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유적에도 타고난 운명이 있다 본문
유적에도 사람처럼 운명이 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그러나 발굴보고서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각 유적들도 운명이 있는 듯하다.
지금은 문화재청에서 각 발굴 유적의 운명을 결정한다.
순수한 학술발굴이 아닌 사업을 위한 구제발굴 이후 문화재청은 발굴 결과와 유적의 가치에 따라 '그대로 사업시행', '안내판 설치', '이전 복원', '원형보존' 등으로 유적의 운명을 정한다.
'그대로 사업시행'은 발굴보고서로만 남고 유적은 그대로 그 자리에 묻히는 것이고, '안내판 설치'는 원래의 사업은 그대로 진행되면서 그 자리에 안내판을 설치하여 그 역사적 가치 등만을 알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대로 사업시행'이나 '안내판 설치'의 두 조치가 취해지는 유적은 결국 사라져버리는 운명이 되는 것이다.
반면 '이전 복원'은 유적을 그대로 복제하여 적당한 장소에 그대로 다시 복원하는 것이며, '원형보존' 조치는 사업은 시행되지 않고 대신 유적을 정비·보존하는 경우이다.
즉 '이전 복원'이나 '원형보존'의 조치를 취해지는 유적은 상대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음으로써 살아남는 운명이다.
그러나 발굴 유적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없었던 시기의 각 유적들은 발굴 당시의 상황에 따라 다른 운명을 맞이한다.
앞서 살펴본 가락동 고분군은 정비·보존된 석촌동 고분군과는 달리 모두 땅속에 묻혀버렸고, 구의동 유적도 보존을 하게 되면당시 지역개발계획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하여 지금은 흔적조차 확인할 수 없다.
반면 운명이 바뀐 유적도 있는데, 바로 풍납토성風納土城이 그것이다.
풍납토성은 1980년대 몽촌토성 발굴 결과 한성백제 도성 후보지에서 점차 배제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풍납토성 내부에 아파트 건설을 위한 구제발굴이 시작되면서 점차 한성백제의 중요 유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풍납토성의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은 많은 연구자들이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국민적인 관심사까지는 아니었다.
이런 풍납토성의 운명을 바꾼 사건은 2000년 5월 13일 토요일에 경당지구 발굴 현장에서 발생했다.
당시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는 쪽에서 발굴 현장을 굴삭기로 파헤쳐 유적을 망쳐놓은 것이다.
이런 전대미문의 사건에 언론사의 대대적인 보도가 있었고, 당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여 유적의 보존 대책을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 풍납토성은 당시 국민들의 관심사로 떠올랐고, 이후에도 연구자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만약 굴삭기 사건이 없었다면 풍납토성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물론 이후 구제발굴 결과에서도 한성백제의 유력한 도성으로 상정될 만큼 기대 이상의 출토유물이 확인되었으니 아마도 풍납토성의 역사적 가치는 언제가는 밝혀졌을 것이다.
그러나 2000년 굴삭기 유적 훼손 사건이 국가와 국민들이 유적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발굴을 위한 국가와 서울시의 든든한 재정 지원이 가능했던 것도 이 사건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유적에도 운명이 있는 것이다.
한편 몽촌토성夢村土城은 운명의 갈림길에서 살아난 유적이다.
몽촌토성은 올림픽 체육시설이 이 지역에 들어서면서 보존으로 결정되어 지금은 올림픽공원의 중심지역으로 시민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서울 고대사 연구에도 중요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몽촌토성은 없어질 위기에 처했었다.
서울시는 1971년 잠실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잠실섬을 둘러싸면서 지금의 석촌호수까지 내려온 한강 물길을 메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데 당시 시공사는 매립용 토사가 부족하자 몽촌토성을 굴착하여 사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몽촌토성의 역사적 가치를 알고 있던 어느 서울시 공무원의 반대로 그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미 1970년대에 몽촌토성의 역사적 가치를 알고 반대했다고 하니 그 선견지명이 놀라울 뿐이다.
서울시 공무원이 몽촌토성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할 수 있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구글 관련 자료
2023. 5. 5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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