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머리 위에는 별, 마음속에는 도덕", 철학자 칸트 본문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1724~1804)는 "머리 위에는 빛나는 하늘, 마음속에는 도덕법칙"을 말하며 도덕적 의무를 강조했다.
그는 도덕성이 아닌 교리나 의식을 기준으로 삼는 종교는 사라지고 만다고 주장했다.
칸트와 그 뒤를 이은 피히테·셸링·헤겔·쇼펜하우어 등이 독일 관념철학을 꽃피우던 시기, 독일 작가 장 파울 리히터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신은 프랑스에는 육지를, 영국에는 바다를, 독일에는 하늘air의 제국을 줬다."
독일 쾨니히스베르크 Königsberg에서 태어난 임마누엘 칸트의 생애는 지극히 규칙적이었다.
기상, 차 마시기, 집필, 강의, 식사, 산보 등 모든 일에 정한 시간이 있었고 정해진 시간에 행했다.
칸트가 회색 코트를 입고 등나무 지팡이를 들고 집문 앞에 나타나 지금도 '철학자의 길'로 불리는 보리수나무가 있는 작은 길을 걸어가면 이웃 사람들은 정확히 3시 30분임을 알았다.
사계절을 통해 그는 매일 여덟 번씩 이 길을 왕복했고, 날씨가 궂을 때면 늙은 하인 람페가 큰 우산을 끼고 그 옆을 근심스레 따랐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지라 의사들은 그가 40세를 넘기면 기적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규칙적인 생활과 엄격한 섭생법[병에 걸리 않도록 건강 관리를 잘하여 오래 살기를 꾀하는 방법] 덕분에 정확히 40의 2배가 되는 80세까지 살 수 있었다.
칸트는 1755년부터 15년간이나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강사로 근근이 생활하다 45세가 되어서야 겨우 이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그는 일생 쾨니히스베르크를 한 번도 떠난 일이 없었다.
바다를 구경해 봤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럼에도 그는 독일에서 자연지리학을 강의한 최초의 교수였다.
저술가보다는 교사로서 더욱 훌륭했던 그는 60년에 걸쳐 학생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교육원칙 중 하나는 중간쯤의 재능을 가진 학생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는 바보는 도와줄 길이 없고, 천재는 자기 힘으로 해내간다고 말했다.
거의 15년 동안 가난과 무명을 견딘 끝네 걸작 ≪순수이성비판≫을 끝냈을 때 그의 나이는 57세였다.
경건한 청교도 부모 밑에서 태어나 볼테르와 계몽주의 시대에 성장한 칸트의 사명은 종교를 이성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이었다.
우리 내면에는 거짓말이 내게 이익이 되더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적 의식[양심]이 있으며, 이 도덕 법칙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을 생각하지 말고 오직 '도덕적 의무'을 행해야만 한다.
교회와 교리는 오직 인류의 도덕적 발전에 도움이 될 때만 가치가 있다.
종교의 시금석으로서 신조나 의식이 도덕성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게 될 경우 종교는 사라지고 만다.
현세의 삶은 권선징악 드라마에서 보듯이 악한은 반드시 처벌되고 덕행은 반드시 보상을 받는 것이 결코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는 비둘기의 온유함보다는 뱀의 사악한 지혜가 더 잘 통하고, 도둑이 죽는 날까지 안락하게 잘 사는 것도 우리는 매일 매일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악인 중의 으뜸이라 할 도척盜跖[춘추전국시대의 전설적인 중국 도둑]의 행복과 선인 중의 선인이라 할 백이숙제伯夷叔齊[상나라 말기 끝까지 군주에 대한 충성을 지킨 의인 형제]의 불운을 비교하며 "하늘에 천도天道가 있느냐'고 했던 역사가 사마천의 한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만일 현세가 삶의 전부라면 지나치게 착하게 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험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죄의 유혹에 직면해서 그것이 옳지 않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유혹에 굴복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이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침에는 훌륭한 결심을 하고 저녁에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어리석은 짓임을 알고 다시금 결의를 새롭게 한다.
양심의 가책과 더불어 새로운 결의가 일어난다.
"그대의 행위의 격률格率[행위의 규범이나 윤리의 원칙]이 그대의 의지에 의해 보편적 자연법칙이 되도록 행위하라."
이것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정언적定言的 명령 categorical imperative 즉 무조건 복종이 요구되는양심에 따른 도덕적 명령이다.
나는 거짓말을 해서 곤경에서 벗어나려고 하는가?
그러나 나는 거짓말을 하려고 할 수는 있으나 결코 거짓말하는 것이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런 법칙이 있다면 약속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따라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나의 이익이 되더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적 의식이 있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의 도덕 법칙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다.
어떤 행위가 선한 것은 그 행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 아니라 내면의 의무에 따랐기 때문이다.
"그대의 행복을 생각하지 말고 그대의 의무를 행하라."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비판≫의 중심 내용이다.
칸트는 인간이 불사의 존재임을 느꼈다.
만일 우리가 마음속으로 현세의 삶은 새로운 탄생의 서곡에 불과하며 내세의 삶에서는 균형이 회복되어 아낌없이 베푼 물 한 잔이 백 배로 돌아온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알지 못한다면, 불리한 선이라도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의감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내세와 신의 존재를 '요청 postulate[공리公理로 간주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칸트는 '마음속의 도덕법칙'을 강조했다.
하지만 칸트와 달리, 오늘날 한국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물질적 성공'을 찬양한다.
의무보다 행복을 앞세운다.
둘 가운데 과연 어느 쪽이 '진짜'일까?
※이 글은 박상익 지음, <나의 서양사 편력 2>(푸른역사, 2014)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20. 7. 2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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