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겨울왕국은 어디에 있을까 본문
'겨울왕국'하면 2013년 전세계 어린이들을 열광시킨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 같은 낭만적인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반면 우리 고대사로 눈을 돌리면 말갈, 읍루 등 추운 북방에 살면서 주변 지역을 침략한 거칠고 폭력적인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렇게 다양한 지역에서 전해지는 겨울왕국에 대한 믿음은 일부 오해가 있지만, 헛된 망상은 아니었다.
여러 고고학 자료들이 이를 증명한다.
사람들이 '북쪽'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겨울왕국을 찾아 떠나보자.
○그리스인의 유토피아, 히페르보레이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비행기나 배가 사라진다는 버뮤다 삼각지대 Bermuda Triangle, 태평양 한가운데에 존재했다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무 Mu 대륙, 대서양에 있었다는 아틀란티스 Atlantis 대륙 등은 여전히 호사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중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거나(지구평평설), 지구의 북극에 구멍이 뚫려 있다(지구공동설) 같은 믿기 어려운 음모론도 존재한다.
지구평평설의 황당무계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지구공동설은 북쪽 어딘가에 지상낙원이 있다는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언급할 만하다.
서양 문화에서 겨울왕국에 대한 믿음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다.
그리스인들은 북쪽 끝에 히페르보레이 Hyperborei(휘페르보레아/하이퍼보리아 Hyperborea 또는 상춘국常春國)라 불리는, 질병도 없고 늙지도 않는 유토피아가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태양의 신 아폴론 Apollon이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할 정도니, 겨울왕국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환상이 실로 대단했던 모양이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도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서양 문화에서 꾸준히 이어진 히페르보레이 환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헤로도토스 Herodotos(영어 Herodotus)(서기전 484 무렵~서기전 425 무렵)는 자신의 저서 ≪역사 Histories≫에 히페르보레이를 자세하게 기록했다.
헤로도토스는 그리스 동쪽에 살던 스키타이 Scythia보다 더 깊숙한 유라시아 초원에 존재하던 사람들을 마치 괴물과 같은 형상으로 묘사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지의 영역을 윤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세상의 끝자락에는 외눈박이 거인족인 아리마스피 Arimaspi와 그들로부터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 Griffin(사자와 매가 합쳐진 신화적 동물) 등이 있으며, 더 북쪽으로 가면 '겨울왕국' 히페르보레이가 있다고 썼다.
유라시아 고고학자들의 활발한 발굴을 통해 아리마스피는 대체로 지금의 카자흐스탄 Kazakhstan 동쪽이고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은 남부 시베리아 Siberia 알타이 Altai(Altay) 산맥 일대의 파지리크 문화 Pazyryk culture에 해당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
그렇다면 히페르보레이는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고고학에서 그 단서를 찾아보자.
서부 시베리아의 초원-삼림 지역에 3000년 전에 만들어진 거대한 도시 유적인 치차 Chicha에서 삼중으로 환호環濠(담)를 쌓아서 적의 공격을 막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여기에서 그들보다 북쪽에 살던 타이가 Taiga(유라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를 동서 방향 띠모양의 둘러싼 침염수림 지대) 사람들의 유물도 많이 나왔는데, 이는 추운 겨울 얼어붙은 강을 따라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다.
또한 사람뼈의 DNA를 분석해보니 알타이 지역의 파지리크 문화인과 제일 비슷한 사람들이 현재 시베리아 원주민인 한티족 Khanty과 만시족 Mansi임이 밝혀졌다.
이를 종합해보면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 이야기가 히페르보레이와 같은 신화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한국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추운 북쪽의 산속에 살던 읍루인들이 걸핏하면 배를 타고 내려와 옥저인들을 침략하는 무서운 사람들로 묘사되어 있다.
찬바람이 불면 오히려 생기가 나서 사방을 뒤흔든 사람들에 대한 공포심을 전세계 공통이었던 것 같다.
당시 사람들은 그들이 찬바람의 장막 뒤에 숨어 있는 또다른 인류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편 겨울왕국은 한때 따뜻한 지역에 살다가 추운 북쪽으로 밀려나 정착한 사람들이 힘든 생활을 잊기 위해 고향을 그리는 노래나 신화에도 남아 있다.
사하인 Sakha(또는 야쿠트인 Yakuts)들이 대표적이다.
