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신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본문
1960년대 유행하던 LSD의 환각을 경험한 경험한 비틀즈 Beatles가 만든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다이아몬드를 품은 하늘의 루시'는 하늘을 헤엄치는 루시라는 여성을 묘사한 것이다.
노래 제목의 앞글자만 따면 바로 LSD가 된다.
한편으로 고고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노래다.
에티오피아 Ethiopia에서 최초의 여성 고인류를 발굴했던 고고학자들은 당시 현장에서 듣던 이 노래에서 착안해 그 여성을 '루시 Lucy'라 불렀기 때문이다.
○고대인들도 먹었던 보약
예나 지금이나 한국을 대표하는 약초는 인삼이다.
인삼이라는 이름이 중국에 알려지면서 그 효능을 일정받았던 시점은 후한대이다.
인삼의 기원이 중국 북방이라는 설도 있지만, 사실 원산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수한 약재로 널리 개발된 이후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인삼은 지속적으로 재배되었다.
고조선은 전국시대 이후 백두산 일대의 모피를 중국에 되파는 중계무역의 거점이었다.
이러한 교역에서 인삼 역시 주요 품목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인삼은 고구려와 백제 등의 나라가 중국에 선물하는 진상품이었다.
고구려와 백제의 인삼이 유명하다는 기록이 6세기 무렵부터 등장하며, 신라의 인삼에 대해서는 7세기 무렵부터 등장하였고, 8세기에 본격적으로 신라와 당나라의 교역품이 되었다.
인삼이 귀했던 이유는 만주의 산악지대에서 자라는 것만이 효능을 인정받는다는 점과 함께 장기간 보존이 어렵다는 데에 있었다.
인삼을 제대로 건조하여 장기간 보존하는 방법은 최고급 노하우였다.
누르하치가 조선만이 가지고 있는 인삼 건조법을 개발하게 되었고, 그 결과 명나라와의 교역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인삼은 단순한 약재를 떠나서 고대 동아시아 지역 간 교류의 핵심이었던 귀중한 교역품이었다.
한국사에서 가장 동북쪽에 위치했던 발해는 러시아 연해주를 관통하는 시호테-알린 Sikhote-Alin 산맥과 백두산 일대를 장악했다.
발해의 특산품인 인삼은 널리 인정받았다.
고조선 이래 발해에 이르기까지 인삼이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약재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기록으로만 확인될 뿐 그 실체를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하나의 단서가 있으니, 바로 인삼을 채취하는 도구이다.
인삼은 뿌리가 다치지 않게 주변을 살살 긁어서 파낼 수밖에 없는데, 그 때문에 도구의 형태는 예나 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다.
러시아 연해주沿海州(프리모리예 Primorye 지방) 일대의 발해 유적인 니콜라예프카 Nikolaevka-1 유적(연해주의 우수리스크 Ussuriysk 근처의 발해성으로, 발해 행정구역으로 솔빈부에 속함)과 마리야노프카 Marijanovka 유적(니콜라예프카에서 북쪽으로 우수리강 Ussuri River을 따라서 올라간 곳에 위치한 성터)에서 인삼을 캐는 도구가 몇 번 발견되었다.
송곳 같이 생긴 도구인데 뼈로 만들어졌다.
두 곳 모두 발해 유적치고는 북쪽에 있으며, 시호테-알린 산맥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에 위치한다.
발해는 농사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고, 모피나 인삼 같은 특산품을 교역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을 것이다.
이 자그마한 뼈로 만들어진 인삼 채취 도구는 발해사에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한 단서이다.
역사를 보면 발해는 추운 극동 변방 지역의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최근까지도 사람들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험한 산악 지역이다.
이런 곳에까지 왜 발해가 진출했을까 하는 궁금함은 바로 경제가치가 높은 물품들(인삼, 모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 사소한 유물들이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인삼은 단순한 건강식품이 아니었다.
고조선에서 시작된 인삼의 채취와 거래는 발해로 이어지고, 이후 여진족의 중원을 제패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척박한 극동 산악지대의 국가가 동아시아를 제패하는 역사 뒤에는 인삼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감기약으로 쓰이던 마약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실크로드는 바로 중국 신장 Xīnjiāng 성(신강성新疆省) 남부의 길을 말한다.
타클라마칸 사막 Taklamakan Desert을 따라서 그 옛날 카라반 caravane(대상隊商)들은 목숨을 걸고 사방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 사막에 오아시스를 만들고 처음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약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발달된 목축 기술과 청동기를 가지고 유라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던 인도-유럽인의 일파였다.
이 최초의 실크로드인들은 험난한 환경을 딛고 마을을 일구었는데, 그들의 무덤 또한 건조한 기후 덕에 잘 남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3층 중앙아시아실에 전시되어 있는 샤오허 Xiaohe(소하小河) 유적이 대표적이다.
