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노화의 종말 19 - 노화 역전과 회춘의 실마리가 되는 중추신경 재생 본문
우리는 늙은 세포를 종양세포로 만들지 않으면서 노화를 역전시키려는 시도를 2년 동안 계속했지만 실패만 거듭했다.
2016년 어느 날 위안청 루 Yuancheong Lu라는 대학원생이 교수실로 오더니 성체 세포를 유도만능줄기세포induced pluripotent stem cell(iPSC)로 만드는 유전자 조합인 네 개의 야마나카 인자들 중 종양세포와 같은 기형종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은 c-Myc 유전자만 뺀 나머지 3개의 유전자 조합–Oct4, Sox2, Klf4–만으로 마지막으로 한번 시도해 보겠다고 했다.
그는 이 3개의 유전자 조합을 지닌 유전자재조합 바이러스를 생쥐에게 집어 넣었다.
그런 뒤 독시사이클린 doxycycline을 써서 그 유전자 조합을 켜서 생쥐들이 앓거나 죽는지 지켜보았다.
그런데 아프거나 죽는 생쥐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모두 멀쩡했다.
몇 달 동안 지켜보았는데 종양도 전혀 생기지 않았다.
우리 모두 놀랐다.
정말로 놀라 자빠질 일이었다.
생쥐가 더 오래 사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시 1년을 기다리는 대신 위안청은 생쥐의 시신경을 검사하는 방법으로 노화 역전과 회춘이 일어났는지 알아보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아주 잘될 것 같지는 않은데.. 시신경은 재생되지 않아. 신생아가 아닌 한 말이지."
몸에서 신경 신호를 전달하는 세포와 섬유로 이루어진 복잡한 연결망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말초신경계와 중추신경계다.
우리는 팔과 다리에 있는 말초신경은 아주 느리게 일어나긴 하지만 재생이 가능하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중추신경계의 신경–시신경과 척수신경 등–은 결코 재생되지 않는다.
중추신경계의 몇몇 측면을 재생할 수 있다는 새로운 요법을 제안함으로써 관습을 타파한 과학자들조차 대개 의미 있는 수준의 재생이 가능하냐는 물음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다.
눈의 녹내장과 척수 손상을 복원하려는 연구는 몇 십 년 동안 이루어져지만 거의 아무런 긍정적인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나는 위안청에게 말했다.
"생물학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를 고른 거야. 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생쥐에게서 노화 역전의 영향을 측정할 방법은 1000가지나 될 수 있는데, 위안청은 최근의 성공에 들뜬 나머지 '모 아니면 도'라는 입장을 취한 셈이다.
나는 마음에 들었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는 법이지. 어디 한 번 해 봐."
몇 달 뒤 메시지를 통해 온 사진을 보고서 나느 '헉!' 하고 말았다.
너무 놀라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다시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즉시 위안청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상상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정말 보고 있는 거지?"
"글쎄요. 뭘 보고 계시는데요?"
"미래!"
위안청은 아주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교수님, 1시간 전만 해도 제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더랬어요."
연구자에게 의심은 결코 악덕이 아니다.
의심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대담하게 자기 자신을 밀어붙였을 때 당연히 생길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태도다.
그러나 바로 그날에는 확실하게 무언가가 이루어진 듯이 보였다.
위안청이 메시지로 보낸 첫 사진은 빛나는 오렌지색 해파리처럼 보였다.
생쥐의 눈에 연결되는 부위가 위쪽에 있고, 그 아래로 뇌를 향해 길게 촉수가 뻗어 있는 모습이었다.
2주 전 위안청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아주 작은 집게로 눈 뒤쪽에서 몇 밀리미터 길이의 시신경을 꽉 눌렀다.
그럼으로써 뇌에 닿아 있는 촉수처럼 보이는 그 뉴런(신경세포) neuron의 수상돌기(가지돌기) dendrite[뉴런의 세포체에서 촉수처럼 뻗어나온 가지로서 신호를 받아들이는 신호 입력 구역]를 거의 다 죽였다.
그런 뒤 살아 있는 신경이라면 흡수할 오렌지색 형광 염료를 눈에 집어 넣었다.
현미경으로 보니 짓누른 부위의 신경은 전혀 빛나지 않았다.
그저 죽은 세포 잔재만 있을 뿐이었다.
다음 사진은 수상돌기를 짓누른 뒤에 재프로그래밍 바이러스를 활성화한 부위를 찍은 것이었다.
죽은 세포들 대신에 건강하고 긴 촉수 즉 수상돌기들이 뇌까지 죽 이어져 있었다.
역사상 가장 놀라운 신경 재생의 사례였다.
그리고 위안청은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었다.
재프로그래밍이 그토록 잘 들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처음에 이 실험을 하기 위해 생후 1개월 된 생쥐를 골랐다.
성공 기회를 최대로 높이기 위해서이자 본래 남들도 다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위안청은 하버드 의대 Harvard Medical School 아동병원의 지강 허 Zhigang He 연구실의 뛰어난 공동 연구자들과 함께 현재 12개월 된 중년 생쥐들의 손상된 시신경을 재프로그래밍으로 복원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그 생쥐들의 시신경도 재생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는 평범한 늙은 생쥐의 시력을 회복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다.
생쥐는 12개월쯤부터 시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하버드 의대 부설 매사추세츠 안이병원 Massachusetts Eye and Ear(MEE)의 브루스 크산더 Bruce Ksander와 메레디스 그레고리-크산더 Meredith Gregory-Ksander는 이 사실을 잘 안다.
망막에서 신경 신호가 사라진 늙은 생쥐는 앞쪽 화면에서 움직이는 선이 나타날 때까지 머리를 움직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브루스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솔직히 말하자면 정상적으로 늙은 눈에서 이 재프로그래밍이 먹힐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냥 교수님이 너무 흥분해서 해 보자고 하기에 해 본 겁니다."
