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외계인으로 오해받은 편두머리 귀족들 본문
미확인비행물체(UFO)를 타고 온 외계인을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상상하는가?
이제까지 외계인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외 없이 뾰족한 대머리 형태를 한 생명체를 떠올린다.
사실 이런 이미지는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의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놀랍게도 2000년 전 유라시아 초원에서 발흥한 유목민 흉노에서부터 시작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미지다.
흉노는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라는 것을 길쭉한 머리 형태로 표현했다.
우리나라의 가야와 신라에서 저 멀리 서유럽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유목문화의 흐름, 특권을 대물림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바로 편두扁頭 artificial skull deformation에 숨어 있다.
○인간의 진화가 준 선물
편두, 문신, 성형수술 등 인간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물론 건강에도 전혀 도움되지 않는 신체 위해 행위를 대담하게 실행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남들게 다르게 만들어 만족을 얻고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편두란 갓난아기 때 머리뼈(두개골頭蓋骨)에 나무를 대고 헝겊으로 감아서 머리통의 형태를 바꾸는 풍습을 말한다.
신체의 가장 중요한 부위인 머리를 변형시키는데다 머리뼈가 덜 발달한 시기에 해야 하기 때문에, 편두는 다른 신체 변형 습관보다 더욱더 사람의 신분, 집단을 나타내기에 적합했다.
수많은 신체 변형 전통 가운데서도 편두는 고고학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주제다.
문신의 경우 피부에 새기기 때문에 미라가 아닌 이상 고고학 유물로 발견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반면 편두는 인간의 뼈, 그중에서도 가장 잘 남아 있는 부분 중 하나인 머리뼈에 그 흔적이 직접적으로 남기 때문에 비교적 발견이 쉽다.
다만 무덤에서 나온 사람뼈는 몇 천년 동안 토압으로 찌그러진 상태로 발견되기 때문에, 실제 편두의 흔적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편두는 인간의 진화가 준 선물이다.
현생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하고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많은 정보를 담아야 하는 머리뼈의 용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인간의 출산은 목숨을 건 위험한 과정이 되었다.
머리뼈가 지나치게 커져 출산할 때 어머니의 좁은 산도産道(출산길)를 나오기 어려워진 탓이다.
그래서 인간 태아는 아직 붙지 않은 머리뼈가 서로 흩어져 길쭉한 형태로 산도를 통과하는 식으로 진화했다.
그 덕택에 인간은 태어난 뒤에도 몇 년 동안 머리뼈가 완전히 붙지 않은 상태로 살았고, 이 시기에 나무나 헝겊을 이용해 머리뼈의 형태를 변화시킨 것이다.
나아가 사람들은 편두문화를 통해 자기 부족이나 신분을 상징하는 독특한 머리 형태를 만들어냈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약 2000년 전 변한의 사람들이 편두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한참 전인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 중반 러시아의 고고학자들이 두만강 건너편 한러 국경 지역에 있는 무덤을 발굴했다.
약 8000년 전 유적인 보이스만 Boisman 조개무지(조개더미 또는 패총貝冢)에서 편두를 한 40대 여성의 머리가 나왔다.
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무언가 특별했다.
당시 평균 수명인 20대 중반보다 훨씬 오래 산 40대였고, 무덤의 봉분도 제법 크게 덮혔으며 유물도 제사와 관련된 것들이 아주 많이 나왔다.
고고학자들은 이 편두 여인이 신석기시대 보이스만 바닷가에 살던 우두머리 또는 샤먼 shaman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만약 '하늘의 대리인'인 샤먼이 맞다면 이 여인은 세습 샤먼, 즉 태어났을 때부터 샤먼이 될 것으로 점지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편두는 아주 어릴 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이스만 조개무지보다 더 북쪽에 있는 아무르강 Amur River(헤이룽지앙黑龙江/흑룡강黑龍江) 유역에서는 편두를 한 신상神像이 발견되었다.
아무르강 중류에 위치한 콘돈 Kondon이란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이 신상은 다소 추상적이긴 해도 간결하면서 조화로운 여성의 흉상胸像(토르소 torso: 머리와 팔다리 없이 몸통만으로 된 조각상)을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아무르의 비너스 Venus of the Amur'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 여신상은 현재 이 지역에 사는 나나이족 Nanai이나 울치족 Ulchi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특이하게도 이마가 뒤로 심하게 꺾여 있다.
이마를 납작하게 누른 형태의 편두를 한 것이다.
함경북도 서포항 유적지에서 발견된 6000년 전 신석기시대 신상도 비슷한 편두 형태의 토제 인형이었다.
신석기시대에 동해안을 따라 한반도에서 아무르강까지 이어지는 환동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편두를 한 샤먼이나 신을 하늘과 닿을 수 있는 상징으로 여기고 숭배했던 것 같다.
어디 한국뿐인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도 편두를 신의 상징으로 숭배했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2008)의 크리스탈 해골의 비밀이 편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몸에 직접 표현한 흉내낼 수 없는 상징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의복, 장신구, 문신 또는 거대한 건축물로 자신의 지위를 표현했다.
편두 역시 지위나 신분을 표현하는 주요 도구였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머리를 이상하게 변형하는 것을 좋아했을까.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가져갈 수 없는 자신만의 특권적인 지위를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신분증이나 증명이 없었던 시절에 편두는 문신과 함께 각 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지울 수 없는 상징의 구실을 했다.
다른 상징물과 편두의 가장 큰 차이는 편두는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는 일종의 대물림이라는 데 있다.
