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상어고기 - 2,000년을 이어온 우리의 제사 음식 본문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은 설날과 추석이다.
시대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명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 가운데 하나는 아무래도 제사 지내는 모습일 것이다.
제사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때로 가족 간의 갈등을 빚기도 하고, 여성들에게 지나친 노동을 전가하는 것처럼 비쳐져 가부장제의 대표적인 악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제사는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을 기리기 위해 인류가 지나 수만 년 동안 이어온 예법이자 전통이다.
제사는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고쳐야 할 부분도 있지만, 문화의 한 형태로서 제사는 많은 맥락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흥미로운 풍습임은 분명하다.
○상어고기 - 2,000년 동안 사랑받은 제수 용품
제사상을 차리는 방법에는 어느 정도 정해진 예법이 있지만, 지역에 따라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들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독특한 제사 음식이 있는데, 바로 상어 고기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경상북도 일대에서는'돔베기'라 불리던 상어 고기가 제사상에 반드시 올라갔다.
상어는 몸체가 크기 때문에 한 마리만 잡아도 얻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이 많아서 신석기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었다.
경상도 지역에서 상어를 제사상에 올린 역사는 적어도 무려 1.7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주, 울산, 포항 일대의 신라 무덤들에서 상어뼈가 두루 발견되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4세기 무렵의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가 차츰 세력을 키워감에 따라 제사상에 상어 고기를 올리는 풍습은 경상북도 일대로까지 전해져서 안동 지역 고분에서도 상어뼈가 출토되었다.
이 정도면 신라 문화는 '상어(돔베기) 문화권'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제법 신분이 높은 족장이나 마을 어르신을 묻은 큰 고분에서는 상어뼈가 통째로 발견되기도 한다.
경북 경산시 조영동에서 발굴된, 삼국시대 이 지역 지도자의 고분에서는 순장자殉葬者(죽은 자와 함께 무덤에 묻힌 사람)의 발 쪽에서 무려 세 마리의 상어뼈가 통째로 발견되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발굴된 상어뼈는 모두 머리 부분이 없었다.
경산은 대구 남쪽에 위치한 내륙 도시다.
상어가 잡힌 동해 연안에서 이 지역까지 상어를 운반하려면 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따라서 상어를 날것인 채로 옮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운반하는 동안 부패를 피할 수 없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없는 상어뼈는 당시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상어를 잡은 뒤에 금방 상해버리는 머리와 내장 부위는 제거하고 통째로 염장해서 내륙으로 운송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보통 무덤에 넘는 음식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겼다.
망자가 머나먼 저승길을 깔 때 배고프지 말라는 의미에서 음식을 넣어주었거나, 먼저 죽어서 저승에 가 있는 조상들과 함께 잔치를 하라는 의미에서 음식을 넣어준 것이다.
커다란 상어 세 마리를 혼자서 다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마 이 무덤의 주인공에게 저승에서 큰 잔치를 열라고 넣어준 것으로 추측된다.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이 피어오른다.
동해안에서 잡히는 생선은 상어 말고도 다양하다.
그런데 왜 하필 상어 고기를 제사상에 꼭 올렸을까?
사실 고고학자들도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추측건대 당시의 염장 상어는 다른 생선에서는 맛보기 힘든 풍미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높은 사람들의 무덤에까지 넣어줄 정도의 음식이면 당대 사람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던 맛을 가진 음식이었을 것이다.
사실 젓갈과 같이 염장하거나 훈연해 삭혀 먹는 음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처음에는 맛있게 먹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 특유의 맛에 한번 적응하고 나면 오히려 그 오묘한 맛에 이끌려 매혹되고야 만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상어 고기를 내륙 지역에서 즐기려면 염장이 필수였다.
염장 과정에서 분명 상어 고기의 남다른 풍미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신라인을 사로잡았던 염장 상어의 맛은 어땠을지 참 궁금하다.
그렇다면 가장 높은 지위라고 할 수 있는 왕들의 제사상에는 어떤 음식을 올렸을까?
