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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오주석의 "전 이재 초상과 이채 조상" 해설

새샘 2019. 12. 12. 21:24

<인류 회화를 통틀어 최정상급 초상화>

작가 미상, 전傳 이재 초상, 비단에 채색, 97.9x56.4cm, 국립중앙박물관

 

위 그림은 조선 숙종 때의 대학자 이재李縡라는 분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다시피 화면에는 아무런 글씨가 없다.

그래서 교과서에서는 이재라고 하지만 필자는 의심하고 있다.

이재가 틀림없다는 어떤 증거도 화면상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단원 김홍도 <송하맹호도>의 호랑이 그림이 전 세계 최고의 작품이라고 단언했듯이, 이 초상화 역시 인류 회화를 통틀어 최정상급 초상화임에 틀림없다.

 

렘브란트가 최고의 초상 작가라는 것은 서양 사람들의 생각일 뿐, 실제로 그의 초상이 이 그림보다 낫다고 볼 근거는 전혀 없다.

렘브란트는 4000억원씩 하는데 우리나라 옛 그림은 최근 7억 원에 경매된 것이 가장 비싼 값이다.

렘브란트 작품이 우리 옛 그림보다 예술성이 400배나 더 높아서 그럴까?

 

문화재의 값이라는 게 어떻게 매겨질까?

그 문화재를 만들어 낸 사람들의 후손이 얼마나 잘 사는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자기 문화를 사랑하는가에 의해서 결정된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망한 다음 일본 문화재가 미국과 유럽 등지로 헐값에 마구 팔려 나갔다가 1960~1970년대에 잘살게 되니까 다시 모조리 그것을 되사왔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서양 미술품까지 대량으로 사들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은 한 점에 몇 억원씩이나 하는 병풍 그림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엿장수가 수레 위에 지고 다니면서 팔았던 적도 있다.

예술 수준으로만 봤을 때 이 초상화는 분명 최정상의 예술품으로 렘브란트에 한 치도 밀리지 않는다.

 

맨 위 그림 전 이재 초상의 상반신 세부

 

반듯이 앉은 주인공 인물에 아주 엄숙하고 단정한 기운이 배어 있는 위 상반신 세부 그림을 보라!

형형한 눈빛의 얼굴을 중심으로 검정빛 복건이 이렇게 삼각형으로 정돈되어 위와 좌우 세 방향에서 얼굴이 돋보이도록 딱 받쳐 준다.

단정하고도 편안한 인물의 기운이 화폭 전체에 흐르는데소매 끝에 두른 검정빛 선이 멀리서 메아리친다.

 

전체 구도는 삼각형으로 안정되어 있어서 차분한 선비의 기운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좀 더 가까이 들어가서 보면 이렇다.

눈빛이 정말 형형하다. 영혼이 비쳐 보이는 듯하다.

 

필자가 전시장에서 이 그림 실물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전시장을 아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 걸작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작품 앞에 섰다.

벌써 세 시간 넘게 여러 그림을 돌아보느라 몸이 퍽 고단해져서 한 발에 체중을 싣고서 삐딱하게 선 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분의 눈을 계속 주시하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두 발이 붙으면서 똑바로 서게 되었다!

잠시 후에는 또 두 손이 아랫배 쪽에 단정하게 모아졌다!

 

그리고 여기 세부의 선을 꼼꼼히 살펴보라.

옛 그림은 형태는 물론 각각의 선의 성질을 음미해야 참맛을 볼 수 있다.

복건이 꺾어진 선은 마치 생철을 접은 듯이 굳세고, 아래 드리운 천이 접혀서 생긴 선은 굵었다 가늘었다 하며, 휙 하고 속도 있게 펼쳐진 기세가 참으로 활달하고 탄력 넘친다.

 

또 옷 전체의 윤곽선과 주름의 선을 보라.

획 하나하나가 긴장돼서 고르게 흐르는데, 굵기의 변화가 없는 아주 점잖은 선으로 마치 철사인 양 굳세게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사실화이면서도 추상화인 셈이다.

 

맨 위 그림 전 이재 초상의 얼굴 세부1

 

위 얼굴 세부1 그림처럼 더욱 접근해 가까이서 보면, 노인 피부의 메마른 질감이 분명히 느껴진다.

그리고 이 수염의 묘사가 정말 놀랍다.

내려오면서 이리저리 꺾어지는가 하면 굵고 가는 낱낱의 수염이 비틀리면서 굵었다 가늘었다 한다.

 

이런 표현, 지금 현대 화가들은 도저히 흉내도 못 낸다.

필자가 서울대 미대 석사 과정을 마친 한 화가가 이런 초상화를 옆에 놓고 옮겨 그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얼굴 데생은 그럴 듯했지만, 물기 없는 수염을 턱에서부터 끝까지 10여 센티를 끌고 가지를 못했다.

