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26: 종로구 지역6-소격동, 안국동, 운니동, 화동, 계동, 와룡동, 권농동, 명륜동, 이화동, 동숭동, 혜화동, 충신동, 홍지동, 교남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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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26: 종로구 지역6-소격동, 안국동, 운니동, 화동, 계동, 와룡동, 권농동, 명륜동, 이화동, 동숭동, 혜화동, 충신동, 홍지동, 교남동

새샘 2023. 2. 28. 23:29

 

<2000년 이후 발굴조사 목록-종로구 지역6: 소격동, 안국동, 운니동, 화동, 계동, 와룡동, 권농동, 명륜동, 이화동, 동숭동, 혜화동, 충신동, 홍지동, 교남동 유적>

 

2009년과 2010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분관의 복원된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조사 지역은 소격동 165번지 일대로 1971년부터 2008년까지 보안사령부(지금의 기무사령부)가 주둔했고, 이후 국군서울지구병원이 자리했던 지역이다.

또한 이곳은 삼청동길을 사이에 두고 경복궁이 인접해 있으며, 종친부宗親府(조선 시대에, 역대 왕의 계보와 초상화를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성과 본이 같은 일가붙이인 종반宗班을 다스리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사간원司諫院(조선 시대에, 삼사 가운데 임금에게 간諫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장생전長生殿(왕실용이나 대신에게 내리던 관곽棺槨을 갖추어 두던 곳) 등이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실지로 1981년 지금의 화동 2번지의 정독도서관으로 이전 복원되기까지 이곳에는 종친부 편액을 걸었던 경근당敬近堂·옥첩당玉牒堂과 복도각複道閣 등 3동의 목조건축물이 존재하고 있었다.

경근당 왕실 사무를 처리하던 전각, 옥첩당은 고위 관리들의 집무처, 그리고 복도각은 정전正殿(어진이 봉안된 건물)과 이안청移安廳(어진의 임시 보관 건물)을 연결하는 행각이다.


발굴 결과, 조선 전기부터 근대에 이르는 20동의 건물 터, 담장 8기 등 총 83기의 건물 터 관련 시설 유구가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1867년에 중건된 종친부 유구들 특히 경근당과 옥첩당 유구는 양호한 것으로 확인됨으로써 발굴조사 이후 정독도서관에서 원래의 자리로 이전 복원하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2014년에는 안국동 170번지와 172번지의 건물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졌다.

조사 지역 일대는 북촌한옥마을 안 남서쪽 경계부이며, 대규모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대부분 목조 또는 벽돌로 만든 소규모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고 상업시설이 밀집해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가까이 운현궁雲峴宮(고종의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 저택), 안동별궁安洞別宮(세종 막내아들 영응대군 저택) 터, 충훈부忠勳府(조선 시대에, 공신의 훈공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 하던 관아) 터 등이 있다.

발굴 결과, 잔존 상태가 불량한 근현대로 추정되는 돌무지 시설 1기 외에는 교란이 매우 심해 더 이상의 유구는 확인할 수 없었다.

 

 

안국동 74-1번지 단독주택 부지 발굴도 2014년 실시되었다.

조사 지역은 윤보선 가옥과 천연기념물인 재동 백송이 있는 헌번재판소의 남쪽 인접 지역이며, 북쪽한옥마을에 속한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일제강점기~현대 건물터 1기를 확인했을 뿐이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운니동 98-41번지 일대의 단독주택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사 지역 서쪽 가까이에 운현궁이 있다.

발굴 결과, 조선시대 건물 터 3동, 배수로 1기, 집터 1기, 구덩이 유구 1기, 매납유구埋納遺構(유물이 묻혀 있는 옛날 묘지의 자취) 1기, 석렬石列 유구(길게 늘어선 돌무리 자취) 2기 등이 조사되었다.

 

 

화동 2번지의 북촌관광안내소 및 공중화장실 건립공사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도 2013년과 2014년 이루어졌다.

조사 지역은 지형상 경복궁 동쪽에 있는 낮은 구릉지의 중단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북쪽 경계에는 옛 경기고교, 남쪽에는 안국동 윤보선 가옥, 서남쪽에는 종친부 터가 각각 위치한다.

여기서는 조선시대 건물 터 2동과 구덩이 5기 등이 확인되었다.

