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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람 전기 "계산포무도"

새샘 2023. 1. 21. 18:52

이번 그림부터는 당분간 고람 전기를 시작으로 형당 유재소, 소치 허유(허련), 소당 이재관, 대원군 이하응, 운미 민영익 등 완당 김정희의 영향을 직접 받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여섯 명의 화가들 그림에 대한 해설을 싣는다.

 

 

서른 해를 채 못살다 세상을 떠난 시인이자 천재 화가 고람古藍 전기田琦(1825~1854)는 스승인 완당의 정수를 어느 정도는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전기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많지는 않지만 단편적인 기록들에 따르면 그가 시, 그림, 글씨에 뛰어났으며 생계를 위해 약재상을 운영했다고 한다.

또한 전기는 서화 감식에도 뛰어나서 그의 친구들과 지인들은 서화를 구매할 때 그의 조언을 구했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그림은 많지 않다.

 

 

전기, 계산포무도, 1849년, 비단에 수묵, 24.5x41.5cm,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1)

 

그의 나이 스물넷에 그린 <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물이 흐르는 산골짜기(계산溪山) 초가 뒤에 떨기(포苞)가 되도록 무성하게(무茂) 자란 대나무가 바람에 스산하게 흔들리는 그림이다.

 

기교나 장식이 전혀 없이 빳빳한 털로 만든 갈라진 붓(갈필渴筆)으로 묘사 또한 대담하게 생략되어 있어 얼핏 보면 어린아이가 그린 듯 거칠기 짝이 없다.

더욱이 화면 왼쪽 위에 쓰인 글씨는 끝으로 갈수록 갈라진 흔적이 역력하다.

또 대나무 이파리나 지붕 능선을 봐도 전기가 이 그림을 갈필 한 자루로 단번에 그려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느낌은 머리를 파고드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집을 그린 솜씨로 보면 전문 화공은 아닌가 싶다가도 나무를 그린 먹의 농담은 전문 화공보다 모자람이 없다.

글씨는 활기차고 뚜렷해서 전혀 고분고분하지 않다.

 

'졸미拙美'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균형과 조화에서 출발하여 충만과 완벽으로 나아가는 서양의 미적 기준으론는 인정하기 어려운 미의 형태이다.

그러나 동양은 약간 비어있고 굽어있으며 허물어진 것에도 미적 감각을 읽어내고 가끔은 조화와 균형의 미보다 더 우위에 두기도 하는데 이것을 우리는 졸미라고 부른다.

서양인들은 19세기 인상주의 미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졸미를 미적 기준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흔히 '고졸古拙하다'라고 쓰는 말은 바로 졸미 중에서도 좀 더 예스럽고 소박한 멋을 얘기하는데, <계산포무도가>가 바로 이 고졸한 멋을 보여주는 그림인 것이다.

 

<계산포무도>는 전기가 남긴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로 완당의 <세한도> 못지않게 여백이 많다.

전기가 이 그림을 그렸던 1849년은 유배에서 풀려난 완당에게서 직접 지도를 받던 시기로서, 그림을 본 스승인 완당은 전기를 높이 칭송했다고 전해진다.

이상적과 함께 완당이 각별히 사랑했던 제자가 전기인데, 아마도 완당이 강조하는 '문자의 향기(문자향文字香)'를 가장 잘 담아냈기 때문이리라. 

 

전기와 망년우忘年友(나이에 거리끼지 않고 허물없이 사귄 벗)였던 우봉 조희룡은 "전기가 그린 산수화는 쓸쓸하면서도 조용하고 간결하면서 담백하여 원대元代의 회화를 배우지 않고도 원인元人의 신묘한 경지에 이르렀다"라고 평한 적이 있다.

또한 일찌기 선배 화인 류최진柳最鎭은 "30년 전기의 재능이 500년 화단의 역사를 감당할 만하다"라고 감탄했다.

