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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사 2천 년, 서울 발굴 55년사

새샘 2023. 5. 16. 15:43

1961년 지금의 강동구 명일동에서 고려대 김정학 교수는 청동기시대 집터를 발굴했다.

2015년 기준으로 보면 55년 전이었는데이 발굴이 서울 지역 최초의 발굴이었다.

당시 김정학은 발굴 허가가 나오기 전까지 유적을 지키고자 열흘 동안 학생들로 하여금 이 발굴 지역을 교대로 지키게 했다고 한다.

서울 발굴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서울은 서기전 18년 백제가 건국하면서 한 나라의 수도로서의 역할을 시작하여 이후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수도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 이르러 '서울 역사 2천 년'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이전에 사용하던 '서울 정도定都 600년'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서울의 대표적인 고대 유적 풍납토성(사진 출처-출처자료1)

이렇게 수도로서 서울의 역사가 600년에서 2천 년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발굴의 결과이다.

백제의 건국 지역이 어디였는지에 대한 이전까지의 논쟁은 1990년대 본격적으로 실시된 풍납토성 발굴 결과로 이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 지역으로 귀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 기록으로 확인하지 못한 논쟁거리를 발굴로 확인한 좋은 예이다.

이제 서울 역사는 2천 년이 된 것이다.

 

이렇게 발굴 행위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사실 한편으로 발굴 행위는 전근대사회에서는 없었던 근대적인 행위이자 어떤 목적이나 사업 수행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특히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경우 이런 발굴 행위의 특징이 아주 잘 드러나 있다.

 

서울이 2천 년 동안 우리나라 역사에서 수도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를 보인 시기는 광복 이후라 할 수 있다.

전근대적인 왕조시대와 대한제국 때는 물론이고, 일제강점기까지 서울 지역의 도시화는 더디었다.

이 시기까지 도시화로 유적의 파괴와 멸실은 없었다.

단지 일제강점기의 고의적인 훼손과 파괴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1960년대 도시화의 시작과 함께 서울은 급속도로 변화를 맞이한다.

국가정책으로 실시된 산업·경제 정책의 영향은 물론, 서울 영역의 확장, 강남 개발, 올림픽 개최 등으로 수도 서울의 도시화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그 여파로 잔존하고 있던 여러 가치 있는 유적들의 파괴와 훼손도 있었다.

 

 

고려시대 사찰인 북한산 삼천사 터 발굴조사 지역(사진 출처-출처자료1)

이 글의 출처 자료인 ≪서울의 발굴현장≫은 서울 지역에서 실시된 유적 발굴조사 내용과 함께 그 의미와 가치 등을 정리한 책이다.

발굴조사를 정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시대별로 발굴 유적을 정리하는 방법으로서, 유적의 성격과 시대를 파악하여 선사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 유적으로 구분하여 정리하는 것이다.

둘째는, 발굴 시기별로 발굴 유적을 정리하는 방법으로서 1960년대, 1970년대 등 발굴을 실시한 연도별로 차례차례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두 번째 방법인 발굴 시기별로 정리하였다.

서울에서 유적 발굴조사를 처음 시작한 196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정리하였다.

이렇게 연대별로 발굴 내용을 천천히 살펴본다면 서울의 도시화 과정과 맞물려 그 변화상을 이해하기에 더 적절할 것이고, 서울 역사와 문화의 특성이 좀더 선명히 보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1960년대는 '순수 발굴의 시대'로, 1970년대는 '도시화의 시작과 함께'로, 1980년대는 '복원을 위한 발굴시대'로, 1990년대는 '구제발굴의 전성시대'로, 그리고 2000년 이후는 '발굴을 위한 발굴'로 각각의 연대별로 그 특성을 규정하고 발굴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각 연대별 대표 유적들을 나름대로 선정하여 그 특성과 가치 등을 살펴보고, 발굴 유적 중 흥미로운 유적, 보고 싶은 유적, 그리고 버리고 싶은 유적도 선정하였다.

 

 

서울 한양도성(사진 출처-출처자료1)

1961년 명일동에서 처음 발굴이 실시된 지 55년(이 책에서 인용된 자료 중 마지막 해인 2015년 기준)이 되었다.

아직 6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서울 발굴의 역사는 대도시로서 서울의 형성과 발달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발굴을 보면 서울이 보인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각 연대별로 발굴이 실시된 유적들을 보면 당시 서울의 도시 발달 방향과 관심 분야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한편으론 "서울을 보여주는 스펙트럼이 서울의 발굴현장이다"라고도 할 수 있다.

스펙트럼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민낯이다.

그동안의 발굴을 통해 복원되거나 개축되어 지금 서울에 존재하는 유적들은 서울의 일부분을 구성한다.

설령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것이 서울의 모습이다.

발굴 현장을 통해, 그리고 지금 남아 있는 유적들을 통해 서울 2천 년 역사를 조금 더 이해하고 애정을 갖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구글 관련 자료

2023. 5. 16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