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3부 중세 - 8장 유럽의 팽창: 중세 전성기(1000~1300)의 경제, 사회, 정치 5: 정치와 정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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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3부 중세 - 8장 유럽의 팽창: 중세 전성기(1000~1300)의 경제, 사회, 정치 5: 정치와 정부

새샘 2023. 9. 16. 22:59

중세 전성기(1000~1300)의 유럽 국가와 십자군 원정로

 

중세 전성기의 엄청난 사회적·경제적 변화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정부와 정치가 등장했다.

중세 초기에는 국왕이나 황제와 같은 1인 군주가 국가원수가 되는 군주정君主政 Monarchy이 서유럽인에게 알려진 유일한 정부 형태였다.

도시는 규모가 작았고 통상 주교나 왕이 지배했다.

왕국 역시 규모가 작았고, 중세 초기에는 롬바르드족 Lombards, 서고트족 Visigoths, 서색슨족 West Saxons, 잘리어 왕조 프랑크족 Salian Dynasty Franks 같은 특정 부족 왕국들에게나 군주정이 적합한 정부 형태로 간주되었다.

 

8세기와 9세기를 거치면서 이들 부족 왕국은 대부분 사라졌고, 그 대신 큰 규모에 강력하고 넓은 영토에 기반을 둔 왕국이 잉글랜드 England와 카롤링거 제국 Carolingian Empire에 등장했다.

잉글랜드에서는 웨식스(서색슨) 왕국 Kindom of Wessex이 9세기의 바이킹 침략에도 살아남아 잉글랜드 연합왕국의 단일한 지배자로 떠올랐다.

독일 Germany에서는 오토 왕조 Ottonian dynasty(독일어 Ottonen)가 10세기에 동프랑크 지역의 유일한 왕조로 등장했다.

그러나 프랑스 France, 카탈루냐 Catalunya, 북부 이탈리아 Northern Italia에서는 카롤링거 왕조의 몰락과 더불어 왕권이 사실상 소멸되었다.

그 결과 초래된 권력의 공백 속에서 두 개의 새로운 정치권력 구조가 구 카롤링거 제국 핵심부에 서서히 등장했다.

봉건 공국封建共國 feudal principality과 자치도시自治都市 commune가 그것이다.

 

 

○도시 정부

 

중세 초기의 왕들은 도시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고, 10세기에 강력한 군주국이 살아남은 지역(예를 들어 잉글랜드와 독일)에서 왕들은 새로운 도시 건설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카탈루냐, 북부 이탈리아처럼 9세기 말과 10세기에 왕권이 몰락한 지역에서는 10세기와 11세기에 왕권의 통제가 없는 상황에서 자치도시가 발달했다.

 

우리는 이미 중세 전성기에 도시를 성장시킨 전반적인 경제적 요인—지방의 점증하던 농업적 부, 인구 증가, 지역 및 원거리 교역망의 발전 등을 살펴보았다.

이런 요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했다.

지방 귀족도 그런 요인에 끌려 도시로 향했다.

특히 도시가 인접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대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지방 귀족들은 성장하는 도시의 경제적·정치적 삶에 참여했다.

특히 북부 이탈리아에서 귀족의 도시 이주가 많았는데, 그들은 지방에 거주할 때와 마찬가지로 기사·하인·보좌역에 둘러싸인 채 요새화된 도시 성채에 거주했다.

귀족으로 말미암아 도시의 정치생활에는 귀족적 성격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하지만 귀족은 명예를 위해 복수를 서슴치 않는 폭력적 문화를 도시생활에 도입하기도 했다.

13세기 이탈리아의 경우 귀족의 폭력을 통제하기 위해 몇몇 도시(피렌체 Firenze 등)에서는 귀족의 정부 공직 취임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가문 간의 대립으로 말미암은 불안정한 기류는 계속 이어졌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도시 공화정부의 전통을 약화시켰고, 중세 말기에 들어 밀라노 Milano의 비스콘티 Visconti 가문이나 피렌체의 메디치 Medici 가문 같은 유력 귀족 가문이 등장하는 길을 열었다.

그들의 왕조적 지배는 도시 정치의 민주적 형식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이었다.

 

12세기와 13세기에 서유럽 대도시의 규모가 얼마나 커졌는지를 고려한다면, 도시 정부 제도가 지극히 비체계적이고 임시방편적이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왕이나 강력한 봉건 영주의 지배를 받던 도시는 종종 특별한 자유 헌장—도시의 사법권을 규정하고 도시 자치정부의 기본 구조를 수립했다—을 받곤 했다.

북유럽 도시에는 통상 도시의 유력 시민 가운데서 선출된 시장과 위원회가 있었다.

다른 도시(로마 Roma 등)에는 교황 같은 강력한 지배자가 있어서 독립적 도시 정부 수립 노력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그러나 북부 이탈리아에는 소수의 유력한 영주들—주로 주교들—만이 남아 있었고, 그들은 주민의 도시 자치 정부 구성 요구를 지지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탈리아의 도시 거주자들은 정부의 각종 제도를 직접 만들어내야만 했다.

 

12세기의 북부 이탈리아 도시들은 유력자 중에서 선임된 행정관에게 정부를 공식적으로 위임했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시민협의체—코뮌 commune—가 행정관과 더불어 다양한 정부 기능을 담당했다.

심지어 코뮌 자체도 현저히 과두적寡頭的인 성격(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된 정부 형태)을 갖고 있었다.

13세기에 사회계층화가 심화되면서 많은 도시들에서 유력 지배층과 대중적 당파—그들은 도시 정부와 길드 guild를 통제하는 권력구조에서 배제되어 있다고 느꼈다—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도시는 포데스타 podestà로 알려진 국외자—대개 법률 교육을 받은 귀족으로, 제한된 임기 동안 사실상의 독재관으로 지배했다에게 의지하곤 했다.

그 밖의 도시들은 베네치아 Venezia를 본받아 민중적 공화정의 외관마저 벗어버린 채 공공연히 과두정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1300년에 이르면 원칙적으로 공화정을 표방한 도시들도 사실상 과두정으로 옮아갔다.

공직의 임기는 점점 늘어났고 도시 정부의 사법적 권리는 확대되었다.

직무에 대한 왕조적 계승의 전통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중세 말기에는 도시 공국이 등장하게 되었다.

 

※출처
1. 주디스 코핀 Judith G. Coffin·로버트 스테이시 Robert C. Stacey 지음, 박상익 옮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상): 문명의 기원에서 종교개혁까지, Western Civilizations 16th ed., 소나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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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9. 16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