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23. 12/3(일) 1195차 인천 강화 정족산-전등사 본문

산행트레킹기

2023. 12/3(일) 1195차 인천 강화 정족산-전등사

새샘 2023. 12. 5. 17:03

산행로: 구래역 2번-(택시)-전등사 동문 주차장-전등사 동문-정족산성길-정족산(222m)-정족산성길-전등사 남문길-대웅보전-정족산사고지-전등사 남문-전등사 남문 버스정류장-(버스)-구래역 버스정류장-구래역 4번 엉클짱 왕해물찜탕(4km, 2시간 40분)

 
산케들: 大仁, 如山, 民軒, 大谷, 牛岩, 長山, 元亨, 慧雲, 回山, 새샘(10명)
 
 
섣달 첫 번째 산행지 인천 강화 정족산과 전등사는 산케들이 처음 가는 곳.
올 들어 처녀산행인 곳이 제법 되는데 이는 새로운 코스를 개발하려는 원형 대장의 노고 덕분이다.
 
예전 강화도를 올 때는 언제나 버스를 대절해서 왔는데 오늘은 지하철로 이동.
김포공항역에서 김포골드라인(김포도시철도)으로 갈아타서 구래역에서 내린다.
2019년 개통된 이 경전철 노선은 김포공항역에서 양촌역까지 모두 10개이고 구래역은 9번째 역.
김포골드라인 Gimpo Goldline이란 이름은 김포의 황금 들녘을 달린다는 뜻이라고 한다.
 
구래역 2번에서 만난 산케는 모두 열 명으로 3주 연달아 두 자리수 인원을 기록.
다음 주까지 연 4주 두 자리수 인원을 기대하는 건 과욕일까?
올해 연 3주 두 자리수 인원을 기록한 적이 있는지 찾아보니 5월 셋째 주~6월 첫 주까지 20명-12명-20명이었는데, 이는 5월 셋째 주 설악산 소풍과 6월 첫 주 김천 직지사 대동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9시 57분 구래역 밖으로 나오니 맑은 날씨에 바람도 별로 없고 낮 기온이 영상 3~4도(최고 4.4도)로서 산행에 좋은 날씨!
구래역을 나왔을 때 두 눈이 휘둥그레 떠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다름아닌 주변의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 때문.
서울 상계동 일대를 연상시키는 '김포한강신도시'란 이름의 이 아파트 단지는 2010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2019년 12월 현재 인구는 약 15만 6천 명에 달한다.

 
구래역 버스정류장에서 전등사행 70번 버스를 타려고 갔더니 버스 도착 시각 알림 전광판에 40분이라 뜨면서 몇 분이 지나도 그 숫자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하는 수없이 택시 3대를 나눠 타고 25분 후인 10시 41분 전등사 동문 주차장 도착하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주차장 식당가 끝에 전등사 가는 길 푯말을 따라...

 
위쪽에도 주차장이 있다. 

 
전등사 동문이 보인다. 이 문은 정족산성의 성문이기도 하다.

 
동문을 지나 성 안에서 바라보니 문 오른쪽의 무성한 솔숲이 멋지다. 
전등사와 정족산은 보기 드문 울창한 솔숲을 자랑하고 있다.

 
동문 안에서 바라본 정족산

 
10시 57분 동문 왼쪽의 등산로 푯말을 따라 정족산성길 산행 출발.
정족산성鼎足山城의 정식 명칭은 강화江華 삼랑성三郞城이다.
삼랑성이란 이름은 단군의 세 아들(삼랑)이 성을 쌓았다는 전설 때문에 붙었다.
성이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려가 1259년 삼랑성 안에 궁궐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전에 이미 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곽 축조 형태에서 삼국시대 성의 구조를 찾을 수 있어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으로 추측된다.
정족산성은 정족산 사고를 수호할 목적으로 조선 중기 이후 설치된 성으로 당시 군사 주둔지인 정족진鼎足鎭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강화 정족산성진지'란 이름으로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길이 2300미터에 달하는 사적 삼랑성은 고종3년(1866) 병인양요 때 장수 충장공忠莊公 양헌수梁憲洙(1816~1888)의 지휘로 조선군이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을 해온 160여 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것으로 유명하다.

 
정족산성 동쪽 길

 
11시 6분 북쪽 산성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바라본 북쪽 풍광.
오른쪽 마을은 강화군 길상면, 가운데 푸른 물은 길정저수지, 저수지 왼쪽 뒤는 진강산(441m)이고 바로 뒤는 덕정산(320m)인 것 같다.

 
북쪽 산성길을 따라가면 정면으로 정족산 정상이 보인다. 

 
산성을 보수중이라 정상 부근이 막혀 있어 길 왼쪽 아래로 돌아 간다. 

 
11시 27분 북쪽 산성길과 서쪽 산성길의 교차점에 위치한 정족산鼎足山(솥발뫼: 세발 달린 가마솥 모양의 산) 정상 도착.
해발고도 222m의 정족산에는 장소와 높이를 알리는 표석 같은 것은 전혀 없고 '삼랑성 정상'이란 이정표만 딸랑 서 있을 뿐이다.

 
정족산 정상 돌무지 위에서의 인증샷

 
정족산 정상을 지나 서쪽 산성길을 따라 하산

 
서쪽 정족산성길을 내려오다가 강화평야(?)가 훤히 보이는 조망점에서 남서쪽을 조망.
아래 두 번째 사진에서 평야 중앙의 십자가 모양의 수로가 길정천, 맨 뒤에 보이는 능선이 마니산(472m)이다.