사하인들은 동부 시베리아의 초원 지역에서 살던 튀르크 Turk 계통의 주민들로 몽골의 팽창 전후 북쪽 툰드라 Tundra 지역( 타이가 지대의 북쪽 북극해 연안에 분포하는 넓은 벌판으로 툰드라 기후가 나타나는 연중 대부분 영구동토 지역)으로 이주했다.
사하인이 북쪽으로 대거 이주한 것은 고고학 자료 및 DNA 분석은 물론 언어로도 확인된다.
사하인 신화의 주 무대는 꽃이 만개한 따뜻한 초원이다.
사하인의 샤먼 shaman은 따뜻한 낙원을 노래하며 의식을 행했고, 사하인들은 저 북극해 너머에 자신들의 고향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이 잃어버린 낙원은 실제로 북극권이 아니라 푸르른 초원이었다.
○산니코프의 섬과 지구공동설
겨울왕국에 대한 환상은 북극권의 자리가 완전히 알려진 20세기 초반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사실 시베리아를 탐험하던 러시아인들도 20세기 초반까지 150년 넘게 북극해의 신비로운 땅을 찾아 헤매었다.
18세기 말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인 시베리아의 야쿠트 Yakut(사하 Sakha의 옛 이름)에서 모피사냥꾼으로 활동하던 야코프 산니코프 Yakob Sannikov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새로운 모피동물을 찾아 북극권을 헤매던 중 동부 시베리아 노바야시비리 섬 Nobayasibiri Island 북쪽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난데없이 거위 떼가 날아가기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눈 덮힌 빙하 북쪽으로 푸르른 숲으로 뒤덮인 땅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북극권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던 시절 산니코프의 발견은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3세 Tsar(Czar 또는 Tzar) Aleksandr III(영어 Emperor Alexander III)는 이 섬을 다시 발견하는 자에게 섬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수많은 탐험가들이 경쟁적으로 이 섬을 찾아나섰고, 그중에는 산니코프 자신도 있었다.
산니코프는 탐험 중 1811년 무렵에 실종되었고, 120년이 지나서야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외에도 수많은 탐험가들이 북극을 헤맸지만 모두 실패했다.
비행기로 북극을 답사할 수 있게 된 1930년대에 이르러 소련 학계는 산니코프의 섬이 없다고 공식 선언했다.
사실 산니코프는 부정확한 육안 측량법으로 조사한 것이고 몇 개월을 빙하 환경에 있다보니 환각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
산니코프의 보고만을 믿고 몇 십 년 동안 사람들이 그 섬을 찾아 헤맸다는 사실만으로도 북쪽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이 느껴진다.
사람들의 유토피아 환상은 이후 지구의 북극을 둘러싼 음모론으로 이어졌다.
탐험의 시대에 불충분한 조사와 측량으로 빚어진 오해로 끝났어야 마땅한 산니코프의 섬은 20세기에도 여전히 음모론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북극해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경쟁하던 1926년 미국의 해군소장이자 탐험가 리처드 버드 Richard Byrd는 비행기로 북극점을 왕복횡단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가 사망한 후 북극 비행은 조작됐으며 실제로는 북극점을 통과하지 않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 문제는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설왕설래하는 상황이다.
버드는 1927년 대서양 무착륙 비행을 시도했으나,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 Charles Lindbergh에게 그 영광을 빼앗겼다.
세인트루이스 시 City of St. Louis의 사업가들이 지원을 한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 Spirit of St. Louis 호를 타고 최초로 뉴욕-파리 간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성공한 린드버그는 미국인이 열광하는 영웅이 되었다.
무명의 린드버그에 선수를 빼앗긴 버드는 곧바로 북극과 남극 비행에 주력했다.
버드는 미국에서 드물게 남극과 북극을 모두 탐험한 공로로 중령에서 소장으로 단번에 진급한 유명한 인물임에도 다른 성과보다 푸르른 북극 이야기로 더 자주 언급되는 게 사실이다.
1947년 버드가 북극을 탐험하던 중 풀이 우거진 호수와 숲속에서 매머드들이 걸어 다니는 육지를 보았다는 설이다.
하지만 여러 매체에서 언급되는 1947년에 버드는 북극이 아니라 남극을 비행하는 중이었다.
음모론자들은 단순한 팩트체크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이러한 사실을 외면하고 여전히 지구공동설의 유력한 증거로 사용한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공개를 막았다는 버드의 일기가 더해져 음모론의 오라 aura를 완성했다.