이 유적은 20세기 초반 중국이 아직 이 지역까지 진출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몽골어로 물이 많은 호수라는 뜻의 '로프 노르 Lop Nor'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실크로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로프 노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영국 탐험가 아우렐 스타인 Aurel Stein이 떠도는 도시의 소문을 듣고 탐사에 나섰다가 가이드의 잘못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는 지역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스타인이 조사했던 이 유적은 이후 중국이 들어서면서 샤오허로 개명되었고, 최근까지도 조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미라는 물론 의복과 약초들도 고스란히 발견되어 녹록치 않았던 사막 생활을 견뎌낸 과거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사람들은 같은 시대의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치아의 마모도 및 아래턱에 염증이 생기는 하악관절염의 비율이 비교적 높았다.
그 의미는 좀 더 거친 음식들을 많이 먹고 씹어야 했다는 뜻이다.
생활의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은 더 혹독했을 것이다.
그런데 샤오허 주민들이 험난한 환경을 이겨내는 데에 도움을 주던 약초가 있었으니, 바로 마황麻黃 Ephedra sinica이었다.
샤오허 무덤 속 시신의 주변에서는 마황 줄기가 많이 발견되었다.
마황의 에페드린 Ephedrine 성분은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지만, 진해거담鎭咳祛痰(기침을 가라앉히고 가래을 없애줌)의 효과가 아주 좋아서 전통적으로 감기약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 지역은 겨울이 춥고 길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천막 안에서 보냈다.
특히 봄에 부는 엄청난 모래 폭풍은 지금도 가끔 기사에 보도될 정도로 가혹하다.
이런 환경에서 천식과 같은 기관지병은 가장 흔한 풍토병이었다.
마황은 실크로드 일대에서 널리 자란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먼지로 답답한 목을 확 뚫어주었을 마황은 그 옛날 실크로드인들에게 고마운 치료제였을 것이다.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버섯
시베리아 Siberia에서 발굴을 하는 동안 사람들이 좋아하는 취미 활동은 뭐니 뭐니 해도 버섯 따기였다.
아무리 발굴로 바쁘더라도 비가 온 다음 날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양동이를 들고 숲으로 버섯을 따러 갔다.
이후 독버섯을 골라낸 뒤 소금에 절이면 그것만으로 최고의 요리가 되었다.
시베리아의 버섯 가운데는 유독 빨갛고 예쁘게 생긴 것이 있다.
광대버섯으로, 환각작용도 크고 치명적인 독도 가진 위험한 버섯이었다.
그런데 과거 사제들은 의식을 행할 때 이 독버섯의 약효를 이용하기도 했다.
시베리아의 샤먼들은 하늘과 맞닿는 엑스타시 ecstasy(초월 상태 또는 황홀경恍惚境)를 일으켰는데, 이런 정황은 유라시아 초원 일대의 암각화(바로 위 사진)에 남아 있다.
알타이 Altai 칼박타시 Kalbaktash(Kalbaktaş) 암각화를 비롯해, 다양한 암각화에 나타난 여러 샤먼들의 모습은 공통적으로 머리가 버섯 모양이었다.
기독교나 불교 할 것 없이 신격화된 모습은 머리 뒤로 아우라 aura 같은 광채가 비치는 것으로 표현된다.
시베리아의 샤먼들은 광채 대신에 머리에서 버섯이 자라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다.
놀랍게도 이런 버섯머리의 샤먼은 알래스카 Alaska와 이어지는 북극해 추코트카 반도 Chukotka Peninsula의 페그티멜 Pegtimel 암각화(바로 위 사진)에서도 발견되었다.
페그티멜 암각화는 한국에서도 제법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울주 대곡리 반구대盤龜臺 암각화와 마찬가지로 고래잡이를 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암각화에서도 이런 버섯머리의 샤먼이 발견된다.
이는 1만 5000년 전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버섯을 이용한 샤먼들이 유라시아 곳곳에 있었고, 이들의 일파가 신대륙으로 건너갔다는 증거일 것이다.
몽골 울란바토르 근처에 약 2000년 전에 만들어진 흉노 선우(왕) 고분에서도 버섯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바로 2007년 발굴된 노인-울라 20호 고분이다.
진흙구덩이 같은 무덤 안에서 몇천 년 동안 묻혀 있던 탓에 정확한 그림들은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다년간의 복원작업 끝에 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카펫에 그려진 그림은 유럽인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무슨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그림에는 외견상 중앙아시아 계통의 유럽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버섯을 들고 흠향하는 장면과 음료수를 만들어서 마시는 장면이 있다.
