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호생관 최북 "한강조어도" "추경산수도" "풍설야귀인도" "공산무인도" 본문
자신의 이름 가운데 북北 자를 두 글자로 나누어 '칠칠七七이도 못난 놈' 즉 '칠칠이'라고 자신 스스로 못난이로 불렀던 최북崔北(1712~1786?)은 붓[호毫] 하나로 먹고 산다[생生]고 하여 호생관毫生館이란 호를 스스로 지었다.
최북은 여러 분야의 그림을 두루 잘 그렸지만 산수와 메추리를 잘 그려 당대에 최산수崔山水 또는 최메추라기란 별칭을 얻었다.
그리고 술을 너무나 좋아하고 기행이 많아 주객酒客·화사畵史·미치광이(광생狂生)·주광화사酒狂畵史등으로 불리면서일생 동안 숱한 일화를 남긴 불행한 천재 화가였다.
최북은 화원이 아닌데도 1748년 통신사 수행 화원 자격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당시 일본에 있을 때 최북은 '거기 살고 있다' '머무르고 있다'라는 뜻의 '거기재居基齋'란 호를 주로 사용했다.
일본에서 남긴 작품이 몇 점인지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았지만, 당시 일본의 이름난 소장가들이 최북의 그림을 소장했던 것으로 미루어 일본에서 그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역사소설가 박상하는 자신이 쓴 책 '≪조선의 3원3재 이야기≫에서 '3원3재1칠칠이' 7인을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로 꼽았다.
즉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을 일컫는 3원三園, 겸재謙齋 정선鄭敾·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또는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을 일컫는 3재三齋와 더불어 칠칠七七이 최북崔北 등 일곱을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로 선정한 것이다.
최북은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1707~1769)의 영향을 많이 받아 중년까지는 현재풍 그림을 그렸다.
현재풍 그림의 대표작은 위에 있는 <한강조어도寒江釣魚圖>이다.
호생관이란 낙관이 없으면 현재 그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한강조어도>는 눈 오는 차가운 강가[한강寒江]에서 낚시를 하는 그림으로, 눈 오는 강가 풍경과 낚시와 연관된 이미지가 모두 들어 있다.
앞쪽의 키 큰 나무는 가지 주변을 살짝 비우고 옅은 먹을 칠해 흰 눈이 덮힌 듯이 표현했다.
이는 멀리 보이는 산도 등성이 위쪽을 칠해 산이 하얗게 비치는 효과를 낸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푸른 물감을 아주 옅게 먹과 섞어 마치 강물이 얼어붙은 듯이 차가운 효과를 낸다.
작은 배 위에도 짚도롱이를 둘러쓴 어부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가을의 경치를 그린 <추경산수도秋景山水圖> 역시 <한강조어도>처럼 현재풍이 들어가 있는 남종화 계열의 진경이라 할 수 있는 그림이다.
물기 많은 붓으로 툭툭 점을 찍어 산세를 묘사하는 최북의 특징이 잘 드러난 이 그림은 비 내린 후 날이 흐려 어둡고 안개 자욱한 경치를 연상시킨다.
오른쪽 위 화제는 "세정축중추삼기재사歲丁丑中秋三奇齋寫(정축년 가을날 삼기재가 그리다)"이다.
삼기재는 시와 글씨, 그림에 모두 능하다는 뜻으로 호생관이나 칠칠이처럼 자신이 붙인 아호다.
이 화제를 통해 이 그림은 1757년 정축년에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화제가 시작되는 부분에 '호생관毫生館' 인장을 찍었고, 끝 부분에는 '최북崔北'과 '칠칠七七'이란 도장이 확인된다.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는 당나라 시인 유장경劉長卿의 시 '봉설숙부용산逢雪宿芙蓉山(눈을 만나 부용산에 머물며)'란 시 마지막 구절 '풍설야귀인(눈보라 치는 밤에 돌아오는 나그네)'을 취해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앞서 소개한 현재풍의 진경산수 두 그림과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광기狂氣(미친 기운)가 느껴진다.
