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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재 조영석 "설중방우도" "장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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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재 조영석 "설중방우도" "장기"

새샘 2021. 7. 11. 22:59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1686~1761)의 자는 종보宗甫로, 산수인물로 유명한 선비화가다.

사대부 집안에서 나온 세 사람의 명화가라 해서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더불어 '사인명화삼재士人名畵三齋'라 불렸다.

 

관아재는 ≪관아재고觀我齋稿≫란 문집이 전해져 그의 가계, 인물 됨됨, 교유관계 등이 상세히 알려져 있으며, 이 문집에 실린 <겸재애사謙齋哀辭>는 겸재에 대한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사인명화삼재 중 겸재나 현재는 그림을 평생 그린 사람인데 반해 관아재는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하면서도 여기餘技[취미로 하는 재주나 일]로 할 뿐이지 자랑삼아 하지는 않았다.

이와 관계된 다음 일화가 있다.

관아재가 그의 형 조영복을 그린 초상화를 보고 칭찬을 해온 영조가 세조의 초상화를 중모重模[다시 그리기]에 참여하라는 왕명을 내리지만 문관인 자신이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신의 직분이 아니라고 끝내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당시 재임하고 있던 의령현감에서 파직당하고 말았다.

그후 영조는 숙종의 숙종의 초상화 제작에 직접 화필을 들고 참여하라고 명을 내렸지만 끝내 거절당하고, 초상화 제작을 감독하는 일조차 겨우 맡겼다고 한다.

 

속화(풍속화) 스케치북인 ≪사재첩麝臍帖의 표지에는 "사재 물시인 범자비오자손 勿示人 犯者非吾子孫" 즉 "노루 배꼽. 남에게 보이지 말라, 어기는 자는 내 자손이 아니다"고 써 놓았다고 한다.

'사재'는 사향노루 배꼽이란 뜻으로, 사향노루가 자신의 배꼽 때문에 사냥을 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림 재주로 인해 굴욕을 당한 뒤 후회하는 마음을 화첩 제목에 담고, 표지에 써 놓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자손들이 관아재의 말을 어겼기 때문에 오늘날 그의 그림을 많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관아재 그림의 품격은 삼재 중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관아재는 산수인물로 유명하지만 그의 그림의 특색으로서 오히려 속화(풍속화)를 흔히 들고 있다.

≪사재첩麝臍帖이 그 예로서, 간단한 필치의 스케치로 집안 근처의 외양간, 마구간, 사람들 일하는 것, 점심, 새참 먹는 것 등을 아주 재미있게 그렸다.

스케치북이라 간단하지만 속화의 정신이 남아 있는 그림들이다.

 

 

조영석, 설중방우도, 종이에 담채, 115×57㎝, 개인(사진 출처-출처자료1)

 

관아재의 대표작은 <설중방우도雪中訪友圖>라는 그림이다.

개인 소장품으로 보다시피 그림이 짜임새가 있으면서 아주 참하다.

그림 구도는 명나라 때 그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명나라 초기 그림 중에 이런 그림이 있는데 너무 같아서 그 구도를 배우지 않았나 할 정도다.

그러나 그림 내용은 완전히 한국적인 것으로 등장 인물들이 한국사람이 한국 정취가 물씬 풍긴다.

매우 좋은 그림이기 때문에 관아재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

 

 

조영석, 장기, 종이에 담채, 31.5×43.2㎝, 간송미술관(사진 출처-출처자료1)

 

까치, 두꺼비 같은 그림도 있지만 관아재의 속화 대표작으로 간송미솔관 소장의 <장기>를 들 수 있다.

이것은 남에게 보이지 말라는 ≪사재첩≫에 들어 있지 않은 공개된 관아재의 속화다.

이 그림은 초고라고 할 수 있는 그림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림을 어떻게 그렸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1.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구글 관련 자료

 

2021. 7. 1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