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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7: 고대 의학을 완성한 갈레노스

새샘 2023. 8. 13. 22:15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사진 출처-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A%B0%88%EB%A0%88%EB%85%B8%EC%8A%A4)

 

별다른 의사 자격시험이 없었던 그리스·로마 시대에 의사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의사의 제자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유명세를 갖고 있는 의사들은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자신들만의 학파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교조학파, 경험학파, 방법학파 등 많은 의학파가 난립해 저마다 자신들의 치료 이론이 옳다고 주장했다.

난세에는 영웅이 나오는 법이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한방에 정리하고 우뚝 선 명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 Claudios Galenos(129~199?)였다.
갈레노스는 서양 의학에 가장 오랫동안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 서양 의학의 발달은 곧 갈레노스 의학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어떻게 한 의학자가 세운 이론이 유럽과 이슬람 세계를 오가며 종교와 맞먹는 권위를 1,500년 동안이나 유지했을까?

 

갈레노스와 그의 자상한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아 갈레노스에게 철학과 과학, 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시켰다.

갈레노스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너는 의사를 해야 해" 하는 직접적인 지시보다는 "지난 밤에 꿈을 꾸었는데 아스클레피오스 Asklepios 신이 나타나 너를 의사로 키우라고 하셨다" 하고 자녀의 길을 인도했을 정도로 지혜로운 교육관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의 꿈이었든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꿈이었든, 갈레노스는 16세부터 의학을 공부하며 좋은 스승들에게서 배웠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알렉산드리아와 그리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많은 질병과 치료술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28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검투사 집단의 주치의로 일했다.

그곳에 있던 4년 동안 검투사들의 상처를 '몸으로 들어가는 창문' 삼아 외상과 골절의 치료법을 습득했다.

전임자가 있는 동안 검투사가 60명 사망했는데 그가 재임한 기간 동안에는 단 5명만 사망했을 정도로 그는 열성과 정성을 다해 치료했고, 그 과정에서 이론적인 의학과 실제적인 의학을 겸비해나갔다.

 

32세가 된 갈레노스는 검투사들과 이별하고 대도시 로마에 자리잡았다.

그는 당시 로마에 만연하던 비과학적 진료법을 비판하면서 서서히 이름을 얻어갔다.

아스클레피아데스가 히포크라테스를 비판하면서 주위의 이목을 끌었듯이 갈레노스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는 곧 그것을 찾았는데, 바로 해부학 공연이었다.

검투사들을 치료하면서 얻은 해부학에 대한 지식을 대중에게 선보일 기회였다.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공연은 살아 있는 돼지의 목 부분을 절개한 다음 성대로 가는 신경을 묶어 돼지가 소리를 못 내게 만들었다가 다시 풀어주는 것이었다.

시끄러운 돼지 울음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나는 것을 보고 로마 사람들은 열광했다.

 

이런저런 소문을 통해 갈레노스가 유명해질 무렵 황제의 궁에서 연락이 왔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Marcus Aurelius Antoninus 황제(121~180)가 열병에 시달리는데 황제 주치의들이 손을 못 쓰니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갈레노스의 소문을 접했던 한 귀족이 황제에게 그를 추천한 것이다.

갈레노스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그는 약초를 이용해 황제의 병을 호전시켰고, 이를 계기로 황제의 주치의가 되었다.

갈레노스의 명성이 커질수록 그에 대한 동료 주치의들의 비난과 반감도 커져갔다.

살해 위협까지 받을 정도가 되자 갈레노스는 명예를 포기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갈레노스를 다시 로마로 불러들인 것은 전염병이었다.

165년, 전쟁에서 돌아온 로마 군인들에게 전염병이 돌면서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갈레노스의 노력에도 로마에서 500만 명 이상이 숨졌으며, 그를 주치의로 등용했던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이때 사망했다.

이 전염병은 황제의 이름을 따서 '안토니누스 역병 Antonine Plague'이라 불렀다.

 

갈레노스는 계속해서 황제의 주치의 생활을 이어갔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아들 콤모두스 Commodus가 살해된 후 새로운 황제가 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Septimius Severus(145~211)의 주치의까지 맡으며 남은 생애를 꾸준히 연구하고 글을 쓰며 보냈다.