바로 전날 아침에 그는 연구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흥분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우리의 OST(Oct4-Sox2-Klf4) 재프로그래밍 바이러스가 시력을 복원한 것이었다.
몇 주 뒤 메리디스는 이 재프로그래밍이 눈 속 압력 때문에 생기는 시력 상실인 녹내장을 되돌린다는 것도 보여 주었다.
브루스는 내게 말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세요? 지금까지 모두가 어떻게 하면 녹내장의 진행을 늦출 것인지만 연구했어요. 그런데 이 치료는 시력을 회복시켜요!"
성체의 세포, 심지어 늙은 신경세포까지 젊은 후성유전체로 돌아가도록 재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면 젊음의 정보는 결코 사라진다고 할 수 없다.
야마나카 인자들은 전송프로토콜/인터넷프로토콜(TCP/IP)의 세포판에 해당하는 것을 써서 후성유전체를 재설정한다.
이 인자들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성년기 내내 보존되는 교정 데이터의 저장소, 즉 분자 표지의 백업 보관소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 젊음의 표지들이 무엇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생물 나이를 추정하는 데 쓰이는 DNA의 메틸기 꼬리표인 후성유전 생체시계 epigenetic clock, 이른바 '호바스 시계 Horvath clock'가 관여할 가능성이 높으며, 다른 것들도 관여할 가능성이 있다.
단백질이나 RNA, 또는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DNA에 붙는 화학물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든 간에 이 표지들은 중요하다.
어떻게든 세포가 평생에 걸쳐서 간직하고 있으면서 재부팅을 지시할 수 있는 기본적인 교정 데이터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관찰자, 즉 우리가 젊었을 때의 원본 신호를 보관하고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DNA 메틸화가 관찰자일 리는 없다.
재프로그래밍이 이루어진 세포가 젊음의 메틸기 표지들은 남기고 노화하면서 쌓인 표지들(DVD 표면에 긁힌 자국들)만 제거하는 법을 어떻게 아는지가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궁에서 발달할 때 DNA에 메틸기를 부착한 뒤로 교정 장치로부터 원본 정보를 복구하라는 신호를 받기 전까지 80년 동안 마냥 대기하고 있는 특수한 히스톤 단백질이나 전사인자 또는 단백질일지 모른다.
클로드 섀넌 Claude Shannon의 어투로 말하자면, 세포에 OSK 유전자들을 감염시켜서 교정 장치를 켜면 세포는 어떤 식으로든 관찰자와 접촉해 교정 데이터로 젊은 세포가 지녔던 원본 신호를 복구할 것이다.
위안청 루는 신경세포를 재생하고 시력을 회복시키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손상된 뉴런의 DNA를 검사하니 노화 프로그램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재프로그래밍 인자가 막은 것이 바로 그 노화 프로그램이었다.
재프로그램밍 인자를 받은 뉴런은 늙지 않았고 죽지 않았다.
이는 급진적인 개념이지만 납득이 가는 측면이 많다.
어떤 식으로든 시계를 되감지 않는 한 심각한 세포 손상은 생존 회로를 압도하고 노화를 가속해서 죽음을 몰고 올 것이다.
이런 발견들을 이루었기에 우리는 무엇이 생체시계를 째깍거리게 하는지, 그 시계를 어떻게 되감을지 이해하기 직전에 와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생물학적 정보 교정 장치가 바로 TET(ten-eleven translocation enzyme, 10-11 자리옮김효소)임을 실험을 통해 알아냈다.
이 효소는 DNA의 메틸기 꼬리표를 잘라내는 일을 한다.
호바스 노화시계의 시간 경과를 표시하는 바로 그 화학적 꼬리표 말이다.
이 점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며, DNA 메틸화 시계가 단지 노화의 지표가 아니라 노화의 통제자임을 시사한다.
한마디로 손목시계가 아니라 물리적 시간 자체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교정 장치의 부품 역할을 하는 TET는 유전체에서 모든 메틸기를 그냥 다 떼어낼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세포가 미분화한 줄기세포로 돌아갈 것이다.
그랬다가는 늙은 생쥐의 시력을 회복시킬 수 없을 것이고, 눈먼 생쥐에게 종양이 생길 것이다.
TET가 원래의 메틸기는 남기고 더 최근에 붙은 메틸기만 제거하는 법을 어떻게 아는지는 수수께끼다.
전송프로토콜/인터넷프로토콜(TCP/IP) 정보 복구 시스템의 생물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내려면 앞으로 10년쯤은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복원될 수 없었던 시력이 돌아오고 있고, 재생될 리 없다고 여겨졌던 세포가 재생되고 있다.
노화와 노화 관련 질환들을 늦출 방법에 관한 연구는 몇 십 년 동안 아주 찔끔찔끔 진척이 이루어져 왔다.
반면에 재프로그래밍 연구는 비교적 빠르고 쉽게 성과를 내 왔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관습을 타파할 용기와 대담한 발상이 필요했다.
좀 온건하게 표현하자면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흥미롭다.
몸에서 가장 고치기 어려운 세포를 고치고 가장 재생하기 어려운 세포를 재생할 수 있다면, 몸이 필요로 하는 다른 모든 유형의 세포들 또한 재생하지 못할 것이라고 추측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렇다.
이 말은 막 다친 척수를 고칠 수 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늙어 가면서 손상된 몸의 다른 모든 조직을 재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간에서 콩팥에 이르기까지, 심장에서 뇌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직을 말이다.
그 어떤 세포든 불가능하지 않다.
※출처
1. 데이비드 A. 싱클레어, 매슈 D. 러플랜트 지음, '노화의 종말', 부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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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28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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