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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은 이정 "풍죽도" "우죽도" "통죽도" "야매도" "이금시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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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은 이정 "풍죽도" "우죽도" "통죽도" "야매도" "이금시고"

새샘 2024. 1. 12. 19:33

<마치 그분의 자화상을 보는 것만 같네>

 

이정, 풍죽도, 17세기 초, 비단에 수묵, 115.7x53.2cm, 미국 Mary and Jackson Foundation(사진 출처-출처자료2)

 

조선시대 도화서에서 화원을 뽑는 시험을 취재取材라고 하는데 취재에서는 대나무 잘 그리는 것을 제일로 쳤다.

두 과목을 선택하여 시험을 치르면서 대나무에서 통通을 받으면 5점이고, 산수는 4점, 인물과 영모는 3점, 화초는 2점이었다.

그만큼 대나무 그림이 어렵다고 본 것이다.

 

사실 먹으로 그린 대나무 그림(묵죽墨竹)은 누구나 그럴듯하게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잘 그리기는 매우 어렵다.

몇 가닥 줄기를 끊어서 치고는 대나무 개介 자와 아비 부父 자를 쓰듯 댓잎을 겹쳐서 표현하면 묵죽의 기본 골격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형태를 갖추었다고 곧 그림이 될 수 없는 것은 글자꼴을 갖추었다고 서예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대나무 그림은 서예와 통하는 바가 많다.

청나라 양헌巘(1710~1788)중국 서예사 1천 년의 흐름을 '진상운晉尙韻 당상법唐尙法 송상의宋尙意 원명상태元明尙態'라는 열세 글자로 요약한 바 있다.

진나라(양희지)의 서예는 운韻을 숭상하고, 당나라(구양순)의 서법은 법法을 숭상하고, 송나라(소동파)의 서예는 의意를 숭상하고, 원나라(조맹부)·명나라(동기창)의 서예는 태態를 숭상하였다는 뜻이다.

 

대나무 그림 역시 태를 숭상하여 모양을 아름답게 할 수도 있고, 의를 숭상하여 화가의 뜻을 필획에 담을 수도 있고, 법을 숭상하여 화법에 어긋나지 않게 할 수도 있고, 운이 감돌게 할 수도 있다.

그중 운, 즉 신운神韻이 감돌게 하는 것은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화가의 경지가 거기에 이르러야 가능하다.

 

조선시대 미술사에서 이런 경지의 대나무 그림을 그린 화가는 탄은灘隱 이정李霆(1554~1626)이다.

그가 조선시대 최고의 묵죽화가임을 부인할 미술사가는 없다.

남태응南泰膺이 ≪청죽화사聽竹畵史≫에서 한 말을 빌리면 "탄은 이전에도 없고, 탄은 이후에도 없고, 오직 탄은 한 사람만이 있을 따름이다."

동양미술사 전체로 보아도 원나라 식재息齋 이간李衎(1244~1320)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대가이다.

 

탄은 이정은 세종의 현손玄孫(고손高孫: 증손자의 아들 또는 손자의 손자 또는 4대손)으로 석양정石陽正에 봉해진 엘리트 왕손이다.

왕손이기에 특별한 행적이 따로 있지는 않지만, 시서화에 능해 당대의 명사들과 깊이 교류하였다.

공산公山에 지은 월선정月先亭에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가 기문記文(기록한 문서)을 썼다.

그런가 하면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이 새 집을 짓자 탄은은 이를 축하하는 시를 지어 보내기도 했다.

동시대에 그림 보는 안목을 갖춘 최립崔岦, 허균許筠, 차천로車天輅, 황정욱黃廷彧 같은 문인들이 다투어 탄은의 묵죽화의 아름다움과 품격을 노래했다.

 

탄은의 묵죽은 필법이 건실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본래 대나무 그림은 변화의 여지가 적은데 탄은은 줄기가 가는 세죽細竹, 줄기가 굵은 왕죽王竹, 바람에 흔들리는 풍죽風竹, 비에 함초롬히 젖은 우죽雨竹, 눈을 머리에 인 설죽雪竹 등 대나무의 다양한 자태를 능숙하게 표현하였다.

또한 한 화폭 속에서 농담을 달리하기도 하면서 대나무의 사의성寫意性(그림에 담겨 있는 화가의 생각)과 사실성寫實性(그림에 표현된 사물 그대로의 모습)을 절묘하게 아울렸다.

문자 그대로 대나무의 청신한 신운이 감돈다.

게다가 본격적인 대작이 많아 그 기량이 한껏 돋보이고 감동의 울림이 크다.

 

탄은의 유작 중 훗날 백하白下 윤순尹淳이 아래와 같은 화제를 화면 위에 덧붙인 <풍죽도風竹圖> 필치가 대단히 날렵하여 신선한 분위기가 일어난다.

