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소치 허련 "방예찬죽수계정도" "선면산수도" 본문

글과 그림

소치 허련 "방예찬죽수계정도" "선면산수도"

새샘 2023. 3. 21. 22:37

허련, 방예찬죽수계정도, 종이에 수묵, 19.3x25.4cm, 서울대학교 박물관

 

조선 말엽인 19세기에는 추사 김정희의 영향으로 명말明末 청초淸初 유행한 복고화풍인 원대산수화풍을 수용하게 된다.

이전 시기가 남종화의 새로운 도약이었다면, 이 시기는 남종화의 복고주의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산수화 가운데는 중국 원말사대가元末四大家로 꼽히는 운림雲林 예찬倪瓚(1301~1374)의 구도와 풍경을 따르는 화풍을 보이는 그림이 매우 빈번하게 발견되는데, 특히 이런 그림을 다수 남긴 화가가 소치小癡 허련許鍊(1808~1892)이다.

소치가 남긴 산수화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예찬을 (모)倣한(본 떠서 그린) 그림이다.

소치가 낙향하여 터를 잡고 말년까지 작품 활동을 하였던 화실 '운림산방雲林山房'이란 이름을 예찬의 호 운림을 따서 지을 정도로 소치는 예찬을 닮고 싶어 했다. 

 

소치의 산수화 중에서 예찬을 방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방예찬죽수계정도倣倪瓚竹樹溪亭圖>가 손꼽힌다.

이 그림에 이런 제목이 붙은 것은 소치가 화면 맨 위에 '방예운림죽수계정倣倪雲林竹樹溪亭(예운림이 그린 죽수계정을 본 뜸)'이라 써 놓았기 때문인데, 이 그림을 통해 남종화의 복고주의를 답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예찬죽수계정도>는 화면 앞에는 토파土坡(흙으로 쌓아 올린 둑)가 비스듬히 길게 이어진 가운데 나무와 정자가 있고, 가운데의 강, 그리고 뒤쪽에 산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예찬식 구도를 보이는 그림이다.

깔끔한 붓놀림과 단정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수평 구도로 연출했다.

갈필(마른 듯한 상태의 붓으로 그리는 기법)과 적묵積墨(마른 붓으로 여러 번 반복해서 칠해 짙은 먹색을 내는 기법)으로 예찬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갈필의 피마준으로 바위와 산세를 나타낸 것은 원말사대가인 황공망黃公望의 화법도 같이 겸하고 있다.

허련은 이렇게 고전적 화법을 숭앙함으로써 문인의 사의寫意(그리고 싶은 마음)를 얻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허련, 선면산수도, 종이에 담채, 20x61cm, 서울대학교 박물관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초의선사가 입적한 1866년(고종 3) 소치의 나이 57세 때 자신의 화실인 운림산방을 부채에 그린 그림이다.

푸른색과 황색을 은은하게 담채로 활용해 부채의 한가운데 우뚝하게 솟은 산을 배치하고, 그 아래 널찍하게 자리 잡은 집 세 채가 대숲과 키 큰 나무 몇 그루에 둘러싸여 있는데 집 주인은 다리를 건너 돌아오는 참이다.

그리고 하늘에는 나대경이 쓴 산문 <산山居>편의 내용을 화제로 하여 추사체로 쓴 글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우뚝 솟은 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집은 마치 거대한 스승의 품에 안긴 제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하늘을 뒤덮은 추사체는 스승의 숨결 같다.

부채의 형태를 따라 펼쳐진 이 그림은 산수화와 추사체 글씨의 조화가 돋보인다.

 

치 허련은 남종문인화와 추사체 글씨가 잘 어루어진 이 <선면산수도>를 통해 '남종화의 대가'로 불리게 되었다.

 

화제로 적힌 중국 남송 때 문인 나대경羅大經의 산문집 학림옥로鶴林玉露≫ 중 <산거> 편의 내용을 보자.

 

"내 집은 깊은 산속에 있어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무렵이면 푸른 이끼가 섬돌을 덮고 떨어진 꽃이 길바닥에 수북하다. 문에는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 하나 없고, 솔 그림자 들쭉날쭉한데 새소리 높았다 낮았다 한다. 낮잠 충분히 즐겼으니 산속 샘물 긷고 솔가지 주워다 쓴 차 달여 마신다. 마음 가는 대로 ≪주역≫, ≪시경≫의 '국풍', ≪춘추좌씨전≫, ≪이소≫, ≪사기≫, 태사공의 글, 도연명과 두보의 시, 한유와 소식 글 몇 편 읽는다. 조용히 산길을 거닐며 소나무와 대나무를 어루만지기도 하고, 높은 나무숲과 무성한 풀밭에서 새끼사슴이나 송아지와 함께 누워 쉬기도 한다. 흐르는 샘물가에 앉아 물장난을 치다가 양치질도 하고 발도 씻는다. 대나무 그늘진 창문 아래로 돌아오면 산사람이 다 된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죽순과 고사리나물 반찬에 보리밥 지어 내오니 기쁘게 배불리 먹는다. 창가에서 붓을 놀려 되는대로 크고 작은 글씨 몇 십 자를 써보기도 하고, 간직한 법첩法帖(명필의 서첩)이나 묵적墨蹟(먹으로 쓴 흔적), 두루마리를 펼쳐 마음껏 보기도 한다. 흥이 나면 짧은 시를 읊거나, 학림옥로≫의 한두 단락을 쓰기도 한다. 다시 차 한 잔을 끓여 마시고 밖으로 나가 시냇가를 걷다 농원의 노인이나 냇가의 늙은이를 만나면 뽕나무며 삼 농사를 묻고 찰벼와 메벼를 이야기한다. 맑은 날과 비온 날을 헤아려 절기를 따져보고 계산하며 한바탕 유쾌한 말을 주고받는다. 돌아와 지팡이에 기대 사립문 아래 서면 석양은 서산마루에 걸려 있고, 자줏빛과 푸른빛이 만 가지 형상으로 순간순간 변하며 사람의 눈을 황홀하게 만든다. 소 잔등에서 피리 불며 목동들이 짝지어 돌아올 즈음이면 달이 앞 시내에 뚜렷이 떠 있다."

 

※출처
1. 이용희,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https://dmoo.tistory.com/archive/201311(방예찬죽수계정도)

3. https://brunch.co.kr/@3c58266eac64429/2(방예찬죽수계정도)

4. https://archivesnews.com/client/article/viw.asp?cate=c03&nNewsNumb=20170926063(방예찬죽수계정도)

5. https://blog.naver.com/dankoon2001/60102458421(방예찬죽수계정도, 선면산수도)

6. http://www.moajae.net/bbs/bbs/view.php?bbs_no=11&data_no=242(선면산수도)

7.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hjh044&logNo=10010535513

(선면산수도)

8. http://www.gosinga.net/archives/903 (선면산수도)

9. https://mnews.imaeil.com/page/view/2019080609345446741(선면산수도)

10.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4263(선면산수도)

 

2023. 3. 2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