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구석기시대의 문명 튀르키예 "괴베클리 테페" 유적과 동아시아 토기 본문
구석기시대라고 하면 대개 미개한 원시인이 돌을 깨며 사는 무지몽매한 삶을 떠올린다.
하지만 고고학이 밝힌 구석기시대 사람들을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인간의 지혜를 발휘해 적자생존의 자연환경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흔히 문명이 등장한 이후 과학기술에 기반해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는 현재까지를 인류의 가장 급진적인 변화의 시기로 착각할 수 있지만, 600만 년의 인류 역사에서 정작 지난 3만 년 동안만 유일하게 뇌의 크기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은 기억할 만하다.
한편 문명이라고 하면 토기를 사용하며 마을을 일군 신석기시대를 거쳐 거대한 신전과 도시를 세우고, 글자를 사용한 5천 년 전의 4대 문명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 문명은 갑작스러운 발명품이 결코 아니다.
문명은 후기구석기시대 현생인류(슬기사람,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가 등장하고 그들이 천천히 걸어온 과정에서 싹튼 것이다.
마치 겨울에 뿌린 씨앗이 봄에 꽃을 피우듯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일구어낸 사회적인 진화가 발현된 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4대 문명이다.
4대 문명론은 20세기 초반 제국주의가 전세계를 활보하던 때에 만들어졌다.
문명이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발달했고 나머지 지역은 미개하게 살았다는 생각은 몇몇 선진국들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우리의 선입견을 깨부수는 후기구석기시대의 유적이 여럿 발견되고 있다.
튀르키예 Türkiye(터키 Turkey) 남부에서 발견된, 1만 5천 년 전에 만들어진 대형 신전 괴베클리 테페 Göbekli Tepe 유적과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2만 년 전의 토기가 대표적이다.
구석기시대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선뜻 믿기 어려운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1994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약 25년 동안 발굴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몇 십 차례에 걸쳐 연대 측정을 했고, 그 결과 대체로 서기전 1만 3천 년에서 1만 년 사이의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발굴된 유적이 전체의 5퍼센트 정도니 아마 앞으로 연대는 더 올라갈 것이다.
괴베클리 테페는 높이 15미터, 폭 300미터 정도의 넓은 언덕을 인공적으로 쌓아 만들었다.
유적 발굴 과정에서 200여 개의 돌기둥과 돌담을 원형으로 세워 만든 제단이 발견되었다.
각각의 돌기둥은 고도의 석조 기술을 사용하여 T자형으로 세심하게 조각해 세운 것으로, 돌기둥 한 개당 보통 10톤 정도이고 큰 것은 50톤이 넘는 것도 있다.
이런 돌기둥 하나를 세우려면 최소 500여 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근친혼의 위험 없이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적어도 500여 명의 사람이 한 집단을 이루어야 한다는 연구와도 일치한다.
돌기둥에는 황소, 여우, 새 등이 새겨져 있는데 굉장히 사실적이어서 유라시아 초원 일대에서 3천 년 전에 유행한 동물장식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처음 괴베클리 테페 유적을 발견했을 때 구석기시대에 이렇게 고도의 기술로 신전을 만들 리 없다고 생각한 고고학자들은 회의적인 시각을 쉽게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괴베클리 테페에 대한 국제적인 공동연구로 다양한 인물 조각상과 해골이 발견되었고 그 연대도 확정되었다.
2018년에는 명실상부한 인류 최초의 구석기시대 신전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라시아 서쪽에 괴베클리 테페 유적이 있다면 동아시아에서는 세계 최초로 구석기시대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1960년대부터 일본열도 후꾸이(복정福井) 동굴에서 구석기시대의 석기와 함께 토기가 발견되었고, 1990년대에는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구석기시대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또한 그 근처인 중국 쑹화강 중류에서도 1만 년 전후 사용된 가장 원시적인 구석기시대의 토기인 이른바 '원시고토기'가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고고학자들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전까지 토기는 신석기시대가 되어야 등장한다는 것이 고고학계의 상식이었다.
심지어 발견된 곳이 세계 문명사에서도 변방으로 꼽히던 극동 지역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러시아에서 구석기시대의 토기를 처음 보고한 비탈리 메드베데프 Vitaly Medvedev 교수는 1980년대 하바롭스크 근처의 아무르강 유역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인 가샤 Gasya를 발굴할 때 구석기 유물과 함께 자꾸 토기가 출토되어서 고민했다고 한다.
장고 끝에 그 결과를 발표하자 바이칼 호 Lake Baikal 일대에서 발굴을 한 다른 고고학자도 구석기시대 유적을 발굴하다 토기가 나왔는데, 본인이 실수한 줄 알고 발표를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후 1990년대 러시아가 개방되면서 그 연구가 알려졌고 2012년에는 중국의 센런둥(선인동仙人洞) 유적에서 2만 년 전의 토기가 발견되었다는 연구가 ≪사이언스 Science≫에 실렸다.
어느덧 동아시아 지역의 후기구석기시대 토기는 '상식'이 되어버렸다.
한국에서는 구석기시대 지층에서 토기가 발견된 확실한 예는 아직은 없다.
다만 제주도 한경면 고산리에서 구석기시대 토기와 비슷한 토기가 출토된 바가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발견될 것으로 기대한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테라 인코그니타, (주)창비, 2021.
2. 구글 관련 자료
2023. 5. 23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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