자꾸 끊어져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물을 좀 묻히면 이번에는 또, 꼭 비 맞은 수염 꼴이 되어 버리고 만다.

 

더구나 이 수염들은 그냥 붙어 있는 게 아니라 피부를 뚫고 나왔다!

요즘 화가들, 정말 면도한 얼굴만 그리게 된 것이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맨 위 그림 전 이재 초상 의 얼굴 세부2

 

위 얼굴 세부2 그림에서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속눈썹이며 눈시울이며 동공의 홍채까지, 서양화에서도 보기 어려운 극사실 묘사다.

언뜻 서양화가 굉장히 사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세부는 우리 옛 그림이 더욱 사실적이다.

그런데 서양화에서는 빛이 한편에서 들어오면 반대편이 그늘지고 그런 현상적인 입체감이 있지만, 우리 그림에서는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사물의 튀어나오고 오목하게 패인 부분에 따라 음영을 넣는다.

외부 광선에 영향 받지 않는 절대 형태를 그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지만 그건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우선 바늘같이 가는 선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서 그린 노인의 피부 질감을 유념해 보라

 

맨 위 그림 전 이재 초상의 술띠 세부

 

 그리고 위 술띠 세부 그림을 보라.

띠를 맨 매듭이 풀리지 말라고, 다시 가는 오방색五方色 술띠를 묶어 드리웠는데 그 섬유 한 올 한 올까지 일일이 다 그렸다.

거의 죽기 살기로 그린 것이다!

 

왜 이렇게 극사실로 정성을 다해 그렸는가?

조선은 성리학 국가였기 때문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즉 임금과 스승과 부모가 하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부父를 부모로 해석하는 것은 한문을 약간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면 당연하게 생각한다.

글자 수를 맞추다 보니, 그렇게 쓴 것일 뿐 어머니를 제외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옛 그림에는 여성의 초상화가 드물까?

단원 김홍도의 <씨름>을 볼 때 구경꾼 가운데 여자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처럼, 조선엔 내외하는 법도가 있어서 여성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던 것이지,

어머니를 낮게 보아 특별히 제외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왕비라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설사 그려 놓았다고 해도 또 누구에게 보여 줄 수 있었겠는가?

아무튼 이것은 그 시대의 한계다.

 

어쨌든 군사부일체의 정신 풍토에서 조상들이 초상화에 들인 정성이라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가능한 최고의 재료에 최고의 화가들 모셔다 지극 정성으로 초상화 만드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맨 위 그림 전 이재 초상 의 몸통 세부

 

그리고 바로 위 몸통 세부 그림에서 아래 부분만 따로 보더라도 참 기가 막힌다.

이렇게 옷의 윤곽선과 주름 선이 점잖게 흐르는데 부드럽게 반복되면서 음악의 멜로디처럼 운율적으로 흐른다.

또 슬그머니 점점 내려오면서 선이 굵어진다.

그래서 몸 부분의 필선 자체가 선비의 침착하고 온화한 기운을 드러내는 기품이 엿보인다.

 

이 선묘線描 자체는 역시 하나의 추상화라 할 만하다.

이런 음악적 운율미며, 거의 추상에까지 이른 선묘의 아름다움, 이것은 오랜 문화 속에서 잉태된 것으로 역시 현대의 추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느 유명한 대기업 회장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엔 그저 형태만 있을 뿐, 이런 선묘 자체의 아름다움이 전혀 없었다.

 

우리 옛 그림에는 왜 추상화라는 것이 없을까? 추상화가 정말 없을까?

기 막힌 추상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서예다.

천변만변하는 선의 움직임을 따라 글 쓰는 사람의 순간순간의 감정이 배어 있고, 또 인격의 기운을 드러내는 서예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서예의 움직임을 그대로 응용한 이런 그림 속의 경이로운 필선들이 있다.

 

덧붙여 한 가지 드릴 당부 말씀은, 그림을 가까이서 감상할 적에는 작품 앞에서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옛 분들처럼 한겨울에도 부채를 휴대했다가 입가를 가리고 본다면야 상관이 없지만, 남의 집에서 초상화 같은 소중한 유물을 보면서 말을 하다가는 자칫 얼굴에 침을 튀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는 작은 에티켓의 하나다.

 

 

작가 미상, 이채 초상, 1802년, 비단에 채색, 99.2x58cm, 보물 제1483호, 국립중앙박물관

 

바로 위 그림 <이채 초상>지금까지 보았던 <전 이재 초상>과 너무 닮았다.

얼굴이 너무나 닮았다. 머리에 쓴 관만 다를 뿐이다.

이 분은 이채李采라고 분명하게 적혀 있는데, 아까 본 이재의 손자라고 알려져 있다.