 

노죽고참치 老竹故參差                           늙은 대나무 들쑥날쑥한데

풍지일시거 風枝一時擧                           바람 불자 가지가 일시에 일어나네

소속욕동인 蕭涑欲動人                           쓸쓸함이 마음을 움직이는데

유향멱무처 遺響覓無處                           소리는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네

창랑작 중화위대래서 滄浪作 仲和爲大來書      창랑(성문준)이 짓고 중화(윤순)가 대래(?)를 위해 쓰다

 

그리고 화제 위에 있는 전서체 글은 '석양동○石陽同'으로서 탄은의 작호인 석양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맨 왼쪽 글자가 뭔지 모르겠다.

 

그의 대나무 그림은 노년으로 갈수록 굳센 맛을 보여준다.

56세가 되는 '1609년 초봄에 월선정에서 그렸다'는 <이금세죽도泥金細竹圖>(쌍폭)는 검은 비단에 금물(이금泥金 또는 금니泥)로 그려 중후한 분위기를 지닌 작품이다.

 

 

이정, 우죽도(왼쪽), 1622년, 비단에 수묵, 119.1x57.3cm, 국립중앙박물관; 통죽도(오른쪽), 17세기 초, 비단에 수묵, 148.8x69.8cm,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출처-출처자료1)

 

'천계 임술년(1622) 봄에 월선정에서 탄은이 그렸다(천계임술춘탄은사우월선정 天啓任戌春灘隱寫月先亭)'는 관기款記(낙관落款)가 들어 있는 <우죽도雨竹圖>69세 노년에 그린 그림인데도 긴장감 있게 늘어진 댓잎에 흐느끼는 듯한 감정이 들어 있다.

 

남태응南泰膺의 ≪청죽화사聽竹畵史≫, 이긍익李肯翊≪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 전하기를 "탄은은 임진왜란 때 피란 가다가 왜장의 칼에 맞아 오른쪽 팔이 부러져서 다시 이어 붙였는데, 이후로 붓을 잡으면 신이 돕는 듯 갑자기 일격一格이 높아졌으니 의사는 팔을 고칠 때 속기俗氣까지 고친 셈이다"라고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크게 다쳤던 팔로 붓을 잡자니 전보다 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정, 야매도(왼쪽), 17세기 초, 종이에 담채, 30.3x40.7cm,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1)

 

이정, 이금시고, 17세기 초, 비단에 금니, 25.2x425.2cm, 개인(사진 출처-출처자료1)

 

탄은 이정이 묵죽에서 남다른 경지를 보여준 것은 그가 단지 대나무만 잘 그리는 여기화가여서가 아니다.

모든 소재를 다 소화할 수 있는 화가적 역량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탄은은 비록 전하는 작품이 몇 안 되지만 산수, 난초, 매화에서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었다.

 

오동나무 아래에서 한 선비가 달을 가리키는 <문월도問月圖>라는 두 폭짜리 그림은 시정 가득한 작품으로 조선 중기의 산수인물도 중에서도 명작으로 꼽을 만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75점의 작품이 수록된 ≪화원별집畵苑別集≫이라는 조선회화사상 최고로 꼽히는 화첩이 있다.

이 화첩에는 공민왕, 이상좌, 김시(또는 김시), 이불해, 이숭효, 이정, 이정근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초기와 중기 작품이 대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그림의 수준도 아주 높은 화첩이다.

 

1909년 일본인 화상에게서 구입했다는 이 화첩의 표지에는 정조 때 명필인 유한지兪漢芝의 표제 글씨가 붙어 있는데, 대략 세 개의 화첩을 한데 묶은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는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보았다는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 소장의 화첩으로 보이고, 또 하나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화평이 실려 있는 화첩이며, 나머지 하나는 후대의 수집으로 정조 시대 화가의 그림까지 실려 있다.

 

≪화원별집≫에는 탄은의 대나무 그림과 함께 난초와 매화 그림도 실려 있다.

검은 비단에 금물로 그린 <이금춘란도泥金春蘭圖>는 난초 잎이 더없이 유려하다.

흐드러진 멋을 풍기면서도 고고한 기품을 잃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야매도夜梅圖>에 이르면 상찬賞讚(기리어 칭찬함)을 금할 수 없다.

일지매로 표현한 매화 가지와 꽃이 상큼할 뿐만 아니라 담묵의 푸른색으로 표현한 밤하늘은 가히 환상적이다.

나는 ≪화원별집≫에 수록된 75점의 작품 가운데 탄은의 이 <야매도>를 가장 사랑한다.

 

탄은 이정은 모든 면에서 프로 중에서도 프로다운 화가 모습을 보여준 조선 중기의 대가였다.

탄은의 그림은 대나무, 난초, 매화, 산수 그 어느 것이나 묘사된 대상에 신운이 감돌고 고고한 기품이 서려 있다.

세종 현손이라는 왕손의 품격에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간이당簡易堂 최립崔岦 같은 문인들과 시를 주고받는 높은 교양과 학식이 그림 속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린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풍겨나오는 것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영천자靈川子 신잠申潛의 대나무 그림을 보면서 마치 '영천자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고 했는데, 탄은의 그림이야말로 그의 고고한 인품을 보여주는 그의 자화상 같다.

 

※출처
1. 유홍준 지음, '명작 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주)눌와, 2013
2. 풍죽도 그림과 화제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julymo&logNo=22095666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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