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20. 4/14 신안 흑산도-홍도 여행 첫날 첫글: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 흑산도1[흑산도항 여객터미널, 진리 고인돌군, 흑산성당, 진리당, 상라산 전망대,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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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14 신안 흑산도-홍도 여행 첫날 첫글: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 흑산도1[흑산도항 여객터미널, 진리 고인돌군, 흑산성당, 진리당, 상라산 전망대,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새샘 2020. 5. 10.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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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뉴엔젤호)-흑산도-4/15 흑산도-(뉴돌핀호)-홍도-4/16 홍도-(파라다이스호)-목포

 

4/14 여행로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뉴엔젤호)-흑산도항 여객터미널-진리 고인돌군-흑산 성당-진리당-배낭기미 해변-무심사터-열두굽이길[12굽이 도로]-상라산 전망대(상라정)-흑산도노래비-지도바위 조망점-장도 조망점-문암산 조망점-비리-심리-사리전망대[칠형제바위]-구문여[구멍바위] 조망점-흑산도항여객선터미널 주변

 

행정구역으로 전남 신안군 흑산면의 섬인 흑산도黑山島는 목포에서 남서쪽 해상 92.7km 떨어진 우리나라 최서남단 해역에 있는 섬으로  대흑산도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흑산도에서 남서쪽 해상 70km 지점의 작은 섬 가거도可居島소흑산도라 하도 하기 때문.

 

1004개 섬이 있어 1004섬[천사섬]으로 부르는 신안군[신안섬]은 전남 무안군 해제반도 서쪽 끝의 신안군 지도읍만 육지와 연결된 반도일 뿐 나머지는 모두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전국에서 섬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흑산면에 속한 섬을 모두 흑산군도라고 부르며, 흑산도를 비롯하여 영산도, 대둔도,  다물도, 장도, 홍도 등 100여 개의 섬 모두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다.

2020년 5월 현재 흑산도 세대수는 약 1,400세대, 상주인구는 약 2,400명이며, 남자가 여자보다 약 250명 더 많다.

 

흑산도란 이름이 붙은 것은 섬 전체가 늘푸른나무로 덮혀 있어 멀리서 보면 항상 검게 보이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이렇게 검게 보여 흑산도란 이름이 붙었다. 사진 출처-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52XXXX126301>

 

흑산도는 서남해안 어업의 전진기지, 인근 도서 중에세 가장 커서 중심이 되는 어미섬, 서남단해역의 태풍 피항지, 홍도 관광 기항지로서의 역할을 하는 등 주변 해상교통의 요지이자 행정, 교육, 산업 등 모든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홍어는 흑산홍어로 대표될만큼 흑산도가 주산지이며, 감성돔, 돌돔, 농어, 우럭 등 바다낚시의 천국으로 강태공들이 많이 찾는 섬이기도 하다.

 

흑산도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발굴 유물로서 확인되었다.

신라와 발해가 있던 남북국시대인 828년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난 뒤 서해에 출몰하는 왜구들을 막기 위한 전초기지로 흑산도에 상라산성[반월성]을 쌓을 정도로 한반도와 중국을 잇는 해상교통로의 거점이었음이 일본 승려 엔닌[원인圓仁]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幸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1123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이 남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사신이 머무는 관사가 흑산도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흑산도는 망망대해의 섬이라서 예부터 유배지로서 서안 사리마을에 유배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을 정도.

고려 후기 문신으로 고려 최씨 무신정권을 종식시키고 고종에게 왕권을 회복시켰던 류경柳璥(1211~1289), 다산의 형 정약전丁若銓(1758~1846), 그리고 조선 말기 유학자 최익현崔益鉉(1834~1907) 등이 대표적인 유배인들이다.

 

흑산도로 가는 국내 유일의 교통수단 쾌속선을 탈 수 있는 목포 연안여객선터미널 전경.

이 터미널은 1980년부터 있던 기존 건물을 허물고 2005년 완공된 건물이다.

