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1980년대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3: 암사동 유적 본문
1960년대에 이어 1970년대에 지속적으로 발굴이 이루어진 암사동 유적은 1983년에 다시 발굴이 이루어졌다.
앞서 실시된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국가 차원에서 유적의 보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 유적 일대에 대한 선사先史유적 공원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1983년 조사는 야외전시관 건립으로 인해 훼손된 지역에 대한 것으로, 발굴 전체 지역에서 균일한 퇴적 양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신석기층만은 거의 전역에 걸쳐 노출되었다.
이후 암사동 유적은 1983년 발굴조사의 연장선상에서, 1970년대 발굴조사된 집터 일부를 원상 그대로 노출시키기 위한 발굴이 1984년 시작되었다.
이번 조사 목적은 1971년부터 1974년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굴한 움집터(수혈주거지竪穴住居地) 가운데서 상태가 좋고 당시 집터로서 전형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자취 즉 유구遺構를 선정하여 장차 움집터를 복원 설계하는데 필요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유구의 노출에 전념하였다
1984년 발굴단은 조사 결과와 함께 위 그림이 포함된 움집터 복원을 위한 제안을 보고서 끝머리에 적어 놓았다.
지금 암사동 유적에 가보면 위 사진에서 보는 복원된 신석기시대 움집 5채가 있다.
서울이란 거대한 도시에 6천 년 전에 살았던 생활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 암사동 유적은 서울을 대표하는 유적이면서 자랑스런 유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신석기문화의 특징인 강가 생활, 즉 한강과의 생활 연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올림픽도로로 꽉 막혀버린 유적 모습에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도 서울 시민들이 많이 찾고 있는 암사동 유적에 대해, 지금이라도 신석기유적의 특징인 한강과 연계된 생활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방안을 좀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복원된 유적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위험성은 그 유적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격은 잃어버린 채 평범한 공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구글 관련 자료
2021. 9. 14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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