그래서 그가 비교적 후년에 그린 그림으로 짐작된다.
나무가 휘어질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밤길을 지팡이 짚은 나그네가 걸어간다.
예상치 못한 발자국 소리에 잠들어 있던 개가 뛰쳐나오 컹컹 짖는다.
주저않을 듯 가난한 초가 앞 나무들이 거칠게 몰아치는 눈보라 때문에 지푸라기처럼 날린다.
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찬바람만 휙휙 불어댄다.
먼 산은 어둠 속에서 형체만 남기고 주저앉아 있다.
해가 저물녘에는 푸른색을 띠었던 산이었는데 밤이 깊어지자 흰색과 검은색만으로 정리되었다.
눈 쌓인 산은 빈 화면을 그대로 둔 채 하늘과 산자락에 연한 먹을 물들였다.
지금 내리는 눈 이전에 이미 내린 눈이 꽤 많이 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의 옷자락을 잡고 초가집에 주저앉힌 눈이다.
무채색이 주는 한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묽고 연한 먹의 농담 변화만으로 그린 몰골법의 나무와 짓이긴 듯 깔깔하게 그린 잡풀들이 금세라도 바람에 날아갈 듯 위태로워 보인다.
농묵을 찍어 빠른 필치로 그린 산등성이와 길가 바이위는 휘청거리는 듯한 그림의 가벼움을 지그시 눌러준다.
뒷산 언덕에 빠져나온 짧은 나무와 바위의 속살을 못을 치듯 진한 먹으로 그린 것도 안정감을 준다.
어떤 경물이든 그의 붓끝에서 짓이겨진 겨울밤이 거친 필치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최북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는 새샘 블로그에서만도 세 번째 글이다.
이 그림은 특히 글씨에서 그가 가진 광기가 여실히 드러나는 그림이다.
그림 왼쪽 위 화제는 '공산무인空山無人 수류화개水流花開(빈 산에 사람 없으나 물 흐르고 꽃 피네)'란 송나라 시인이자 대문장가 동파 소식蘇軾이 지은 <나한송羅漢頌> 가운데 한 구절이다.
적막 그 자체다.
인기척도 없고, 동물 흔적조차 없다.
나무도, 바위도 가많이 앉아 있다.
정자도 고요하다.
텅 빈 산!
심심한 분위기 같지만, 그렇다고 쓸쓸함이 느껴지진 않는다.
왼쪽 위 광기 어린 필체로 쓴 '공산무인 수류화개'의 여덟 글자 화제 밑에는 계곡물이 옅은 물줄기를 안고 위에서 아래로 폭포처럼 떨어지고 있다.
노송과 색이 섞이는 듯하다.
물안개를 표현한 듯 물과 나무가 서로를 감싸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에서 움직일 수 있는 물체는 이 물줄기 뿐이지만, 이마저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적막감은 점차 커진다.
정자도, 옆 나무도 사람 손을 탄 지 오래된 듯하다.
배경이 된 산은 한가운데서 흔적만 느낄 수 있다.
사실상 생략됐다.
<공산무인도>는 소식이 쓴 시를 도화지로 표현한 그림이다.
산은 아무도 없어도 산이다.
꽃은 누구 손을 타지 않아도 때맞춰 핀다.
이 그림에는 텅 빈 곳은 채워야 하며, 멈춘 것은 움직여야 한다는 등의 강박이 없다.
적막이 고독으로 이어지지 않던 이유, 이제야 알 것 같다.
※출처
1.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박상하 지음, '조선의 3원3재 이야기'(일송북, 2011).
3.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jujukey&logNo=50192651123(한강조어도).
4. https://m.blog.naver.com/ohyh45/20121635960(추경산수도).
5. https://blog.daum.net/windada11/8763528(풍설야귀인도).
6. https://brunch.co.kr/@caesa76/60(공산무인도).
7. 구글 관련 자료
2021. 9. 17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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