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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발굴의 명암,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

새샘 2023. 5. 12. 23:54

지금까지 1961년부터 2015년까지 과거 55년 동안 서울 지역에서 실시된 발굴 내용을 시기에 따라 살펴보았다.

이런 방법은 서울의 도시화와 맞물려 그 변화상을 이해하기에 더 적절하고 서울 역사와 문화의 특성을 좀더 선명히 보여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각 연대별로 실시된 발굴조사의 특징을 규정하고, 연대별 대표 유적들도 선정하여 보았다.

 

또한 발굴된 유적을 흥미로운 유적, 보고 싶은 유적, 그리고 버리고 싶은 유적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았는데, 이런 구분 방법은 서울 발굴의 명암을 그대로 보여준다.

발굴 조사 이후 각각의 유적들은 발굴 결과에 따라 없어지거나, 복원을 하거나, 새롭게 고쳐진다.

이러한 결과가 지금 서울에 존재하는 유적들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발굴보고서에만 있고 실제로 남아 있지 않아 보고 싶은, 아쉬운 유적들도 있고, 반면 그럴듯하게 복원은 되었지만 '복원을 위한 복원'이 된 유적도 있다.

이것은 그간 이루어진 서울 발굴의 역사에서 아쉬움과 후회를 보여준다.

이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앞으로 발굴조사에 대해서 좀더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서울 지역에서의 발굴은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이 되어야 할까?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위상은 물론 경제적·사회적 위치상 개발에 따른 발굴조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2000년 이후 풍납토성 발굴 결과에 따라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졌고, 서울시의 4대문 안 문화유적 보존방안 지침이 마련되어 실시되고 있는 현실은 일정하게 발굴조사의 방향을 규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 앞으로 서울 지역의 발굴 방향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풍납토성과 한양도성에 대한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의 풍납토성 모습(사진 출처-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3,00110000,11&pageNo=1_1_1_0)

풍납토성은 1990년대에 발굴이 재개된 이후 연구자는 물론 국민들의 관심 속에 지금까지도 국가와 서울시의 후원으로 계속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구제발굴로 시작되어 학술발굴로 발굴의 성격이 전환될 만큼 풍납토성은 학술적으로 서울 2천 년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한양도성 일부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한양도성은 사실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목적이 반영되어 발굴이 적극적으로 실시된 유적이다.

그러나 한양도성은 그런 목적과 상관없이 조선의 수도를 보여주는 상징물로서 꾸준한 발굴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복원을 위한 복원이 아닌 발굴과 역사적 고증을 통해 서울의 역사적 상징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앞으로도 2천 년 서울의 역사성과 문화의 가치를 드러내는 유적이라는 면에서 두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몇 십 년간 계속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서울의 급격한 도시화 과정 속에서 실시된 발굴 유적에 대한 재검토와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한성백제박물관이 몽촌토성에 대한 발굴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석촌동 고분군과 방이동 고분군에 대한 발굴도 추진 중이다.

이 유적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강남개발과 올림픽 개최라는 목적에 따라 발굴이 추진된 대표적인 유적들로서 그 과정 속에 발굴이 급하게 실시되고 사업의 목적에 맞게 실시되었음은 분명하다.

 

이처럼 1970~1990년대에 도시화 사업과 각종 복원을 위해 실시한 발굴 유적에 대한 재검토 또는 재발굴을 통해 혹시라도 놓친 여러 사실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당시 급하게 실시하였던 발굴 내용에 대한 정리와 함께 향상된 현재의 발굴 기술을 통해 유적의 재평가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방이동 제4·5·6호분에는 잠실지구 발굴단이 '1976년 발굴'이라는 글자를 음각한 흰색 플라스틱을 3개 고분에 하나씩 넣었는데, 지금의 후배 고고학자들이 언젠가 이 플라스틱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지막으로, 유적 보존과 사유재산 보호의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서울이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제안하는 것이다.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사업자나 개인의 경우 구제발굴은 상당히 부담스런 과정으로 최근에는 소규모 발굴에 대한 국가 지원도 있기는 하지만 발굴 비용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의 손실 내지 포기까지도 발생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풍납토성이다.

풍납토성 발굴로 아파트 재건축의 꿈은 사라졌고, 재산권 행사도 제한이 있다.

이런 풍납토성 주민과의 갈등과 보상 문제의 발생은 전적으로 국가의 책임이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토성 내부는 제외하고 성벽만을 사적으로 지정한 국가의 실수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다른 지역과는 달리 서울은 대도시라는 특성상 사유재산 행사와 유적 보존을 위한 발굴 실시 과정에서 비용이나 보상 등으로 의견이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상생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구글 관련 자료

2023. 5. 12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