이 시기에 갈레노스는 고대부터 전해오는 여러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엄청나게 많은 책을 써냈다.

많은 책이 소실된 지금까지도 백여 편이 넘게 전해올 정도다.

그는 몇 십 명의 서기를 고용해 밤낮으로 책을 썼다.

자신이 만든 오리지널 책의 목록 또한 꼼꼼히 기록해 후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도용하지 않도록 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꿈에 나타나 의사가 되라고 했던 갈레노스는 이렇게 위대한 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꿈은 황제의 주치의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다.

그는 고대부터 전해오는 여러 의학의 갈래를 하나로 통합하려 했고, 더 나아가 해부학-생리학-병리학으로 이어지는 의학 이론을 묶어 하나의 커다란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

 

 

○다혈질, 신경질, 멜랑콜리의 기원

 

질병이 생기는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을 '병리학病理學 patholgoy'이라 한다.

갈레노스의 병리학은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을 받아들여 더욱 보강한 것이었다.

히포크라테스가 오늘날 의학의 아버지로 높게 평가받는 것은 갈레노스가 그의 이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갈레노스는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과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을 서로 연결시키고 거기에 더해 사람의 체질 역시 4체액의 영향을 받는다는 '4기질설'을 추가했다.

사람은 4원소가 고르게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특정한 원소가 많아지면 해당하는 체액이 늘어나 그에 따른 기질의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4원소 중 '물' 속성이 강한 사람은 뇌에서 분비하는 점액이 증가하는데, 이런 체질을 '점액질'이라 불렀다.

갈레노스는 점액질의 사람은 침착하고, 신뢰할 만하고 공감 능력이 있는 특징이 있다고 보았다.

두 번째로 '공기' 속성이 강한 사람은 심장에서 피를 많이 만들어 이것이 지나치면 '다혈질'이 된다.

화가 나서 숨을 거칠게 들이마시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면 될듯하다.

하지만 다혈질이 잘 조절되는 사람은 외향성, 사회성이 좋다고 보았다.

세 번째로 몸 안에 '불' 속성이 강하면 간에서 황담즙의 분비가 늘어나 황달이 오게 된다.

황담즙이 과도한 사람은 화를 잘 내는 '신경질'이 늘고, 잘 조절된다면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과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흙' 속성이 강한 사람은 비장에서 흙담즙의 분비가 늘어나 얼굴이 까매진다.

흙 위에서 장시간 일을 하는 농부의 얼굴이 까맣게 변하는 것이 그 예다.

햇볕에 피부가 탄 것일 텐데, 당시에는 흙에서 일하니 흙의 속성이 강해졌다고 본 것이다.

흙담즙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우울한 기질(멜랑콜리 melancholic)'이지만, 이것이 잘 조절되면 창조적이고 사려 깊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갈레노스가 이처럼 네 가지 체액과 그에 따른 사람의 특성을 연결해 설명했다.

오늘날 혈액형으로 보는 성격처럼 당시 사람들도 자기의 성격을 판단해 자신이 어떤 체액이 많은지 유추해 보았을 것 같다.

오늘날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다혈질, 신경질, 멜랑콜리란 단어들이 갈레노스의 4기질설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놀랍다.

 

 

○갈레노스가 인체 시스템을 완성하다

 

갈레노스의 혈액 및 영양 순환 이론(사진 출처-출처자료1)

갈레노스는 인체해부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당시 로마법은 인체 해부를 금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과 구조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돼지와 원숭이를 해부했다.

이를 통해 후두와 기관지의 구조를 연구했고, 후두가 목소리를 만드는 발성 과정을 알아냈다.

앞서 언급한 해부학 공연은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이뤄낸 것이다.

갈레노스는 해부학에 관련된 책을 16권이나 썼다.

그의 꼼꼼한 해부학 연구는 16세기까지 서양 의학을 지배했다.