시베리아 과학원의 식물학 전공자의 분석 결과 이 버섯은 매직 머쉬룸 magic mushroom(마법의 버섯)(실로치베 쿠벤시스 Psilocybe cubensis) 종류로 판명되었다.
이 매직 머쉬룸은 환각 성분인 실로사이빈 psilocybin을 함유하고 있다.
그 앞의 제단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향로가 놓여 있고, 버섯을 든 사람 앞에서 제사를 주재하는 사제가 그 연기를 들이마시고 있다.
2018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전시한 적이 있는 이 노인-울라 카펫에 그려진 버섯을 든 인물은 얼핏 오락게임 캐릭터인 슈퍼마리오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 내막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신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제관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담겨 있다.
현대에 이르러 이 매직 머쉬룸을 이용하여 환각제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1960년대 뉴욕에서 심리학을 연구했던 에드워드 제섭 Edward Jessup은 멕시코 아즈텍의 마야인 Mayans of the Aztecs들이 제사 때 사용했던 매직 머쉬룸에 착안해 환각제를 만들려고 했다.
일부 사람들은 환각 작용을 하는 독버섯을 파티 마약 party drug으로 여전히 사용한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고대 샤먼들과 달리 말초적인 즐거움이 목적이겠지만, 환각버섯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점은 흥미롭다.
○신이 허락한 환각의 음료
이 매직 머쉬룸은 불을 신성시하는 조로아스터교 Zoroastrianism 의식의 한 장면과도 연결된다.
약 3000년 전 무렵부터 페르시아 Persia 계통의 주민들 사이에서는 '하오마 Haoma'라는 신성한 술이 널리 유행했다.
인더스 문명 Indus civilization에서도 '소마 Soma'라는 음료가 있었는데, 둘은 비슷한 용도로 쓰였다.
즉, 제사 때 사용하는 신을 위한 음료였다.
제사에 참관한 제관은 이 술을 접신을 위한 수단으로 마셨다.
그리고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환각성분이 있는 매직 머쉬룸을 이용했다.
투르크메니스탄 Turkmenistan의 고누르-테페 유적 Gonur-Tepe ruins 안에서 출토된 그릇 안의 찌꺼기를 분석하니 마황과 대마의 꽃가루가 대거 확인되었다.
같은 유적의 또 다른 제사터에서는 양귀비의 흔적도 발견되었다.
종교의식을 위하여 신관들은 엑스타시에 이르러야 했고, 하오마는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오마의 전통은 이후 2000년 전 몽골에서 제국을 이룩한 흉노로 이어졌다.
앞서 설명한 환각버섯이 발견된 흉노의 무덤에서는 또 다른 카펫의 파편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카펫은 버섯 그림이 있는 카펫보다 보존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무엇을 하는 장면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노인-울라의 흉노 유물이 2018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될 때에도 전시품에 포함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우연히 필자에게 이 유물을 볼 수 있는 행운이 찾아왔다.
2019년 초에 몽골 울란바토르 Ulaanbaatar 학회 참석을 위해서 2박 4일의 짧은 출장을 다녀왔다.
새로 나온 유물자료의 조사도 겸하는 빠듯한 일정이었다.
이 짧은 기간에 뜻하지 않게도 이 파편으로 남은 카펫을 직접 조사할 수 있었다.
몽골고고역사연구소 Mongolian Archaeological and Historical Research Institute의 지하에 있는 유물 보관실로 자료를 조사하러 몽골 관계자와 함께 내려갔을 때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연구소 직원들이 이 미스테리의 카펫 조각을 펼쳐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남아 있는 부분이 워낙 파편인지라 처음에는 무슨 장면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책으로만 보았던 바로 그 하오마를 내려서 마시는 장면이 아닌가(바로 위 사진).
순간 등골에 전기가 흐르듯 전율이 일었고, 곧 정신없이 카펫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형체는 잘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위엄 있어 보이는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앞에서 삼각대에 그릇을 달아 어떤 액체를 받고 있는 장면은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고누르-테페를 발굴한 러시아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 Victor Sarianidi의 연구였음이 한참 뒤에 생각났다.
사리아니디는 발굴자료를 근거로 하오마를 만드는 방법을 복원했다.
그에 따르면 큰 항아리에 음료를 담아두었다가 제사 때가 되면 그 발효된 음료를 지푸라기나 양피지로 만든 깔때기로 걸러서 작은 단지에 받아서 마신다고 했다.
사리아니디가 생각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 장면이 약 3000년의 시간을 두고 머나먼 동쪽의 흉노 고분에서 발굴되었다니, 놀라운 따름이었다.
조사를 끝내고 사무실로 올라가서 연구소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하자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었다.
