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영국 여왕의 '007 스파이' 본문
존 디 John Dee(1527~1608 또는 1609)란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20세기 중반에 영국 소설가 이언 플레밍 Ian Fleming(1908~1964)이 창조한 스파이 영웅 제임스 본드가 다름 아닌 존 디를 모델로 삼은 캐릭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욱 드물 것이다.
플레밍이 쓴 1953년부터 1966년까지 쓴 14권의 007 소설[영화는 24편 제작]에서 제임스 본드가 '여왕의 스파이'였듯이 존 디 역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스파이였다.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은 에스파냐 무척함대 격퇴와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문화 르네상스 등으로 말미암아 흔히 '번영의 시대'로 묘사되고 한다.
그러나 사실 이 시기 영국은 아직 유럽 대륙의 변방에 위치한 작은 나라에 불과했을 뿐 아니라 안팎으로 큰 어려움에 처한 상태였다.
종교개혁을 시작한 헨리 8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6세와 메리 1세 여왕의 짧은 치세는 극심한 정치적·종교적 혼란을 낳았다.
영국을 가톨릭 국가로 되돌리려는 과정에서 신교도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해 '피의 메리 Bloody Mary'라는 별명을 얻은 메리 1세 사후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의 종교 정체성을 확립하고 정치적 독립을 유지해야 하는 무거운 과업을 짊어지고 있었다.
더욱이 남성보다 열등하므로 남성에게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시대에 등장한 여성 군주, 그것도 역사상 전례가 없는 '미혼' 여성 군주라는 점에서 영국 입지는 더욱 위태로웠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대륙의 정세를 탐색하고 민감한 외교 문제를 처리하는 스파이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외국어에 능통하고 학자로서 유럽에 널리 알려져 있던 존 디는 여왕의 가장 비밀스러운 업무를 맡아 해결하는 스파이로 활동하게 된 것이었다.
연금술사·점성술사·수학자·지리학자인 존 디는 젊은 날 프랑스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을 소개하면서 범유럽의 명성을 얻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와 프랑스의 앙리 2세가 존 디를 자국의 궁정 수학자로 임명하겠다고 앞다퉈 제의할 정도였다.
하지만 존 디는 모두 거절하고 엘리자베스의 총애와 후원을 받으며 국정의 민감한 사안에 조언자로 활동하는가 하면 유럽대륙에 건너가 스파이로서 여왕의 외교 책략에 도움을 줬다.
특히 1553년부터 6년 동안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여러 궁전을 방문했는데, 폴란드 궁전에서는 스파이로 몰려 추방당하기도 했다.
은비학隱秘學[신비神秘학 occultism]에 심취해 있던 엘리자베스는 연금술사이자 점성학자로서 명망이 높던 존 디에게 별자리를 읽어 최상의 즉위일을 잡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존 디의 기획에 따라 여왕 즉위식은 1559년 1월 5일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존 디는 '영제국 British Empire'이란 용어를 최초로 만들어낸 사람이기도 했다.
당시 영국은 스코틀랜드조차도 공식적으로 병합하기 이전이고, 해외에 아무런 식민지도 갖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열렬한 해외 팽창론자였던 존 디는 영국이 '대양의 군주'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자신의 책과 여왕에게 올린 청원서에 '영제국'이라는 말을 썼다.
16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영국의 해외 팽창 정책에는 존 디의 적극적인 노력이 숨어 있었다.
그는 1553년에 출발한 세바스찬 캐보트 Sebastian Cabot(1474~1557)의 북동항로 탐험에 조언자로 활동했는가 하면, 1559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라고 할 수 있는 머스코비 회사 Muscovy Company에도 투자자이자 고문으로 활동했다.
머스코비 회사는 중국으로 가는 최단항로를 찾고자 수차례 탐험대를 파견하는 등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존 디는 이 사업에 깊숙이 개입했으며 직접 항해사들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그는 1576년부터 마틴 프로비셔 Martin Frobisher(1535~1594)의 서북항로 탐험에 공식적인 지리학자로 협력하기도 했다.
1577년부터 시작된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 계획에서도 존 디는 가장 적극적인 주창자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아메리카라는 말보다 아틀란티스 Atlantis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암호명인 007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존 디 사이의 사적인 외교문서에 사용된 독특한 표식이었다.
존 디는 여왕에게 보내는 편지 말미에 '두 눈'을 나타내는 두 개의 원을 그린 다음 7이라는 숫자를 붙였다.
자신은 여왕의 비밀스러운 눈이고, 그 눈은 '성스러운 행운의 숫자'인 7에 의해 보호된다는 의미였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숫자 자체가 고유의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각각의 숫자는 많은 상징과 연결되었으며, 수학은 점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믿음 때문에 숫자점은 흑마술로 분류되곤 했다.
엘리자베스와 존 디는 수학과 신비주의를 결합한 은비학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 연장선에서 비밀교신을 위한 암호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글은 사진을 제외하고는 박상익 지음, <나의 서양사 편력 1>(푸른역사, 2014)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며, 일부 내용은 새샘이 수정·보완하였다.
2020. 5. 4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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