하지만 이후 인체 해부가 가능해지면서 오류가 밝혀짐으로써 결국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Andreas Vesalius(1514~1564)라는 걸출한 후배 의사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

 

질병 원리를 연구하는 것이 병리학, 인체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보는 것을 해부학이라 한다면, 건강한 인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연구하는 것을 생리학이라 한다.

즉 생리학이란 생명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위 그림을 보면서 갈레노스 생리학의 핵심인 혈액 영양 순환 이론을 5단계로 정리해보자.

 

1.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이 장에 도달하면 영양분은 간으로 이동한다.

2. 간에서는 자연 정기 natural spirit의 도움을 받아 영양분을 혈액으로 만든다.

3. 간에서 만들어진 혈액은 인간의 오른쪽에 있는 심장으로 이동한 후 그것과 연결된 정맥을 따라 온몸으로 흐른 뒤 소실된다(심장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4. 오른쪽 심장에 남아 있는 혈액 중 일부는 심장 벽 사이의 보이지 않는 구멍을 이용해 왼쪽 심장으로 이동한다.

5. 왼쪽 심장에 도달한 혈액은 두 군데로 이동한다.

(1) 호흡을 통해 폐로 들어온 생명의 정기 vital spirit(프네우마)와 섞여 동맥을 통해 전신에 공급된다.

(2) 뇌로 이동해 그곳에서 운동의 근원인 동물의 정기 animal spirit와 섞인 후 신경을 통해 분배된다.

 

갈레노스의 생리학 이론에서 세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첫째, 심장의 펌프작용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갈레노스는 혈액이 밀물처럼 심장으로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심장 밖으로 빠져나간다고 설명했다.

둘째, 혈액순환이 반영되지 않았다.

심장에서 나와 몸의 말단부로 이동한 혈액은 그곳에서 사라져버린다.

셋째, 갈레노스의 이론에서도 동맥과 정맥은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흐르는데, 특별한 점은 그가 동맥과 정맥이 만나는 두 군데 지점을 추가했다는 것이다.

하나는 뇌 아래쪽에 동맥과 정맥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는 괴망 rete mirable이라는 곳이고, 또 하나는 오른쪽 심장과 왼쪽 심장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구멍이었다.

갈레노스는 고대 의학을 면밀히 검토하고 동물 해부를 통해 확인함으로써 완벽한 혈액순환 이론을 완성했다고 자신만만했을 것이다.

그러나 '몸의 말단부에서 사라지는 혈액'과 '동맥, 정맥의 연결 부위'에 대한 내용이 결정적으로 그의 이론을 완전히 뒤엎을 수 있는 약점이었음이 1,500년이나 지난 뒤에 밝혀졌다.

 

갈레노스 이론이 천 년 넘는 긴 시간 동안 서양 의학을 지배한 것은 그의 이론이 위대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기독교 이론을 절묘하게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갈레노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은 목적 없이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믿었다.

인체의 모든 장기들이 만들어진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목적론'이란 바로 신의 목적이다.

갈레노스는 창조자가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우리 몸의 각 기관을 설계·창조했고, 각 기관들은 그 목적에 맞는 기능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의사의 역할은 각 장기의 기능을 연구해 신의 의도를 깨닫는 것이다.

그가 생리학에서 주장한 세 가지 정기(자연, 생명, 동물)는 기독교 삼위일체설(성부, 성자, 성령)의 관념을 정확히 뒷받침했다.

이런 논리적인 유사성을 바탕으로 갈레노스의 의학 사상은 중세 스콜라 철학(기독교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려 한 철학)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이슬람 세계로 전파되었다.

'갈레노스=기독교'라는 공식이 만들어지면서 갈레노스 의학은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갈레노스 이론에 반대하는 것은 기독교를 반대하는 셈이 되어버렸다.

갈레노스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런 분위기는 더욱 심해져 중세 기독교 시대가 찾아오면서 과학과 의학은 짙은 어둠을 맞게 된다.

중세의 암울한 상황에서 의료인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것은 유럽을 떠나 이슬람 지역에서 과학적 의학을 이어가는 것, 아니면 유럽에 남아 수도원에서 소극적인 의학 연구를 하는 것이었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구글 관련 자료

2023. 8. 1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