하지만 버드의 언급은 전혀 증거가 없는 뜬소문에 불과하다.
ESSA-7 위성이 찍었다는 지구 북극해에 구멍이 뚫린 사진도 지구공동설 음모론에 한몫을 한다.
오려낸 자국마저 너무나 선명한 조작된 사진이었다.
그러나 산니코프의 섬은 지구 속 낙원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지금도 인터넷상에서 회자된다.
매일같이 몇 천대의 비행기가 북극해를 통과하고, 인공위성 사진과 구글 지도를 보아도 지구공동설이 얼마나 허황된지 금방 알 수 있음에도 여전히 지구공동설이 유포되고, 소수라 할지라고 북극해의 낙원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사라진 겨울왕국은 그 실재와 관계없이 현실을 잊으려는 사람들의 마지막 도피처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산니코프의 섬은 현재로서는 전혀 증명되지 않았지만, 몇 년 더 지나면 밝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해의 온도가 급상승하면서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
그에 따라 북극해에 풀들이 우거지는 지역도 늘어가고 있다.
많은 이들의 바람대로 북극해에 푸른 초원이 만들어질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산니코프의 섬은 미스터리 속에 숨겨진 지상낙원 즉 유토피아 utopia가 아니라 디스토피아 dystopia(역유토피아 anti-utopia) 적 지구를 보여주는 참혹한 예언서가 아닐까?
○만주에서 발견된 겨울왕국
동아시아에서도 북방 지역을 신성시하는 겨울왕국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부여와 삼국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기원을 북방이라 믿었다.
소위 '북방계 신화'로 불리는 이 이야기들은 하늘에서 사람들이 내려오는 서사 구조를 갖고 있는데, 여기서 북방 지역은 하늘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말갈족의 후예인 나나이족 Nanai을 비롯한 시베리아의 여러 민족 사이에도 북방기원설은 널리 퍼져있다.
일본의 기마민족설도 비슷한 맥락이니 한민족 북방기원설이 널리 확산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최근 발굴 결과 러시아와 접경한 만주의 북쪽 끝에 실제 겨울왕국이 존재했음이 밝혀졌다.
만주의 동북쪽 끝 러시아 접경 지역에는 남한의 3분의 2 정도 크기의 광활한 평원지대인 싼장(삼강三江)평원이 있다.
중국에서도 가장 맛좋은 쌀이 나오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이 곡창지대로 이름난 것은 비교적 최근이고 원래는 중국 안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러시아 하바롭스크 Khabarovsk와 접경한 이 지역은 1월 평균기온이 영하 21~18도에 달하고, 1년에 7~8개월이 겨울인 그야말로 동토지대다히 .
겨울이 워낙 춥고, 여름이 되면 온통 소택지로 뒤덮이는 곳이라 최근까지도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다.
한마디로 시베리아의 동토지대 못지않은 척박한 곳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 지역의 고대 유적을 조사한 결과 부여 계통의 사람들이 거대한 성터를 만들어서 살았음이 확인되었다.
대표적인 유적인 펑린(봉림鳳林) 성터의 경우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가 4미터에 달하고 둘레 6.3킬로미터에 전체 면적이 11만 제곱미터이다.
백제 풍납토성의 둘레가 약 2.2킬로미터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단순히 규모만 큰 것이 아니다.
펑린 성터는 가운데 위치한 궁궐지를 중심으로 주변을 9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몇 차례에 걸쳐 성벽을 쌓았다.
외적이 침략한다 해도 미로 같은 성벽을 통과해야 하는 복잡한 구조다.
한눈에 봐도 거대한 이 성터가 1980년가 되어서야 발견된 이유는 이 지역이 너무나 인적이 드문 곳이기 때문이다.
유적 발굴 결과는 더욱 놀라웠다.
만주의 추운 지역에서 사냥을 주로 하던 말갈족의 유적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성터 안에서 부여 계통의 토기와 온돌을 설치한 집 자리가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규모로 말이다.
싼장평원의 겨울왕국에 대한 조사는 이제 시작이다.
지난 1998~2002년 4년 동안 싼장평원의 15분의 1에 해당하는 극히 일부 지역을 조사한 결과 펑린 성터를 포함해 약 200여개의 성터가 발견되었다.