여객선터미널 앞 광장에 서 있는 조각작품 '내고향 섬마을 이야기'

 

터미널 매표소

터미널 안에서 배를 타는 부두를 향해 바라본 모습

터미널 창을 통해 바라본 건너편의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

우리가 타고 갈 쾌속선 뉴엔젤호로 오르기 직전

배에 오르면서 뒤돌아본 여객선터미널

배에 올라 창을 통해서 바라본 여객선 터미널

자리를 잡고 앉아 V를 그리는 산타

오후 3시 31분 막 출항하여 선창을 통해 보이는 터미널과 목포 풍광

목포 남서해안의 잔잔한 바다를 쾌속으로 달려 출항한 지 2시간이 채 안된 오후 5시 27분 예리曳里 흑산도항 여객터미널 하선.

예리는 사람과 문물을 끌어들인다하여 '끌 예曳'자를 써서 이름 붙였다고 하며 끌미, 예미 또는 예촌이라고도 한다.

선착장이 있는 예리는 흑산도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고 흥청대는 동적이면서 시끄러운 속세의 장소였다고 한다.

흑산항 터미널을 빠져나오니 예약해 놓은 승합차 기사가 우릴 맞이 해 준다.

모두 4명의 승객이 타고 흑산일주도로를 따라 도는 승합차 여행 시작!

 

맨 먼저 들린 곳은  흑산도에서 가장 크며 흑산면사무소가 있는 중심 마을인 진리에 있는 고인돌군으로서 정식 명칭은 진리 지석묘군支石墓群이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서 고인돌이 발견되는 것은 아주 드문 예라고 한다.

 

진리鎭里란 이름은 흑산도의 중심지로서 모든 마을을 지배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이 섬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 살았다는 읍동邑洞도 진리에 있다.

동적이면서 속세의 장소인 예리와 달리 진리는 관청과 종교 관련 건물이 많아 정적이면서 고요하며 성스러운 곳.

 

진리 지석묘군에는 바둑판식(기반식, 남방식) 고인돌[땅속에 돌로 무덤방을 만든 후 작은 받침돌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고인돌]  7개가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길이 2.25m, 너비 1.57m.

 

아래 사진에서는 고인돌이 6개만 보이는데, 주변 울타리가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입구 가까이에서 찍었기 때문이다.

맨 오른쪽 고인돌 1개가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흑산성당 진입로 입구에 서 있는 흑산성당을 소개하는 표지석과 표지판

1958년 목포 본당에서 파견된 브라질 Brazil[한국이름 '진'] 신부가 지은 신안 흑산성당은 우리나라 서남해 최남단에 자리한 천주교 성당으로서 천주교가 전파되어 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고, 이곳 흑산도의 선교 외에도 교육, 의료 등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종교적 및 지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섬에서 구한 몽돌을 건축 재료로 활용하였고, 독특한 모양의 돌로 만든 종탑이 건축사적으로 인정을 받아 작년 2019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제759호로 지정되었다.

 

흑산성당 사무실

흑산성당 앞바다

 

한국인 최초 사제 김대건(1821~1845) 안드레아 신부 상

 

흑산 진리당鎭里堂은 진리에 위치한 신당神堂이며, 흑산도 15개 당집의 본당本堂으로서 마을 번영과 풍어를 기원하는 가장 큰 규모의 용왕굿을 지낸다.

진리당에 모신 당신은 소저아기씨(당각시), 상궁부인, 제석님, 산중처사님, 도령(총각화장), 당할머니, 성주신 등  모두 일곱이며, 진리당 남쪽 숲을 당숲 또는 신들의 정원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상上당인 진리당에서 150m 떨어진 바닷가 해안절벽에는 하下당인 용왕을 모신 용왕당龍王堂이 있다.

 

진리당 주변을 감싸고 있는 큰 소나무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진리당

 

진리당을 지나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배낭기미 해변을 지난다.

해안누비길 흑산일주도로에서 바라본 배낭기미 해수욕장

해안누비길 흑산일주도로에서 바라본 맞은 편의 흑산도항 여객터미널이 있는 예리曳里 마을

상라산 전망대 오르는 흑산도 일주도로 진입로 부근의 진리2구 마을

차를 타고 가면서 지나치는 흑산도 진리의 무심사터[무심사지无心寺址]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무심사 절터로 알려졌다.

무심사터에는 지금 삼층석탑과 석등이 서 있으며 건물지 내부에서 '무심사선원无心寺禪院'이라 새겨진 명문기와를 비롯해 청자상감향로, 청자접시 등의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쓰던 유물들이 2015년 출토되었다.