그제야 내가 몽골 측에 부탁한 자료는 하오마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흉노의 뒤를 이어서 유목제국을 건설하며 고구려와 관계를 맺었던 선비 및 유연제국의 자료라는 것이 떠올랐다.
이 흉노의 카펫은 나를 위해서 배려한 유물이 아니었다.
몇 달에 한 번 있는 정기적인 조사를 하기 위해 유물을 펼쳐서 검사하는 짧은 그 순간에 내가 들어온 것이었다.
그렇지만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무엇인가에 홀린 듯 조사했던 그 카펫과 하오마에 대한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 있다.
○대마로 이어진 유목민들의 잔치
서부 시베리아 평원에서 발굴할 때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잡초들 속에서 유독 역한 냄새가 나며 잎사귀가 옆으로 나는 특이한 형태의 풀이 있었다.
알고 보니 대마의 일종인 코노플리 Conoply였다.
헤로도토스 Herodotus는 그의 책 ≪역사 Historiae≫에서 스키타이인 Scythian들이 이 대마를 사용해서 어떻게 의식을 거행했는지를 자세히 기록했다.
"친척의 장례가 끝나면 그들은 세 개의 막대기를 서로 기대게 세우고 그 위에 카펫을 둘러서 밀폐된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 돌멩이가 담긴 화로를 가져다 놓는다. 이 화로 속에 대마의 씨앗을 넣는다.
돌멩이들 위의 씨들에서 연기와 증기가 나기 시작하는데, 헬라스의 어떤 증기탕도 비교가 안 될 정도이다.
그러면 스키타이인들은 그 증기가 좋아서 비명을 지른다. 그들은 그것으로 목욕을 대신한다."
헤로도토스는 직접 사방을 다니면서 자료를 모았다.
헤로도토스는 실제로 스키타이의 나라도 답사하고 기록했다.
이 대마초로 하는 증기욕은 고고학으로도 증명이 되었다.
1950년대에 루덴코 Rudenko가 발굴한 러시아 알타이 Altai 지역의 파지릭 Pazyryk 고분에서 대마초를 세우기 위한 '증기욕 세트'가 발견되었다.
왕으로 추정되는 시신 옆에 6개의 나무막대, 양탄자 그리고 돌과 대마씨앗이 담겨 있는 구리솥이 함께 발견된 것이다.
왕이 죽어서도 증기욕 세트를 무덤에 가지고 갈 정도로 당시 대마 증기욕은 고위층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 다른 알타이의 고분에서도 증기욕에 사용하는 나무막대기들을 묻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물이 귀하고 추운 지역이었으니 증기욕은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을 것이다.
대마 증기욕이라고는 하지만 대마 씨앗을 피우는 것만으로는 강한 환각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이런 환각이 강하지 않은 증기욕은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확산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명절이 끝나면 가족끼리 찜질방을 가서 친목을 도모하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시베리아 일대에서 야생하는 대마는 환각성분이 거의 없다.
파지릭 고분에서 발견된 환각성분이 강한 대마는 중앙아시아에서 수입해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
보통 유목민들은 여름과 겨울에는 서로 떨어져 각자 유목을 하다가 목초지로 이동하는 봄과 가을에 만난다.
6개월 만의 만남이니 서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족장들끼리 모이기라도 하면 혹시 그 사이에 누군가가 배반을 했고,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서로 가지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 질퍽한 대마 증기욕 잔치는 단순히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닌 나름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 꼭 필요한 사교술의 일종이었다.
헤로도토스가 페르시아인들의 회합을 목격하고 기록한 것이 있다.
"부족장의 회합일 경우 같이 앉아서 밤새 술을 마시며 결정한다.
밤새 술에 취해서 서로의 속마음을 나누며 회의를 한 페르시아인들은 다음 날 술이 깬 뒤 다시 모여 전날 저녁에 결정했던 것을 다시 이야기한다.
결론이 변함이 없으면 그것으로 결정했다."
술잔치만큼이나 아침의 회합도 중요했을 테니, 나름의 해장술도 곁들였지 않았을까.
즐겁게 살아간다는 건 중요하다.
그것이 정신적인 즐거움이든 육체적인 즐거움이든,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즐거움이 필요하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알 수 없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가치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즐거움을 추구할 때에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절제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대가 없는 즐거움은 없기 때문이다.
쾌락만을 좇는 대가는 늘 생각보다 위험하고 치명적인 칼날이 되어 우리를 향한다.
인류의 역사가 마약들과 함께 했지만,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지혜 때문이었다.
지혜는 단순한 지식과 다르다.
지혜는 누구나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라는 것에 사유, 성찰 그리고 자기의 절제가 더해져야만 지혜는 생겨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삶일까?
오늘도 나는 그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흐름출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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