편두는 갓난아이 시절에만 만들 수 있으니, 특권 계급의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을 세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계급이 세분화될수록 편두 역시 더욱 고도로 발달했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 Egypt나 수메르 Sumer 문명의 그림에 등장하는 제사장들은 대부분 삭발을 하고 머리는 달걀 끝처럼 뾰족하게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고대 귀족과 왕들은 자신들이 태양의 자손임을 내세우며 평민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특이한 머리 형태를 고집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편두가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산한 데에는 2300년 전 초원에서 발흥한 흉노의 역할이 컸다.
흉노와 같은 기마민족이 편두를 더욱 선호한 것은 그들의 생활습관과 관련이 있다.
모든 것을 말 위에 싣고 달리는 사람들이니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계급을 표시하고, 머리뼈의 형태로 소속을 표현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대부분 삭발을 한 것도 머리 형태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유라시아를 호령하던 흉노와 훈족의 독특한 머리 형태는 다른 정착민이 흉내낼 수 없는 그들만의 상징인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흉노의 멸망으로 촉발된 3~5세기 훈족의 대이동 단계에 들어서면서 편두의 역사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서양의 게르만족 Germanic 이동을 촉발시킨 훈족의 대이동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에 유라시아 전역으로 황금과 발달된 철제 마구가 널리 확산되었다.
훈족의 문화가 유라시아 전역으로 퍼지면서 편두는 중앙아시아 일대를 거쳐서 유럽까지 전해졌다.
최근 스위스 둘리 Dully에서 5세기쯤으로 추정되는, 편두를 한 몽골인 계통 여인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훈족의 대이동 시절에 이 지역으로 넘어온 부르군트족 Burgund이었다.
유럽에 '순수한' 유럽인들만 살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발견이라 많은 관심을 끌었다.
한국에서도 변한과 진한에서 편두가 널리 유행했고,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고분에서 대량의 편두가 발견되기도 했다.
또한 신라 기마인물형토기에 묘사된 기마인도 머리가 뾰족하게 묘사되어 있어 편두를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기는 신라와 가야에 북방의 다양한 초원문화가 유입되던 시점이었으니, 당시 유라시아 일대에서 널리 유행하던 귀족이나 전사들의 편두 풍습이 한국에도 전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편두를 한 사람들을 곧바로 외래 계통이라고 간주하기는 어렵다.
편두 자체가 워낙 유라시아 일대에 널러 퍼져 있었기 때문에 특정 민족을 상징하지 않으며, 각 집단의 문화 또는 머리에 쓰는 모자의 형태에 따라 편두의 형태도 다양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신라와 가야의 귀족과 왕족 고분에서 다양한 북방계 유물과 함께 편두가 발견된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금관으로 완성되다
흉노의 영향을 받아 왕족들이 편두를 하는 나라들에는 또다른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금관이나 금동관을 쓴다는 점이다.
신라와 금관과 비슷한 유물이 발견된 아프카니스탄 Afghanistan의 틸리아 테페 Tilia Tepe에서도 편두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흑해 연안에 살며 금관을 썼던 사르마트인 Sarmat들도 편두를 했다.
편두머리와 금관은 묘하게 잘 어울린다.
금관을 쓸 수 있었던 사제(샤먼)는 어릴 때부터 선택되어서 편두를 했다는 뜻이다.
설사 누군가가 정권을 찬탈하고 금관을 훔쳐간다고 한들 좁은 머리가 아니고서는 금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권력을 세습하기로 약정되어 편두머리를 한 사람들만 금관을 쓸 수 있었기에 편두를 권력 세습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신라 역시 박·석·김의 세 성씨가 교대로 왕위를 계승하다가 김씨가 독점하전 시기부터 금관이 널리 사용되었다.
신라와 가야에서는 초원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강력한 유목전사였던 흉노의 상징인 편두도 함께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특권층을 대표하는 금관의 사용이 더해지면서 편두는 신라와 가야의 왕권과 귀족을 상징하게 되었다.
과거 유목전사의 상징이었던 편두를 현대에 들어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독특한 머리 형태를 한 사제와 하늘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내용의 유물을 두고 '고대 외계인들이 UFO를 타고 와서 인간들을 통치했다'라는 식으로 곡해하는 것이다.
미국 드라마에서 옥수수머리 corn-head를 한 외계인들이 등장한 이후 외계인의 상징으로 잘못 알려진 탓도 있다.
신체 변형이라는 풍습은 당시 사회나 역사의 맥락을 문화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무척 잔인하고 징그럽게 보일 수 있다.
외견상 기이하게 느껴지는 편두를 보면서 과거 사람을 미개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자신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해 표현하려는 현대인의 모습과 무엇이 그리 다를까 싶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성형수술은 계속 진화하고 신체 변형의 정도 또한 심해지고 있다.
지금은 코를 높히거나 가슴을 키우는 수술은 물론이요, 의료용으로 개발된 양악수술마저도 미용의 목적으로 그 용도가 바뀌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발가락과 다리뼈는 물론 척추에도 심한 무리가 가는 하이힐 high heels, 나아가 킬힐 stiletto heels(kill heels)도 유행한다.
이제 편두 풍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다른 신체 변형과 달리 편두는 유아기 때에 만들어야 하며, 굳이 편두가 아니어도 다양한 헤어스타일로 개성 표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고대 전세계에 퍼져 있던 편두는 다른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기득권을 유지하고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욕망이 표출된 풍습이다.
나만 누리는 게 아니라 대대손손 후손들에게 물려주고자 했다.
지금은 편두 대신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의 권력이나 부를 잇는다.
어쩌면 부와 권력의 세습을 상징하는 편두 전통은 방법만 바뀐 채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테라 인코그니타, (주)창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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