 

무심사터 뒤쪽 상라산 중턱에 반월성 즉 상라산성과 산성터가 있다.

 

흑산도 일주도로를 지나는 차 안에서는 팽나무 아래 무심사지 석등만 보일 뿐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무심사터 삼층석탑과 석등(출처-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31,01930000,36&pageNo=1_1_1_1#)

 

상라산 전망대로 오르는 흑산도 일주도로 열두굽이길 입구와  길 주변 언덕의 동백나무숲

열두굽이길(12굽이 도로) 거의 다 올라와 내려다 본 열두굽이길과 주변에 핀 벚꽃, 그리고 진리와 예리 앞 해변 모습

드디어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인  상라산 전망대 도착!

이곳 전망대까지는 차로 오지 않고 아래에 있는 흑산도아가씨 노래비에서 걸어올라와야 되는데 특별히(?) 우리 일행을 이곳까지 모셔 왔다는 가이드 겸 운전기사 말에 모두가 박수로 화답!

 

상라정 정자 옆이 상라산 전망대다.

 

상라산 전망대와 전망대에서 바라본 내영산도와 외영산도 방파제 안쪽의 진리와 예리 해변, 그리고 방파제 서쪽은 흑산도 북쪽 바다의 흑산군도

상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진리와 예리 앞 해변

상라산 전망대에서 정북쪽 바다와 흑산군도.

오른쪽 해변에 가장 가까운 섬은 내영산도와 외영산도이며 외영산도 방파제 안쪽이 진리 해변이다. 

상라산 전망대에서 정북쪽 바다와 흑산군도.

상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이곳으로 오르는 열두굽이길과 그 뒤에 보이는 진리2구 해변

상라산 전망대에서 열두굽이길을 배경으로 산타와 새샘의 인증샷

 

상라산 전망대 바로 아래쪽인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있는 곳으로 내려온다.

노래비 전망대 위성 사진(출처 - 네이버 지도 https://map.naver.com/v5/search/%ED%9D%91%EC%82%B0%EB%8F%84%20%EB%AC%B4%EC%8B%AC%EC%82%AC%EC%A7%80?c=13961251.8801730,4122144.4316699,16,0,0,2,dha&p=h28ST3GB6-z4Cnxew1LKDw,-26.71,2.58,80,Float)

왼쪽으로 보이는 길이 상라산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이고, 봉우리 앞의 넓다란 주차장 오른쪽으로 가면 흑산도 일주도로로서 흑산도 서해안으로 넘어가게 된다.

봉우리 위에 보이는 송전탑은 상라봉 전망대 옆 상라정 뒤로 보이던 탑. 

상라산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 왼쪽 입구에 서 있는 흑산도아가씨 노래비는 1966년 가수 이미자가 불러 대히트를 기록했던 트롯 '흑산도 아가씨'가 신안군을 상징한다고 하여 1997년에 상라봉 앞에 세운 콘크리트비다.

노래비 오른쪽엔 2012년 이미자가 흑산항에서 콘서트를 하면서 만든 기념 손찍기[핸드 프린팅 hand printing]가 있다. 

노래비 앞에 서 있는 이정표에는 우리가 올라왔던 열두굽이길이 왼쪽이고, 앞쪽은 방금 이리로 내려왔던 상라산 전망대 오르는 길이며, 오른쪽은 흑산일주도로가 계속되는 길로서 고개 넘어 흑산도 서해안으로 가는 길이다.

흑산도아가씨 노래비와 열두굽이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봉우리에 통일신라시대에 쌓았다고 하는 상라산성(반월산성)이 있다.

상라봉은 이 봉우리 왼쪽 뒤로 보인다.

상라산성으로 오르는 길 입구에는 '상라호'라는 이름의 돌로 만든 배 조형물이 있고, 배 조형물 왼쪽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상라산성 봉우리 왼쪽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상라산(230m)이며, 상라산성 봉우리 앞이 전망대다.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흑산도 서해안 바다와 태양

전망대에서 바라본 흑산도 북서해안의 섬들 - 왼쪽부터 소장도, 쥐머리섬, 내망덕도-

18시 06분 흑산도 서해안에 떠 있는 해는 점점 수평선에 가까워 지고 있다.

2020. 5. 10 산타,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