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오원 장승업 "방황공망산수도" "귀거래도" 본문
한말 최대의 화가일 뿐 아니라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도 손꼽을 수 있는 화가는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1843~1897)이다.
오원이란 호는 단원과 혜원을 의식해서 "나(오吾)도 원園이다"라고 하면서 장승업 자신이 지었다고 하다.
무소불능無所不能이라고 해서 거의 그리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하는데 다만, 초상 같은 전신 그림은 전하는 것이 없다.
오원에 대해서는 장지연張志淵(1864~1921)의 ≪일사유사逸士遺事≫에 일화가 실려 있다.
이 책은 동시대 사람의 기록이니 믿을 만하다.
오원을 술을 좋아하면서 아주 자유분방해서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음대로 그려주지 않았다고 되어 있지만 비교적 오원 그림은 현재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오원은 소위 불해문자不解文字라고 해서 글자를 몰라 다른 사람이 써준 대필代筆 낙관이 엄청 많다.
오원 그림의 대필자로는 안심전安心田을 비롯하여 향수香壽 정학교丁學喬/丁鶴喬(1832~1914)와 아들인 정대유丁大有의 글씨가 있고, 심지어 낙관도 안심전과 정대유가 대필한 것도 있다.
그런 식으로 일자무식이란 사람이 어떻게 그림으로만 이렇게 유명해졌는가는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오원에 대한 평판은 주로 그 기량에 집중되는데, 오원의 기량이 아주 발군이라는 것이다.
오원의 기량에 감복한 사람으로 월북한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1904~1967)은 "오원이야말로 조선왕조 5백 년에 제일가는 화가다"라고 말했다.
김용준이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그릇과 꽃가지, 과일 따위를 섞어서 그린 <기명절지器皿折枝>는 장지연의 ≪일사유사≫의 일화에 등장하는 낙관도 없는 그림으로서, 대한제국 대신으로서 을사늑약에 대해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던 민영환閔泳煥이 가지고 있던 것이다.
김용준은 이 그림을 방에다 걸어놓고 볼 때마다 감격하면서 감상했다고 한다.
동시대인이었던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선생(1864~1953)의 말에 따르면 그림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오원은 그냥 씩씩하게 그려줬다고 한다.
오원의 초기 스승이 도화서 화원이었던 혜산蕙山 유숙劉淑(1827~1873)이란 얘기가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전하는 바로는 누구한테 배운 적은 없으며, 역관 이응헌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면서 이응헌이 소장하고 있던 수장품, 변모卞某라는 역관에 집에 있던 중국 고화들, 그리고 장안의 명가 집안에 전하는 중국 그림들을 보면서 혼자서 터득했다고 한다.
이렇게 유명 화가한테 배우지도 않고서 이런 기량을 가졌다는 것은 천재인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조선왕조 5백 년에서 손꼽을 수 있는 화가로 3원園(단원檀園 김홍도·혜원蕙園 신윤복·오원吾園 장승업) 3재齋(겸재謙齋 정선·공재恭齋 윤두서 또는 관아재觀我齋 조영석·현재玄齋 심사정)의 여섯 화가 중 하나인 것이다.
오원의 그림은 후기로 갈수록 더 좋아진다.
중국 원나라 말기 사대가의 한 사람인 황공망黃公望(1269~1354)의 산수도를 보고서 그린 <방황공망산수도倣黃公望山水圖>는 병풍과 같은 종축을 사용하면서 화면을 지그재그식으로 구성하여 근중원경近中遠景을 구분하고 있다.
원경의 고산高山은 황공망의 필법을 본받아 피마준으로 부드럽게 표현하고 있지만, 중경의 나무에서는 오원의 힘찬 필력이 여실이 드러난다.
그림에 약간의 과정이 있기는 하지만 그 깔끔함이 돋보인다.
<방황공망산수도倣黃公望山水圖>는 오원의 산수도 가운데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동시에 웅장하면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한다.
이 그림은 근경에 있던 무성한 숲을 중경에 배치하고, 근경에는 수면 그리고 작은 언덕 사이로 다리를 배치했다,
동시에 근경과 중경 사이에도 다리로 연결함으로써 멀리 원경까지 시점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그림에서 특히 아름다운 곳은 원경의 주산主山이다.
산 아래쪽이 안개에 싸인 모습을 아주 섬세한 필치로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화면 왼쪽 위에 "방황자구묵법倣黃子久墨法(황공망의 그림을 본따서 먹으로 그림) 오원장승업吾園 張承業"이란 낙관落款(글씨나 그림 따위에 작가가 쓰고 찍은 자신의 이름이나 호, 그리고 도장)이 있고, 화면 오른쪽 아래에 다시 "오원의황자구의 吾園擬黃子久意(오원은 황공망의 뜻을 이해하고 헤아린다)"란 글이 있다.
<귀거래도歸去來圖>는 중국 도연명陶淵明(365~427)이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으로서, 오원 그림의 일반적인 특징처럼 위아래로 긴 화면에 전경에서 원경으로 급격하게 포개지듯 이어진 구도이다.
열린 사립문 사이로 병아리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담벼락에는 수탉이 올라앉아 홰를 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산의 모양은 황공망이 그리는 법과 비슷하나, 세부 하나하나의 묘사가 좀더 치밀하다.
또한 바람에 나부끼는 가지의 표현 등에서 장승업의 활달한 필력이 느껴진다.
경물景物(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경치)의 연속감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바람에나부끼는 나뭇가지의 표현에서 오원의 활달한 멋을 볼 수있다.
위 두 그림에서처럼 오원은 자신이 즐겨 사용하는 좁고 긴 화면에, 경물을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감상자의 시선이 화면 아래에서부터 위로 단계적으로 옮겨가도록 그렸다.
꼼꼼하고 차분한 필묵법을 사용하여 근·중·원경의 어느 한 곳이라도 소홀함이 없이 완벽하게 그려냈는데, 정교한 선묘와 깔끔한 담채가 그림의 웅장함이 돋보인다.
※출처
1. 이용희,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http://www.towooart.com/oldart/old_korea/jangseungyub/jangsy_1.htm (방황공망산수도)
3. http://www.towooart.com/oldart/old_korea/jangseungyub/jangsy_3.htm(귀거래도)
4. 구글 관련 자료
2023. 5. 25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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