 

바로 위 그림 이채 초상의 화찬畵讚 세부

 

그리고 <전 이재 초상>에는 글씨가 없었는데 여기 <이채 초상>에는 위 그림의 글을 포함하여 찬문贊文이 셋이나 있다.

초상의 주인공이 직접 지은 글인 그림 오른쪽의 전서체 찬문을 읽어보자.

 

"저기 정자관程子冠을 쓰고 몸에는 주자朱子께서 말씀하신 심의深衣[유학자가 입었던 겉옷]를 입고 우뚝하니 똑바로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눈썹은 짙고 수염은 희며 귀는 높고 눈빛은 형형하니, 그대가 참으로 이계량李季亮(이채의 자字)인가?[대단한 미남인 것처럼 묘사하고 '네가 정말 나냐'하고 묻고 있다.]

그런데, 지난 인생의 자취를 돌아보면 세 고을의 현감을 지냈고 다섯 주州의 목사를 지냈으며,

하는 바 사업은 뭐냐고 물으면 네 분 선생님의 글[공자의 <논어>, 맹자의 <맹자>, 증자의 <대학>, 자사의 <중용>]

여섯 경전[시詩·서書·역易·예禮·약樂·춘추春秋]의 공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혹시 지금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헛된 이름을 도둑질하는 짓은 아닌가?

아! 네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네 할어버지가 읽던 글을 더 읽어라.

그러면 참으로 즐길 바를 어렴풋이 알아 정자程子, 주자朱子의 제자[참된 선비]가 되기에 부끄럽지 않으리라"

 

"피관정자관彼冠程子冠  의문공심의衣文公深衣

억연위좌자嶷然危坐者 유야여唯也歟

미창이수백眉蒼而鬚白 이고이면랑耳高而眠朗

자진시이계량자여子眞是李季亮者歟

고기술칙삼현오주考其述則三縣五州

문기업칙사자육경 問其業則四子六經

무내여기당세無乃歟欺當世 이절허명자여而竊虛名者歟

우차호吁嗟乎 귀이조지향歸爾祖之鄕 독이조지서讀爾祖之書

칙서則庶 기지기소락幾知其所樂 이불괴위정주지도야여而不愧爲程朱之徒也歟"

 

이채의 할아버지 이재가 살았던 곳은 지금의 용인 땅 수지 근처다.

"너, 그리로 돌아가서 네 할아버지가 읽었던 책을 더 읽어야겠다.

그래야 네가 정말, 주자의 제자라고 하기에 부끄러움 없는 참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써 놨는데, 이 글귀의 내용이 재미있어서 이채 문집을 모두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정말 공교롭게도 이 초상화를 제작한 1802년 여름에 다시 산림으로 돌아가서, 10년 가까이 시골에 틀어박혀서 더 공부하고 나온 것이었다.

 

이채 초상의 얼굴 세부

 

그런데 위 얼굴 세부 그림을 잘 살펴보자.

인상이 참 독특하다!

눈빛이 형형하고 이마가 넓고 눈썹은 치켜 올라간 검미劍眉인데, 끝 쪽 숱이 투터워진다.

코는 길고 뾰족한데 콧방울이 단정하다.

또 하관이 빠르고 입술이 도톰하고 작은 대신에 귀가 굉장히 높다.

귀가 높아서 귀티가 있어 보인다.

 

맨 위 그림 이재 초상 의 얼굴 세부1

 

이채 초상 의 얼굴 세부

   

그럼 여기서 <전 이재 초상의 얼굴 세부1>과 <이채 초상의 얼굴 세부>를 다시 한번 비교해 보자.

눈썹, 눈, 코, 입술이 같고 귀가 높다.

심지어 수염 난 자리 모양까지 똑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눈빛이 같다.

이건 같은 사람의 기운 아닌가!

 

그래서 아무래도 두 초상화 주인공이 같은 사람 같다는 의견을 말했더니, 동료 학자들은 통 안 믿어 준다.

일제 때부터 70년 동안이나 할아버지와 손자로 되어 있었는데, 그럴 리가 없다는 거다.

선입관념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

 

이채 초상의 얼굴 검버섯 세부

 

그래서 찬찬히 두 초상화를 더 살펴보았다.여기 왼쪽 귓불 앞에 큰 점이 있는 것이었다(바로 위의 얼굴 검버섯 세부).

<전 이재 초상>도 바로 그 자리에 같은 점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점까지 같다고 설명해 줘도 동료들이 여전히 수긍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엄청나게 답답해진 나는 두 초상화 주인의 동일인 여부를 증명하려고 여러 전문가에게 물어봤다.

우선 조용진 교수에게 물었다.