이런 면모 때문에 그는 때로 스승 완당을 능가한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전기사인田琦私印'이란 낙관落款을 찍었고, 왼쪽 위에는 "계산포무도를 이 집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렸다 기유년 7월 2일에 홀로 쓸쓸히 앉아서(계산포무도 작어격벽시실 기유칠월이일 독좌 溪山苞茂圖 作於隔壁是室 己酉七月二日 獨坐)"란 화제를 세로로 4줄로 나누어 썼다.

 

그림에는 물가를 굽어보고 산이 우러러보이는 곳에 집 두 채가 있다.

저곳에 집을 지은 이는 누구이며, 전기는 왜 이런 그림을 남겼을까?

그 기원을 찾자면 몇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3천 년 전의 시들을 모아놓은 ≪시경≫에는 <사간斯干>이란 다음 내용의 시가 전한다.

 

가지런한 물가에 아득히 보이는 남산 (질질사간 유유남산 秩秩斯干 幽幽南山)

대나무는 떨기로 자라고 소나무가 무성한 곳 (여죽포의 여송무의 如竹苞矣 如松茂矣)

형과 아우가 서로 사랑하니 누구도 꾀를 부리지 않네 (형급제의 식상호의 무상유의 兄及弟矣 式相好矣 無相猶矣)

 

질질사간의 '간干'은 '시내'라는 뜻으로 그림 제목인 <계산포무도>의 첫 번째 글자 '계'와 같은 뜻이다.

그리고 다음에 나오는 유유남산의 '산', 여죽포의의 '포', 여송무의의 '무'를 합치면 '계산포무'가 된다.

≪시경≫의 시 <사간斯干>, 곧 형과 아우가 이웃하며 정겹게 사는 풍경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결국 <계산포무도>는 '사의寫意(사물의 형태보다는 그 내용이나 정신)를 그려낸 문인화' 즉 '그림으로 그려낸 시''인 것이.

조희룡 또한 "전기는 그림으로 시의 경지에 들어갔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전기는 바로 조선 문인화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세한도> 탄생의 주인공인 완당과 이상적 두 사람의 공동 제자라 할 수 있다.

전기는 이상적의 문인으로 있다가 그의 소개로 완당을 만났다.

그러니 전기에게서 완당의 <세한도>와 닮은꼴 그림이 나온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완당이 <세한도>를 그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전기의 <계산포무도>는 형제 사이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전기는 어릴 적부터 병약했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가 남긴 그림에는 정다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가 그린 <계산포무도>는 겉보기에는 산수화일 뿐이고 풍경도 쓸쓸해 보이지만 실은 형제간의 정을 그린 전기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그림이다.

스승은 사제지간의 사랑을 그렸고, 제자는 형제간의 정과 사랑을 그린 것이다.

 

※출처
1. 이용희,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brunch, 우리 옛 그림 이야기 1, 계산포무도(https://brunch.co.kr/@brunchfzpe/41)

3. 전호근,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도서출판 사우, 2022.(https://books.google.co.kr/books?id=A_N3EAAAQBAJ&pg=PT34&lpg=PT34&dq=%E6%BA%AA%E5%B1%B1%E8%8B%9E%E8%8C%82%E5%9C%96%E4%BD%9C+%E5%AE%A4+%E5%B7%B1%E9%85%89%E4%B8%83%E6%9C%88%E4%BA%8C%E6%97%A5%E7%8D%A8&source=bl&ots=P_TQwNIsG_&sig=ACfU3U1-KI1Cb7VAF2IX9z3SZJfaZDl42w&hl=ko&sa=X&ved=2ahUKEwjzvuXqqdj8AhXIsFYBHeA-DGsQ6AF6BAgeEAM#v=onepage&q=%E6%BA%AA%E5%B1%B1%E8%8B%9E%E8%8C%82%E5%9C%96%E4%BD%9C%20%E5%AE%A4%20%E5%B7%B1%E9%85%89%E4%B8%83%E6%9C%88%E4%BA%8C%E6%97%A5%E7%8D%A8&f=false)

4. 구글 관련 자료

 

2023. 1. 2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