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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허련 "완당선생 초상"

새샘 2023. 3. 3. 15:33

허련, 완당 선생 초상 초본(왼쪽) 국립중앙박물관, 36.5x26.3cm; 완당선생 초상 정본(오른쪽), 개인, 51.9x24.7cm(사진 출처-출처자료1)

 

완당 김정희의 영향을 직접 또는 간접으로 받은 한말 서화가 여섯 사람—고람 전기, 형당 유재소, 소치 허련, 소당 이재관, 대원군 이하응, 운미 민영익 중 세 번째인 허련이 그린 <완당선생 초상 阮堂先生肖像>이다.

허련은 산수화는 많이 그렸지만 초상은 귀한데, 그의 초상은 여기에 소개되는 완당선생의 반신상과 <완당선생 해천일립상>이란 전신상 정도일 뿐이다.

 

왼쪽 그림인 초본草本의 화면 오른쪽 위에 추사체로 쓴 '완당선생 초상'이란 제목과 그 아래 '소치허련사본 小癡許鍊寫本'이라고 쓴 오세창의 발문이 있어 허련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 반신상 그림은 좌안팔분면에 오사모烏紗帽(사모: 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에 쓰던 검은 사紗로 만든 모자로서, 흔히 전통 혼례식에서 신랑이 쓰는 모자)를 쓰고 담홍색 시복時服(철에 맞는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의복은 먹선으로 간단히 그렸다.

얼굴은 선염渲染(화면에 물을 칠하여 마르기 전에 붓을 대어 몽롱하고 침중한 묘미를 나타내는 동양화 기법)을 사용하기보다는 짧은 필치로 윤곽이나 수염을 그리고 입체감도 표현했다.

완당의 얼굴은 눈가에 크게 주름이 져있기는 하지만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띤 미남자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유배생활의 괴로움을 사라지고 이상화된 모습이다.

 

이 <완당선생 초상> 반신상은 완당이 살아있을 때 모습을 그려 남긴 것이며, 그 외모와 성품이 그림에 잘 구현되어 있어 완당의 초상화 중 전신傳神(초상화에서, 그려진 사람의 얼과 마음을 느끼도록 그리는 일)이 잘 된 작품으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완당을 그린 다른 초상화들(이한철이 그린 <김정희 영정>, 허련의 <완당선생 해천일립상> 등)의 저본이 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허련에 대한 정보는 일종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소치실록小痴實錄에 많이 담겨 있다.

 

완당이 좋아했던 애제자 허련許鍊(1808~1892)은 조선 말기의 선비 화가로서, 자가 마힐摩詰, 호는 소치小痴, 노치老痴, 석치石痴를 쓴다.

허련은 우리나라에서 5대(소치 허련-미산 허형-남농 허건·임인 허림-임전 허문-허청규·허진·허재·허준)에 걸쳐 200여 년 동안 13명의 걸출한 일가직계一家直系 예술가를 배출하면서 위대한 화업을 이어나가는 남종화 화맥의 산실이자 명문가의 시조이다.

처음 이름은 허련이었으나, 후에 중국 남종화와 수묵산수화의 효시인 당나라 왕유王維(699~759)의 이름을 따라서 허유許維로 개명하였고, 자신의 자 마힐 역시 왕유의 자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허련은 제대로 된 그림 교육을 받지 못하다 28세 때 해남 녹우당에서 윤두서의 <공재화첩恭齋畵帖>을 교재 삼아 따라 그리면서(방작倣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허련 생애 동안 모신 두 스승은 보다 넓은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르쳐 준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와 진지한 예술의 길로 초대한 완당(추사) 김정희(1786~1856)이다.

5년 가까이 공재의 그림을 방작하며 공부하던 때, 해남 대흥사 초의선사를 만나 보다 넓은 세상에 눈을 띄게 되었고,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첫 스승 초의선사는 허련 나이 32세 때 제자의 그림을 완당에게 보여주었다.

허련의 그림을 본 완당은 "시골에서 썩히긴 아까운 재능"이라며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였다.

완당을 통해 예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허련은 스승 완당에게서 '소치'란 호를 하사받는데, 이 호는 원말 4대가의 한 사람인 황공망黃公望(1269~1354)의 호인 대치도인大癡道人에서 따 완당이 지어준 것이다.

 

완당이 소치를 매우 아꼈다는 것은 한양이 아닌 지방 출신인 그에게 중요 인사들을 대거 소개해주었다는 점과 함께 허련이 직접 스승 완당을 그린 두 점의 초상화(완당선생 초상, 완당선생 해천일립상)에서 드러난다.

스승에게서 소개 받은 전라우수사 신관호를 통해 권돈인의 집에 머물며 헌종에게 그림을 바쳐 왕에게 인정을 받게 된 허련은, 그 후 15번이나 왕을 독대할 정도로 헌종은 허련의 그림을 매우 좋아했다고 전한다.

 

※출처
1. 이용희,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EA%B9%80%EC%A0%95%ED%9D%AC_%EC%B4%88%EC%83%81(%EB%B0%98%EC%8B%A0%EC%83%81)

3. http://www.seniorsinmun.com/news/articleView.html?idxno=33964

4.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534863600639407262

5. 구글 관련 자료

 

2023. 3. 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