 

 

2014년 계동 101-14번지의 근린생활시설 부지에 대한 발굴도 있었다.

조사 지역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로, 조선시대 사대부와 관료들이 모여 살던 북촌에 해당된다.

 

계동 101-14번지의 조선시대 우물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발굴 결과, 조선시대 건물터 1기, 우물 1기, 적심돌(적심석積心石: 돌 따위를 쌓을 때 안쪽에 심을 박아 쌓는 돌) 1기가 조사되었다.

 

 

서울시는 와룡동 12-2번지에 돈화문 국악예술당 건립을 추진하기 위해 2014년 이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지금의 서울돈화문국악당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조사 지역은 북쪽으로 창덕궁 돈화문과 마주하며, 서쪽으로 돈화문로가 지난다.

발굴 결과, 조선 중기의 담장 2기와 조선 후기의 석렬 2기가 확인되었다.

 

 

2014년 권농동 190-2번지의 주얼리 비즈니스2센터 한옥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지역의 북쪽에는 창덕궁이, 동쪽에는 종묘가 위치하고 있으며, 발굴 이전까지 주차장이었다.

주변에는 한옥주택과 상가가 다수 있고, 2~4층의 소규모 건물이 밀집되어 귀금속 가공 등 소규모 수공업을 하는 공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발굴 결과, 조선 후기 잡석 석렬 1기와 일제강점기 건물 터 3동이 확인되었다.

 

 

2014년에는 성균관대 안에 있는 문묘文廟(공자를 모신 사당)의 향문香門(향을 가져갈 때 드나드는 문묘의 문) 복원공사 부지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졌다.

조사 지역은 성균관 유생들이 강학講學(학문을 닦고 연구함)을 하던 명륜당明倫堂의 북서쪽에 있다.

문헌에는 이곳에 향문이 있었던 것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발굴 당시 이곳에는 문묘의 북쪽 외곽 담장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화계花階(화단花壇: 꽃을 심기 위하여 흙을 한층 높게 하여 꾸며 놓은 꽃밭)가 조성되어 있었다.

 

발굴 결과, 문터와 관련된 주춧돌 6기와 장대석, 그리고 문터의 동쪽과 서쪽 중앙에서 동서 방향의 담장 기초유구가 확인되었는데, 발굴단은 이번 유구들은 문묘와 향문 유구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밖에 문터와 담장의 북쪽에서는 근대의 배수로가, 그리고 문터와 담장보다 이른 시기에 조성된 동서 방향의 축대도 확인했다.

 

 

2010년 성균관대 글로벌교육시설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발굴 결과, 통일신라시대 돌방房무덤(석실분石室墳) 2기와 조선시대 건물 터 2동, 담장 터 1기, 저장시설 1기, 그리고 시대를 알 수 없는 석축 1기와 구덩이 유구 4기가 확인되었다.

특히 서울 지역에서더 강북지역에서 통일신라시대의 돌방무덤이 조사된 경우는 드물어 연구자료로서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발굴단은 평가했다.

 

 

2012년에는 명륜4가 206-20번지의 천주교 가르멜 명륜동 수도원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지역 주변에는 창경궁을 비롯해 성균관, 경모궁景慕宮(사도세자 즉 장헌세자와 그의 빈 혜경궁 홍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 대한의원大韓醫院(1907년 설립된 대한제국 최고의 의료기관으로서 지금의 대학병원 기능을 담당), 옛 서울대학교 본관, 옛 공업전습소工業傳習所(1906년 건립된 대한제국 정부가 설립한 공업교육기관) 본관(광복 후 상공부 산하의 국립공업연구소와 국립공업시험원의 본관이었고, 지금의 한국방송통신대) 등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많은 문화재가 인접해 있다.

발굴 결과, 조선시대 건물 터 5공, 담장, 배수로 등이 확인되었다.

 

 

2015년에는 명륜4가 105-1번지의 근린생활시설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지역 남쪽은 서울대 의과대학과 가깝고, 동쪽은 대학로이다.

부근에는 2~4층의 소규모 건물들이 밀집해 있고, 대부분 상점과 식당 등 상업시설이다.