그러니 전체 싼장평원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성을 쌓고 살았는지 제대로 예측하기도 어렵다.
아마도 이 싼장평원 일대에 고구려나 부여 못지않게 거대한 문명을 이루며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추운 지역에서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싼장평원 일대의 비옥한 토양에 있다.
싼장평원은 우크라이나 Ukraine 다음으로 거대한 흑토지대가 발달한 지역이다.
2000년 전부터 부여계의 사람들은 이곳에 살며 추운 겨울을 견디는 온돌을 만들고, 주변의 호전적인 말갈 세력을 막아내는 성터를 건설했다.
힘든 환경이었지만 세상 어디보다 비옥한 흑토지대에서 잡곡을 키우며 그들만의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
이곳에서 벼농사를 짓게 된 것은 농업 기술이 발달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펑린 성터 유적에서 글자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고고학 자료로 보면 이 사람들은 옥저와 부여 계통임이 분명하다.
말갈족은 이곳에서 발견된 것과 다른 토기를 사용했으며, 거대한 성터를 지은 적도, 온돌을 사용한 적도 없다.
게다가 강원도 지역에서 발견된 철기시대 문화인 중도식토기문화에서 보이는 철凸자형 주거지(주거지 한쪽에 문을 낸 형식), 무늬 없는 단지, 온돌 등과 비교하면 차이를 발견하지 어려울 정도로 매우 흡사하다.
직선거리로 1000킬로미터가 넘는 두 지역 간의 유사점은 백두대간을 따라 추위에 적응하며 살았던 부여 계통 주민들의 이주와 문화교류의 결과다.
중국 당나라 때 기록에 부여의 북쪽에 북부여의 후예가 두막루杜莫婁라는 나라를 세웠다고 되어 있다.
아마 이들이 역사 기록의 두막루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북방기원설의 한계를 넘어
싼장평원과 같은 북방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오히려 활동력이 더 좋아지고 활발해지기 때문에 남쪽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겨울에만 나타나는 겨울왕국 사람들로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추운 북방 초원지대나 삼림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은 여름에는 수풀이 우거지고 길이 없어서 겨울에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고대 기록에는 숙신(말갈의 조상)이 사는 곳은 길이 험하여 수레가 갈 수 없다고 했다.
겨울이 오면 북방 사람들은 썰매에 여러 물건을 싣고 얼어붙은 강을 따라 내려와 주변 지역과 교역했다.
식량이 부족할 때는 침략을 하기도 했다.
추위에 적응을 마친 북쪽 사람들은 겨울 전쟁에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구석기시대가 끝나가는 1만 5000년 전의 시베리아를 떠올려보자.
당시 매머드(맘모스) mammoth 사냥을 하던 시베리아의 구석기시대 사람들 중에 일부는 사냥감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해 베링해 Bering Sea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갔다.
다른 사람들은 시베리아에 남거나 더 남쪽으로 이동해 온화한 기후에 새롭게 적응했다.
어쩌면 겨울왕국에 대한 인간의 기억은 빙하기를 거치고 문명을 일구는 과정에서 각인된 것이 아닐까?
추운 지역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북방기원설로 이어졌다.
우리의 기원이 알타이 Altai나 바이칼 Baikal로 대표되는 시베리아 일대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북방기원설은 북방 지역에 대한 정보나 연구가 거의 없었던 일제강점기에 별다른 근거 없이 시작된 것이다.
즉 체계적인 자료나 증거는 없고, 북방 지역은 뭔가 신비롭고 여기보다 살기 좋은 땅이라는 이미지가 더해진 단순하고 막연한 상상이다.
실제로 북방 지역과 한반도는 끊임없이 교류를 했고 때로는 일군의 사람들이 왕래한 흔적도 뚜렷하다.
우리는 북방 지역과 얼마나 많은 교류가 있었는지를 밝히는 것에 관심을 더 집중해야 한다.
첨단 과학과 탐사 기술이 발달하여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겨울왕국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한다.
각박한 현실을 잊기 위한 바람을 투영할 다른 곳이 아직은 마땅치 않은 것 같다.
고고학 자료는 머너만 북극해까지는 아니지만 우리와 이웃했던 시베리아와 만주 북방에 매우 발달된 문명이 존재했음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살아남았던 겨울왕국의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했던 역사의 일부임을 증명하고 있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테라 인코그니타, (주)창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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