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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 신이 내린 자연의 선물, '더 맑게' 진화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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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 신이 내린 자연의 선물, '더 맑게' 진화하다

새샘 2024. 8. 22. 20:57

소주(사진 출처-일요신문 https://m.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433323)

 

술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자연의 산물이다.

과일이나 곡물에 든 당분을 효모가 분해하면 알코올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술을 마시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인류는 더 맛있고, 더 잘 취하고, 더 독한 술을 만들고 향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소주다.

 

소주는 증류주다.

증류는 액체를 가열해 기체로 만든 다음, 그것들을 모아 다시 냉각시켜 액체로 만드는 과정이다.

물질마다 끓는 점이 다르다는 차이를 이용하면 여러 성분이 섞인 혼합물에서 각 성분을 분리, 추출할 수 있다.

증류주를 만들려면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발달된 과학기술이 필요했다.

독하지만 맑은 술이자 만드는데 공이 많이 드는 고급 술, 소주는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양을 넘나들며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소주에는 수천 년 동서 문명의 교류를 살펴볼 수 있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소주의 기원은 만주다

 

소주의 기원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증류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호품으로서 증류주가 널리 퍼진 것은 몽골제국 이후이기 때문에, 몽골을 소주의 기원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런데 최근 우리가 흔히 '배갈'이라 부르는 증류주(백주百酒)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주장이 중국 고고학계에서 대두되었다.

 

 

만주에서 발견된 최초의 소줏고리(사진 출처-출처자료1)

 

2006년, 만주 송화강 평원 한가운데 위치한 지린성(길림성吉林省) 다안(대안大安)의 한 백주 공장 건물 증축 현장에서 거란시대의 술고리(술을 빚는 솥과 쟁반)가 발견되었다.

심지어 그 옆에서는 10~11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4,000개의 동전이 그득한 돈 항아리까지 나왔다.

 

고고학자들은 발굴된 술고리를 복원했다.

복원된 술고리로 술을 빚어서 두 번 거르니 요즘 마시는 술과 거의 비슷한 도수인 40~50도의 증류주가 만들어졌다.

이 결과를 두고 중국 당국은 백주가 서방에서 전해진 것이 아니라 중국 자체 발명품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만주 평원 지대인 지린성에서 출토된 유물을 근거로 백주가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당시 이 지역은 중원과는 먼 곳이었다.

오히려 이곳은 고려시대 우리와 북쪽으로 인접했던 거란이 살던 지역이다.

따라서 중원이 아닌, 만주에서 역사상 첫 번째 소주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자.

왜 하필 거란에서 세계 최초의 증류주가 만들어졌을까?

 

거란이 세계 최초의 소주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의 생활 방식(유목민)과 지리적 환경(만주) 때문이다.

증류주는 순도가 높은 술이기 때문에 많은 양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즉, 유목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휴대가 편한 술이었다.

또한, 만주는 겨울이 긴 지역이어서 증류 과정 중 냉각 시 필요한 얼음을 구하기 쉬웠다.

만주 일대에서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함께 살았기 때문에 누룩과 같은 술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구하기도 쉬웠다.

한마디로 만주 지역은 소주를 대량 생산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는 의미다.

 

유목 민족이었던 거란은 거대한 제국을 만들고 몽골까지 진출하여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다양한 교류를 했다.
그 무렵 아랍인들은 이미 증류 기술을 갖고 있었다.

한반도의 신라 역시 증류 기술을 갖춘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상인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지만 소주를 만들어 마셨다는 증거는 없다.

고려는 거란과 여진으로부터 술을 포함해 많은 물산을 수입했다.

그렇다면 몽골 침략 이전, 이미 만주에서 발원한 증류주가 고려로 들어왔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소주로 하나 된 세계, 그 이면에 숨은 몽골제국의 의도

 

소주가 '세계의 술'이 된 것은 몽고제국 건국 시기부터.

거대한 제국이었던 몽골의 정복 활동과 역참驛站(여관과 말이 제공되는 도로교통 체계)으로 세계는 하나가 되었다.

동서양 할 것 없이 몽골제국의 영향력이 미친 곳에서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증류주를 만들었다.

황실에서 증류주 제조를 관리했던 거란과 달리 몽골제국은 증류 기술을 숨기지 않고 널리 확산시켰다.

여기에는 어떤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정복지에 소주 제조법을 전해주면 현지인들이 그 소주를 즐기는 가운데에 자연히 몽골제국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릴 것이라라는 전략이었다.

일종의 동화 정책이다.

 

피지배인들을 알코올로 다스렸던 것은 몽골뿐만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프랑스어인 '술 식민주의 alchoolosialisme(영어 alcoholosialism)'라는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다.

지배 국가가 피지배인들에게 술을 공급하여 저항의 의지를 상실시키는 식민주의 전략이다.

러시아가 시베리아 원주민을 정복할 때,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정벌할 때, 현지인의 반발을 누르고자 사용한 방법이 바로 술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몽골제국의 영향력은 소주를 뜻하는 단어 '아라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몽골, 카자흐스탄, 튀르키예 등 유라시아 대부분의 지역은 물론이고, 동남아 일대에도 증류주를 가리키는 말에 '아라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에서 소주를 '아랄길阿剌吉'이라고 표현한 기록이 존재한다.

경상도 일대 방언에서는 '아라기'가 술 또는 술지게미를 가리킨다.

아라기는 아랍 지역의 증류 시설인 '알렘빅'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아랍어로 '땀'이란 뜻이다.

증류 과정에서 술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땀과 같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나라는 소주를 '이슬'에 비유하곤 한다.

고려 시대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자신의 시에서 소주를 이슬로 표현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역시 불순물을 걸러내고 정화된 술을 만드는 증류 과정을 담고 있는 비유다.

오늘날 우리가 인터넷으로 소통하기 훨씬 전에 이미 세계는 소주(증류주)로 대동단결하고 있던 셈이다.

 

 

○소주 한잔의 여유와 대화가 필요한 때

 

증류주 하몀 폭탄주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폭탄주의 핵심은 증류주와 도수가 낮은 술을 섞어 적은 양으로 빠르게 취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의 폭탄주 문화는 20세기 이후 러시아에서 시작된 문화가 유입된 것이지만, 사실 폭탄주의 기원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래선 고대 사제들은 다양한 술과 약을 섞어 마셨다.

신과 소통하기 위한 목적으로 취한 상태 즉 환각 상태가 되기 위함이었다.
3,000년 전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은 환각 버섯에서 추출한 '실로시빈 psilocybin'이라는 물질알코올음료인 '소마 Soma'를 섞어 마셨다.

흑해 연안에서는 약 2,500년 전 스키타이인들이 사용하던, 마약과 대마초 성분이 담긴 작은 황금 잔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완성된 증류 기술은 소주로 비로소 완성되었으니 실크로드는 곧 '소주의 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술만큼 서로 간의 경계를 누그러뜨리게 만드는 음식은 없었다.

게다가 증류주는 도수가 높아 적은 양으로도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었으니, 거칠고 험한 실크로드를 오가느라 지친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소주에는 동서 문명을 가로지르며 교류하던 인류의 지혜와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

과음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는 것보다는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이해하는 자리를 갖는 편이 백배는 더 낫지 않을까?

흉흉한 국제 전쟁 소식들 틈에서 소주의 길을 통해 왕래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지나친 감상일까?

 

※출처

1. 강인욱 지음, 세상 모든 것의 기원, 흐름출판, 2023.

2. 구글 관련 자료

 

2024. 8. 22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