 
12시 6분 가장 양지 바르고 바람이 거의 없는 넓직하고 평탄한 풀밭에서 점심과 정상주를 즐긴다.

 
김밥과 과일, 그리고 막거리로 배 채운 다음 남쪽 정족산성길을 따라 가다가 전등사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곳을 발견하고 정족산(왼쪽 끝 봉우리)과 전등사를 함께 담은 조감 사진을 찍었다. 

 
한가운데 큰 팔작지붕 건물이 대웅보전.

 
남쪽 정족산성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바라본 동남쪽 풍광.
정면의 나지막한 동산 오른쪽 뒤에 보이는 저수지들이 장흥저수지이고, 그 뒤에 보이는 가로로 길게 뻗은 물줄기는 인천 강화군과 김포시 사이로 난 남북으로 길고 좁은 수로인 강화해협이다.

 
12시 35분 전등사 남문길로 들어서서 왼쪽의 불전 구역으로 향한다.
가는 도중 길 왼쪽에 서 있는 전등사 최고령 나무 700살 느티나무는 높이 24m에 둘레 6.5m에 이른다.

 
최고령 느티나무 바로 뒤 한 단 높은 곳에 서 있는 나무도 높이 20m에 350년 묵은 느티나무.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의 말사인 강화 정족산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81년 아도화상阿道和尙['화상'이란 수행을 많이 한 승려를 높여 이르는 말]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창건 당시 이름은 진종사眞宗寺였다.
이게 사실이라면 올해가 창건 1642년이므로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이 된다.
 
지금의 전등사란 이름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고려 충렬왕 때인 1282년 왕비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시주하면서부터였다.
전등傳燈이란 말은 '불법의 등불이 전한다'는 뜻으로 법맥을 받아 잇는 사찰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금당 앞마당으로 들어가는 1층 통로를 가진 대조루는 불이문에 해당하며, 출입 계단 오른쪽에 서 있는 대조루 건물 색깔과 비슷한 붉은색으로 물든 큰 단풍나무가 인상적!

 
조선 광해군 때인 1621년 중건된 현 강화 전등사의 금당인 대웅보전(맨 오른쪽)은 앞면 3칸 옆면 3칸이고, 지붕은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오른쪽부터 차례로 대웅보전, 관음전, 약사전, 명부전 순. 

 
대웅보전 앞에서 인증샷.
보살님이 찍어주면서 우리 표정을 보고선 찍기 직전 "이게 최선입니까?"하는 멘트에 모두들 크게 웃을 수밖에는!

 
인터넷에서 찾은 대웅보전 처마 밑 네 모퉁이에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 裸婦像.
(출처-위키백과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468730&memberNo=2468247)
이 목각상은 모두 4개로서 대웅보전 중수를 맡은 목수의 재물을 가로챈 주모의 모습을 조각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재물을 잃은 목수가 주모의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발가벗은 모습을 조각하여 추녀를 받치게 했다는 것으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세 곳의 처마 밑에서는 두 손으로 처마를 떠받치며 벌을 받는 모양새인데 비해 한 귀퉁이에는 한 손으로만 떠받치고 있어 우리 선조들의 재치와 익살을 느낄 수 있는 목각상이다.  
반면 나부가 아닌 원숭이 목각상이란 주장도 있다.
그것은 석가모니는 전생에 원숭이 500마리를 거느린 원숭이 왕으로서 무리를 안전하게 지키고자 자신을 희생한 일이 있어 원숭이들이 석가모니를 향한 끝없는 존경심을 표현하려고 원숭이 네 마리가 처마를 받들어 지붕을 들고 있게 배치했다는 것.

 
대웅보전 앞마당 가운데 서 있는 높이 40m의 400살 된 느티나무는 광해군 때인 1615년 화재로 타버린 대웅전을 재건하면서 심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2시 55분 마지막으로 전등사 서쪽의 가장 높은 곳인 해발 150m 정족산사고지를 찾았다.
이곳은 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인 장사각藏史閣과 왕실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璿源寶閣이 있던 곳이다.
조선은 초기부터 조선왕조실록》을 한양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등 네 곳에 보관하다가 임진왜란 때 유일본으로 남은 전주사고본을 묘향산사고로 옮겼다가 다시 마니산사고를 거쳐 1660년 이곳 정족산사고로 옮겼고, 사고 오른쪽에 왕실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을 같이 지었다.
1931년 간행된 조선고적도보》에 정족산사고 건물이 수록된 것으로 보아 이후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록은 일제강점기 때 경성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1998년 정족산사고의 장사각과 선원보각을 복원하여 전등사가 보관하고 있던 옛 현판을 다시 달았다.

 
전등사를 빠져나가는 길 오른쪽의 무설전 앞에 활짝 핀 하얀 억새꽃에 유난히 눈길이 간다.

 
전등사 남문 나가는 길 양쪽으로 쭉쭉 뻗은 솔숲.

 
남문길의 단풍나무, 대나무, 그리소 소나무.

 
1시 17분 전등사 남문 주차장 매표소

 
전등사로 찻길의 전등사 남문 버스정류장에서 70번 버스를 기다린다.
올 때와는 달리 3분 후 버스가 도착하여 1시 28분 구래역으로 출발.

 
버스 안에서 검색한 구래역 4번 출구 가까이에 있는 맛집인 엉클짱 왕해물찜탕 건물에 도착해서 2층으로 올라간다.

 
민헌이 흔쾌히 사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왕해물찜을 앞에 두고 성공적인 오늘의 정족산-전등사 처녀산행을 건배하는 열 산케들!

2023. 12. 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