신라의 경우에는 고분이 많이 발굴되어서 그 내역을 꽤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신라의 대표적인 고분인 황남대총을 발굴할 결과, 제사 음식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백 점의 토기들이 발견되었다.
그 안에서 육지동물로는 소, 말, 닭, 꿩, 오리 등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요즘 우리가 좋아하는 육류 가운데 돼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나온 셈이다.
해산물로는 바다사자, 참돔, 졸복, 다랑어, 농어, 상어, 조기 등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복, 소라, 논우렁이, 홍합, 재첩, 백합 등 조개류도 다양하게 나왔다.
그러고 보면 신라의 조상신들은 해산물을 골고루 드셨던 것 같다.
○생선과 고인돌
한국 고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삼불三佛 김원룡金元龍(1922~1993) 선생은 필자가 졸업한 고고학과의 창립자이다.
대학원 시절 학과에 소장된 삼불 선생의 여러 작품 중 고고학자만이 할 수 있는 수많은 경험을 특유의 해학과 유머로 엮은 수필을 책장 사이에 서서 읽으며 키득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원룡 선생이 최초로 수필가로 데뷔한 작품은 경남 진해의 한 고인돌을 발굴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담은 '생선, 바다. 지석묘(고인돌의 한자어)'다.
선생은 힘든 발굴이 끝나고 나면 한적한 시골 마을의 단간방에서 꼬시래기(지금은 해초류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1960년대까지 남해에서 꼬시래기라 불리는 물고기가 있었다. 전문 용어로는 문절망둑 즉 망둥어다)라는 잡어 막회를 소주에 곁들여 먹으며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행복감을 느꼈다고 했다.
고고학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행복한 시간이다.
김원룡 선생이 수필을 쓴 당시는 제대로 고인돌을 조사한 적이 없는 1950년대였다.
그 이후 70여 년 가깝게 한국의 수많은 청동기시대 고인돌이 발굴되었지만, 정작 생선을 먹은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농사를 짓는 데에 모든 것을 다 바쳐서인지 모른다.
다시 우리 식탁에 해산물이 올라온 것은 삼국의 전신인 삼한시대부터다.
이때 이후 가야와 신라의 여러 바닷가 유적에서 다시 조개무지(조개더미, 조개무덤, 패총)가 등장한다.
이는 단순하게 해산물을 다시 먹었다는 뜻이 아니다.
이때에는 지역 간의 교통과 무역이 발달해서 해산물을 먹을 수가 있었고, 또 오랫동안 보존하는 염장 기술이 발달되었음을 뜻한다.
상어 고기가 유행한 것도 이때부터다.
○먼저 간 가족을 그리워하는 애달픈 마음
인간에게 죽음만큼 두려운 일은 없다.
하지만 인간은 죽음을 통해 남은 자들의 삶을 결속시켰다.
라틴어 격언 가운데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이 격언은 역설적으로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제사는 인류가 메멘토 모리의 교훈을 실천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우리는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애도하고 그 영혼의 영원한 안식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공동체의 화합을 유지했다.
제사는 죽은 이들에게 산 자들의 소원을 이루어주기를 간구하는 의식이자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축제였다.
고대인들이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만들었던 무덤을 비롯한 각종 물건들은 오늘날 고고학자들의 소중한 연구 자료다.
전 세계 고고학 자료의 절반 이상은 무덤과 관련된 것들이다.
고고학자에게 무덤은 옛사람들의 흔적을 복원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자료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필자 눈에 고대인들이 만든 무덤은 산 자가 죽은 자를 향해 남긴 마지막 사랑의 흔적 같다.
시대가 바뀌어 제사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들이 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점만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제사의 본질은 엄격한 예법과 상다리가 부러질 듯 차린 제사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담아 그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이리라!
※출처
1. 강인욱 지음, 세상 모든 것의 기원, 흐름출판, 2023.
2. 구글 관련 자료
2024. 11. 1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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