚어낸 먹거리 문화요 민속이다. 

진달래로 국수까지 빚어 먹었던 우리 선조들은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멋까지 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는 진달래로 국수를 뽑아 먹는 과정이 소개돼 있어 눈길을 끈다.

 

     "오미자를 우려낸 붉은 국물에 녹두 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것을 잘게 썰어 넣는다. 

      거기다 꿀을 타고 잣과 진달래 꽃잎을 띄운 것을 화면花麪이라 한다. 

      혹은 진달래꽃을 녹두 가루와 반죽하여 국수를 만들기도 한다

      또 녹두로 국수를 만들어 붉은색으로 물들이기도 하는데 꿀물에 띄운 것을 수면水麪이라 한다. 

      시절 음식으로서 제사에 쓴다."

 

 

진달래꽃으로 조리한 요리가운데 화면만큼 맛과 운치가 있는 것도 흔치 않을 것이다. 

조선 영조때 빙허각 이씨가 지은 <규합총서>에 따르면 

"진달래꽃에서 꽃술을 따 내고 물에 적셔 녹말 가루를 골고루 묻혀서 삶아 낸다

이것을 오미자 국물에 넣고 잣을 띄워 먹는다"고 적고 있다. 

진달래꽃 튀김을 붉은 오미자 국물에 띄어 맛과 멋을 동시에 즐겼던 것.

 

 

조선시대 영남지방의 부녀자들이 널리 불렀던 <영남대가내방가사>의 <화전편>에는 

"꽃술일랑 고이 두고 꽃잎만 따서 지져 먹고, 배부르면 진달래 꽃술로 꽃싸움하자"고 노래하였다. 

이때 꽃싸움은 꽃술을 걸어 서로 잡아 당겨 꽃밥이 떨어지는 쪽이 지게 된다. 

편을 갈라서 하게 되는데 마지막까지 남은 쪽이 승자가 된다. 

이긴 쪽에서는 춤을 추고 진 쪽은 벌로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진달래꽃이 필 무렵이면 절을 찾아가 탑돌이를 하는 풍습도 있었다. 

이때 성벽을 걷거나 다리를 밟으며 탑 주위를 도는 것은 무병장수를 위한 기원의 뜻이 담겨 있다. 

탐스럽게 핀 진달래 가지를 꺾어 꽃방망이처럼 만들어서 

앞서 가는 사람들을 때리면서 놀기도 했는데 이 꽃다발을 '여의화장如意花杖'이라 했다

 

진달래꽃으로 선비의 머리를 치면 과거에 급제하고 기생의 등을 치면 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고 믿었다. 

 

경상도에서는 진달래 나무숲에 꽃귀신이 산다고 하여 봄철 진달래가 필 때는 어린이들을 산에 가지 못하게 말리기도 했다. 

 

또 얼굴이 뽀얀 문둥이가 진달래꽃을 먹고사는데 어린이들이 다가와 꽃을 따면 잡아서 간을 내어 먹는다고도 했다. 

아마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위험한 산에 함부로 가지 못하도록 이런 이야기를 꾸며 낸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전라도 지방에서는 진달래꽃이 피면 이름없는 무덤에도 꽃다발이 놓인다. 

시집을 못 가고 죽은 처녀 무덤에는 총각들이, 총각 무덤에는 처녀들이 진달래꽃을 꽂아 준다. 

이렇게 하여 처녀 총각 귀신을 달래지 않으면 원혼이 나타나 혼사를 망쳐 놓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진달래 뿌리를 삶은 물에 베를 물들이면 파르스름한 잿빛으로 염색이 된다. 

스님들의 정갈한 승복은 진달래 뿌리로 물들인 것을 으뜸으로 쳤다. 

이러한 전통 염료 기법이 어느 깊은 산의 암자에나 남아 있을까 지금은 여간해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진달래꽃은 화전이나 옷감의 염료로 썼을 뿐만 아니라 술을 담가 먹기도 했다. 

특히나 진달래꽃으로 빚은 두견주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술이다

 

진달래꽃을 따다 꽃술을 따내고 독에 담아 찹쌀 고두밥과 누룩을 버무려 그 위에 켜켜이 넣는다. 

100일쯤 지나면 향기가 물씬 풍기는 두견주가 된다. 

이중에서 당진 면천의 두견주가 가장 유명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중양절에 국화와 함께 진달래 뿌리로 술을 담가 

진달래 피는 3월 삼짇날 마시는 술을 두견주로 부르기도 했다

 

봄에 진달래꽃을 소주에 담가 두면 붉은 꽃물이 우러나와 맛과 빛이 우아하다. 

한 컵을 불쑥 마시면 심한 현기증이 일어나면서 혼미에 빠진다. 

반드시 1개월 이상 숙성시킨 뒤 마셔야 한다.

 

진달래꽃은 약재로도 쓰였다. 

꽃을 말려서 가루로 만든 것을 꿀에 개어 환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것을 하루 서너 알씩 먹으면 오래된 기관지염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기관지염, 고혈압, 기침에 좋고 혈압을 내려 주며, 신경통, 류머티즘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 널리 자생하는 진달래와 철쭉류는 원종만으로도 빼어난 관상 가치가 있다

진달래, 철쭉, 산철쭉, 참꽃나무 같은 것들은 

지금 당장 정원에 재배한다고 해도 다른 어떤 원예식물에 뒤지지 않는다

 

더구나 가을에 빨갛게 물드는 잎은 지극히 아름답다

가지가 치밀하게 붙기 때문에 정원의 산울타리로도 쓸 수 있다.

 

북한산 진달래능선에는 봄이면 진달래가 고운 자태로 피어 봄을 알린다. 

우리나라의 봄은 진달래, 개나리가 피어 비로소 꽃 대궐을 이룬다. 

진달래는 가장 한국적인 꽃이며 때로는 먹을거리이고 민속문화를 꽃피운 관상식물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꽃인데도 정원에 심은 것은 별로 볼 수가 없다. 

개량하지 않은 자생종으로 진달래만큼 화려한 꽃나무는 흔하지 않다. 

 

우리 겨레의 심성에 가장 깊이 자리하고 있는 진달래이지만 정원에 뜰어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 겨레는 산과 들에서 자라는 꽃과 나무를 

집 안에 끌어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진달래도 고운 꽃 빛릉 가진 나무이지만 전통 조경에서조차 널리 심지 않은 듯하다. 

대신 영산홍이며 명자나무, 골담초, 앵두나무 같은 외래종 화목류는 집안에서 환영을 받았다.

 

북한산 진달래능선을 비롯한 전국 방방곡곡의 진달래 군락이 

언제까지나 꽃을 피우고 이 땅의 자연을 풍요롭게 하기를 기대해 본다. 

 

진달래는 우리 꽃이고, 먹는 꽃이며 겨레의 심성에 자리한 관상식물이다. 

 

진달래가 핀 꽃길이라면 어디든지 걷고 싶다.

 

 

※이 글의 사진은 새샘이 2014년 4월 북한산 진달래능선을 산행하면서 찍은 것이고, 사진을 제외한 이 글의 내용 대부분은 오병훈 지음, '서울의 나무, 이야기를 새기다(2014, 을유문화사)'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내용에 맞도록 바꾼 것이다.

 

2018. 5. 6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