조용진 교수는 다년간 해부학을 전공한 화가로서 두 눈동자와 코끝 점이 그리는 역삼각형의 모양이 서로 일치하는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동일인 여부를 감정한다.

그렇게 서로 다른 얼굴의 세부 11개를 비교해서, 그 비례가 모두 같을 때는 동일인이 아닐 확률이 11만분의 1로 줄어든다고 한다.
그런데 조 교수의 말이, 그림이라 100퍼센트 장담은 못해도 같은 사람이 거의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그대로 옮겼는데도 주위에서는 믿어 주지 않았다.

두 초상화의 눈빛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같은 사람의 기운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데도 말이다.

참 속상했다!

 

그래서 궁리 끝에 1년쯤 지나, 이번에는 아주대학교 피부과 의사인 이성낙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피부과 의사로서 전 세계를 통틀어 예술 작품에 보이는 얼굴을 연구하는 학자가 다섯 명쯤 있다.

이 교수는 그중 하나이면서 미국에서 의학 잡지도 편집하는 실력파이기도 하다.

그는 그림 속 얼굴을 보고 주인공의 질환을 진단하는 글을 써 왔는데, 이를테면 '지금 작품 속 주인공은 간암이 말기 진행 중이다'하는 식이다.

 

그런데 전문가라는 것이 정말 놀랍다.

두 초상화 속의 인물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그렇게 눈이 빠지게 그림을 속속들이 비교해 봤어도 알 수 없었던 것을, 이 교수가 드디어 명확히 밝혀 낸 것이다.

 

위 얼굴 검버섯 부분 그림에서 왼쪽 눈썹 아래 살색이 좀 진해진 부분이 있다.

이게 필자에게는 통 안 보였는데 피부과 의사 이 교수한테는 보인 것이었다.

바로 노인성 각화증, 쉽게 말해 검버섯이다.

 

왼쪽 눈썹 가에서 나타난 이 검버섯의 징후가 <이채 초상>에서 흐릿하더니, 10여 년 더 늙어 보이는 <전 이재 초상>에서 이렇게 거뭇거뭇 진해졌다.

검버섯은 나이를 먹으면 점점 더 진해지고 딱딱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왼쪽 눈꼬리 아래쪽 4시 방향에 토톰하니 길게 부풀은 부분이 보인다.

이것도 두 초상화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인데, 노인성 지방종이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이로써 <전 이재 초상>은 이재가 아니라 <이채 초상>의 주인공이 10여 년 더 늙은 후에 새로 그린 작품이라는 사실 완전히 밝혀지게 되었다.

 

다시 한번 두 초상화를 비교해 보자.

주름이 좀 다르게 보인다?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피부에 수분이 빠져 점차 꺼칠해지고 따라서 탄력이 줄어 이렇게 중력 방향으로 쳐지는 것이다.

또 수염은 훨씬 희어지고, 하지만 일부 터럭은 아주 길어지면서 전체적으로 성글어졌다.

 

이 교수는 두 초상화에 보이는 주름의 차이도 노화에 따라 변한 모습이라고 해명해 주었다.

그것은 더구나 동료 교수 세 사람과 함께 토론한 결과라고 결론을 낸 과정까지 밝혔다.

 

아직 우리 미술 교과서의 제목은 안 고쳐졌지만, 이렇게 해서 <전 이재 초상>은 이재의 초상이 아니라, 그 손자 이채의 초상화라는 것이 밝혀졌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두 모습인 것이다.

 

이 그림을 감정한 의사가 조선 초상화에 보이는 여러 질환에 대한 논문을 썼다고 해서, 필자가 고마워서 뭔가 도움을 주려고 이 교수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중국 초상화도 명나라 청나라 작품은 기가 막히게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쪽 그림은 왜 논문 자료로 사용하지 않으십니까?"

그랬더니 "그게, 좀 봤는데, 중국 그림은 꽤 사실적이기는 하지만 병명을 진단하기에는 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라는 대답이었다.

 

바로 이 차이!

그러니까 겉보기에는 둘 다 사실적인 듯하지만, 그야말로 병색까지 있는 그대로 묘사된 그림은 바로 조선의 초상화라는 것이다.

 

이런 극사실 초상화에 보이는 회화 정신을 뭐라고 했느냐 하면, 옛 사람들은 그 마음을 일러 '일호불사一毫不似 편시타인便是他人'이라 했다.

'터럭 한 오라기가 달라도 남이다'라는 것이다.

참으로 엄정한 회화 정신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보기 싫은 검버섯이나 부종 같은 환부까지 왜 그토록 정확히 그렸는가?

진선미 가운데 예쁜 모습이 아니라 진실한 모습, 바로 참된 모습을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즉, 외면이 아닌 정신을 그리려고 한 것이다.

 

※이 글은 오주석 지음,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2017, 푸른역사)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2019. 12. 12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