발굴 결과, 조선 전기 건물 터 2동과 배수로 1기, 잡석 석렬 1기, 조선 후기~근대의 건물 터 1동과 우물 1기가 확인되었다.

 

 

명륜4가 70-7번지의 근린생활시설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도 2015년 실시되었다.

이곳에서는 조선 전기의 기둥 구멍 7기와 함께 조선 후기~근대의 적심돌 등 건물 관련 유구들이 조사되었다.

 

 

2012년에는 이화동의 도시형 생활주택을 신축하기 위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사지역 주변에는 이화장梨花莊(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거주지)을 비롯하여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조사 결과, 조선시대 석제石製 배수로 1기가 확인되었다.

 

 

2014년에는 동숭동 130-7번지 일대의 다세대주택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지역인 동숭동 지역은 내사산內四山 중 동쪽 좌청룡인 낙산駱山 일대에 해당한다.

남쪽은 이화동과 충신동을 지나 흥인지문으로 이어지고, 북쪽은 혜화문 일대인 혜화동이 있는데, 모두 한양도성의 성벽과 접한 지역이다.

조사 지역 주변에는 소극장 등 문화시설과 소규모 상업시설 및 주거지역이 밀집해 있다.

여기서는 조선시대 건물 터 1기와 적심돌 1기가 확인되었다.

 

 

2012년에는 혜화동 26-31번지의 니드이십일사옥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지역은 한양도성 4소문의 하나인 혜화문과의 직선거리가 120m에 불과하다.

발굴 결과, 대부분의 지역이 교란되거나 훼손되어 조선 전기의 구덩이 유구 1기 외에는 확인된 유구가 없다.

 

 

2014년 혜화동 179-4번지 일대의 공연예술센터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지역은 이른바 '대학로 거리'로 유명한 지역으로, 북쪽에는 가톨릭대(성신교정)와 혜화동 성당, 서남쪽에는 경모궁 터, 남쪽에는 옛 서울대 본관이 위치하고 있다.

발굴 결과, 조선시대의 적심돌 60여 기가 확인되었으며, 발굴단은 총 5동의 건물 터로 구분했다.

그밖에 근대 건물 터와 관련된 기초석렬과 담장, 토관배수로 등이 확인되었다.

 

 

2015년에는 충신동 27-73번지 일대의 근린생활시설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사 지역은 지형상 동쪽의 낙산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구릉성 산지 끝 부분에 있는 평탄지이며, 주변에는 소규모 주거 및 상업시설이 혼재하고 있다.

조사 지역 주변에는 흥인지문, 한양도성, 이화장 등 많은 문화유적이 있다.

발굴 결과, 조선시대 건물 터 2동과 담장 석렬 1기가 조사되었다.

 

 

2013년에는 홍지동 36-6번지 일대의 상명대 기숙사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지역은 세검정사거리에서 상명대로 들어가는 홍지문길 초입의 서쪽이며, 남쪽에는 홍제천이 가까이 흐르고, 북쪽은 상명대와 주택가가 있다.

발굴 결과, 호안護岸 석축石築이 확인되었는데, 발굴단은 구조 측면에서 청계천처럼 전통적 축조방식이 아닌 군기시軍器寺[조선 시대에, 병기·기치旗幟(군대 깃발)·융장戎裝(군복)·집물什物(집기) 따위의 제조를 맡아보던 관아] 터에서 확인된 근대 호안 석축과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2014년에는 돈의문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조사 이전 돈의문1구역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조사 지역은 교남동 62-1번지 일대로, 북쪽 인왕산에서 남쪽 남산으로 향하는 한양도성의 서쪽 성벽과 조선시대 사신이 왕래하던 의주로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 경계에는 한양도성의 서문인 돈의문 터가 있고, 주변에는 경희궁 터와 경교장京橋莊(백범 김구 선생의 환국 후 거주지)이 인접해 있다.

 

발굴 결과, 적심돌 19기를 비롯하여 석렬 1기 등 건물 터 관련 유구들이 확인되었는데, 발굴단을 이를 조선시대 국가에서 행하는 연회가 열렸던 연향대宴享臺 건물 유구로 추정했다.

이 밖에도 근대 배수로 석렬과 호안 석축, 건물 터가 확인되었다.

유물로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도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이 나왔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구글 관련 자료

2023. 2. 2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